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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첫 촬영이었는데 갑자기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 내가 왜 이러지?' 카메라 앞에 서 있는데 너무 겁이 났고 손까지 떨렸다. 모든 자신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배우 심이영이 2010년 촬영했던 드라마 '매리는 외박 중'을 떠올렸다. 처음 느껴보는 공포. 그때 심이영은 데뷔 11년차였다.
어린 심이영의 꿈은 배우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빨리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지. 가정을 꾸미고 현모양처가 되어야겠어.' 그런 마음을 안은 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제빵 학원에 다녔다. 그러다 작은 회사에 경리로 입사했지만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일상을 억눌렀다. 지루함의 반복. 그리고 우연히 "연기 학원에 다녀보지 않을래?"란 권유를 들었다.
그렇게 가게 된 연기 학원. 커다란 꿈이나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학원에서의 첫날, 그저 강사의 연기를 지켜보기만 했다. 할 줄 아는 연기도 없었으니까. 천천히 눈 앞에서 펼쳐지는 연기를 좇았다. '재미있네.' 모락모락 피어 오르던 감정은 직접 연기를 배우면서 변해갔다. '즐거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란 마음이 생겼다. 어릴 때는 뭐든지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다녔다. 무엇을 하든 무언가 배우든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였거든. 그런데 연기는 달랐다. 엄마, 아빠의 도움 없이 그냥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자부심이 생겼다."
자부심이 가득했던 심이영은 연기 학원 3개월 만에 첫 오디션에서 바로 합격을 했다. 영화 '실제상황'. 그를 선택한 건 거장 김기덕 감독. 꿈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고 "얼떨떨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심이영은 회상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막 열심히 한다고만 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뭘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연기만 잘하면 되는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솔직히 난 그때 스스로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운 것도 아닌데, 이 정도 하는 것도 괜찮지'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랬다. 난 사실 연기도 별로 못했던 거였다."
심이영이 만든 자만의 벽은 그의 연기를 스스로 그 안에 갇히게 만들었고, 뒤늦게 그걸 깨달은 건 2010년 영화 '두 여자'를 찍고 '매리는 외박 중'에 들어섰을 때였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지. '두 여자'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그 영화를 잘해내면 뭐든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마치고 '매리는 외박 중'을 하게 됐는데 역할도 크지 않고 비중도 많지 않았다. 대본을 받았을 때도 가뿐한 마음이었다. 뭐 어려울 게 있겠나 싶었다. 그리고 촬영에 나갔고, 난 대사를 잊어버렸다. 첫 촬영이었는데 갑자기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 내가 왜 이러지?'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데 너무 겁이 났고 손까지 떨렸다. 모든 자신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연기하는 게 두려워졌다. 캐릭터에 몰입할 수도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중하려고 해도 결코 들어갈 수 없었다. 그 암담함이란 너무 괴로웠다." 심이영은 방황했으며, 그의 오랜 스승은 혼란에 빠진 심이영에게 말했다. "네가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 10년 넘게 시간이 흐르며 심이영은 잊고 있었다. 연기 학원 첫날,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던 살아있는 연기가 만든 찬란한 빛깔과 감동을.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이 짙어질 때, 심이영의 집안마저 기울었고 결국 그는 배우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른 일들을 찾아봤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지 못할 곳에서 일을 할 생각으로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과거 심이영이 경리로 생활하던 세상과는 많이 달라진 뒤였다. 구하는 일자리가 쉽게 얻어질 리 없었다.
그때 그런 심이영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그의 매니저가 독립영화 시나리오를 가져와 심이영의 손에 건넸다.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나을 거야"란 말과 함께. 먼 길을 돌아 심이영에게 찾아온 두 번째 기회였다.
그리고 이제 심이영은 연기 학원에 처음 갔던 그날, 자신의 눈 앞에서 펼쳐지던 연기의 찬람함과 그 즐거움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심은하, 이영애와 다른 빛깔의 배우가 된 심이영은 말했다. "카메라 앞에 섰을 때가 가장 행복해."
[배우 심이영.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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