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의 한국농구, 수장 향한 직언·쓴소리가 없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직언과 쓴소리가 없다.

최근 WKBL 신선우 총재의 행보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첼시 리 사태에 대해 사과만 했을 뿐, 합당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프로스포츠 수장의 품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언론들이 아무리 공세를 펼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최근 몇몇 관계자는 "신선우 총재가 주변으로부터 조언을 들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사실이라면 신 총재는 주변의 조언도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버릴 정도로 자신의 자리보전에 급급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불통 총재다.

▲꽉 막힌 소통창구

지난주 박신자컵 서머리그 취재차 아산에 6일간 머물렀다. WKBL 사옥에서 열린 5일 이사회, 19일 재정위원회 역시 빠짐없이 취재했다. 최근 직, 간접적으로 WKBL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건 그 누구도 신 총재를 향해 직언하거나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특성상 직원들이 일반 회사로 치면 사장 혹은 대표인 총재에게 직언하거나 쓴소리를 날리는 게 쉽지 않은 건 인정한다. 정말 안타까웠던 건 재정위원회다. 애당초 WKBL 인사를 징계할 수 없는 기구라는 한계는 분명하다. 그래도 재정위원들이 진짜로 한국농구를 생각한다면 당시 신 총재에게 작심하고 쓴소리를 날렸어야 했다. 하지만, 최경덕 위원장을 비롯한 재정위원들은 재정위원회에서 오간 대화내용 자체를 취재진에게 공개하는 걸 극도로 꺼렸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정말 떳떳했다면 내용을 공개했을 것이다. 그날 재정위원회는 유명무실했다.

구단들의 태도도 프로답지 않다. 하나은행을 제외한 5개 구단은 지난시즌 내내 첼시 리의 신분이 수상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작 WKBL의 책임 회피에는 그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WKBL 구단들은 모두 모기업이 금융권이다. 최경환 명예총재는 여전히 WKBL에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새누리당 의원인 최 명예총재는 경제통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구단들이 WKBL에 직언이나 쓴소리를 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신 총재가 최 명예총재를 등에 업고 더더욱 여론에 귀를 닫는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WKBL을 둘러싼 소통 창구는 꽉 막혔다. 그 누구도 신 총재의 막강한 권력에 대항하지 못한다. 그 사이 농구 팬들의 여자프로농구 신뢰도는 처참히 무너졌다.

▲야당은 없고 예스맨만 있다

KBL, 대한민국농구협회의 현실도 비슷하다. 한국농구의 가장 큰 문제가 총재를 비롯한 수뇌부가 어떠한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모든 농구인이 최고 권력자인 총재 혹은 회장의 눈치만 볼 뿐, 그 누구도 한국농구를 위한 직언이나 쓴소리를 날리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한국농구에 건설적인 비판과 치열한 토론 문화는 없다. 리더들의 독선과 아집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 한국농구의 토양은 황폐화됐다. 국제무대서 도태됐다.

총재와 회장을 향한 직언과 쓴소리가 없는 현실이 한국농구에 미치는 악영향은 어머어마하다. KBL 김영기 총재가 밀어붙인 단신테크니션 제도는 지난 시즌 조 잭슨과 안드레 에밋의 빅히트로 성공적으로 정착된 것 같지만, 사실은 유망주들의 토양을 갉아먹는 단점이 숨어있다. 김 총재는 이 부분을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프로의 흥행에만 치중하면 된다고 여긴다. 아마농구를 외면하면 프로 근간이 흔들린다는 걸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야인들이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곧 임기를 마치는 방열 대한민국농구협회장은 지난 2년 반 동안 제대로 일궈낸 성과가 거의 없다. 스폰서 유치, 대표팀 시스템 확립, 농구 인프라 확충 등에서 지지부진함을 탈피하지 못했다. 심지어 올해 남녀 리우올림픽 최종예선, 2017년 FIBA 남녀아시아선수권유치를 선언했으나 말을 바꾸는 등 농구 팬들에게 혼란만 안겼다. 국제적 감각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정작 방 회장을 보좌할 유능한 인재가 부족하다. 옆에서 도와주면서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재가 전무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농구에는 야당은 없고, 예스맨만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소위 야인으로 불리는 농구인은 수 없이 많다. 이들은 현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또 다른 농구인들, 관계자들과 친분을 과시한다. 자연스럽게 일종의 라인을 형성했다. 농구는 끼리끼리 문화가 다른 종목보다 유독 심하다. 대부분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 한국농구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총재와 회장의 잘못된 행정에 직접적으로 쓴소리를 던지지 않는다. 눈 밖에 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농구의 행정적 과제는 명확하다. 수장에게 직언과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 특히 농구전문 행정가를 키워야 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굳건한 인맥과 라인이 만든 경직된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 사이 한국농구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신선우 WKBL 총재(위), 김영기 KBL 총재(가운데), 방열 대한농구협회장(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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