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리뷰] 오우삼X하지원 '맨헌트', 옛날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옛날 영화들은 늘 이렇게 끝나죠."

하지만 '맨헌트'는 그렇게 끝났으면 안 됐다. 액션 누아르물의 거장 오우삼 감독의 신작이 아니던가. 오우삼 감독은 현대물에 익숙한 관객들을 간과하고 자신의 멋에 취한 연출법으로 옛날 영화의 미덕을 보여주지 못했다. 러닝타임 내내 맥락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며, 무엇보다 그 시절 홍콩 누아르물을 사랑했던 팬들마저 외면하게 만들었다.

'맨헌트'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으로 얼마 전 국내 첫 공개가 됐다. 언론 시사회가 진행, 이례적으로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렀다. 문제는 '맨헌트'가 코미디물이 아닌 범죄 누아르물이라는 것. 황당무계한 전개에 객석 곳곳에서 실소가 터진 것이다.

베일을 벗은 영화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먼저 '맨헌트'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오우삼 감독이 지난 2014년 별세한 일본 배우 다카쿠라 켄에케 바치는 헌사의 의미로 그의 대표작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1976년)를 리메이크했다. 판권 문제로 이 영화가 아닌 동명의 일본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살인죄 누명을 쓴 변호사(장한위)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암살단과 특수경찰 팀의 추적으로부터 사투를 벌이고 배후 세력에 맞선다는 내용을 그린다.

40여 년 만에 스크린으로 옮겨졌지만 영화는 재해석되지 않고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오우삼 감독은 "소설이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세부적인 부분에 변화를 많이 줬다. 여성 킬러 부분이 추가돼 더욱 풍성해졌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변화를 둔 부분이 '맨헌트'를 더욱 '옛날 영화'스럽게 만들었다.

오우삼 감독의 작품에 처음으로 등장한 여성 킬러 캐릭터는 그의 딸 엔젤리스 우를 위해 급조한 역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원과 함께 킬러로 활약을 펼치는데, 현란한 총기 액션을 뽐내기만 하며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다.

지나친 친절함으로 지루함과 혼란스러움을 자아내기도. 이야기의 큰 틀은 변호사의 살인죄 누명 사건인데 두 여성 킬러를 소개하는 액션신으로 영화의 포문을 화려하게 연다. 이때 정작 주인공인 변호사는 주변인처럼 나타나 두 킬러와 짧은 첫 만남을 갖는다.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간 이 장면. 그러나 어느새 캐릭터를 뒤흔드는 중요한 신이 돼 있다. 하지원이 장한위에게 반한 결정적 장면으로 말이다. 냉철한 킬러였던 하지원은 장한위와 "요즘엔 옛날 영화들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라는 '옛날 영화'에 관한 대화 뒤 사랑에 빠졌고 총구를 겨누지 못하게 된다. 특별한 교감 없이 나홀로 로맨스를 펼치는 것이다.

이후 형사 역의 후쿠야마 마사하루에 대해 정성스럽게 소개하며 러닝타임을 할애한다. 갑자기 아동 유괴사건이 그려지는 것.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얼마나 유능한 형사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그 뿐이다. 이는 장한위와 콤비를 이루면서도 충분히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우삼 감독은 시그니처 비둘기로 결국 일을 냈다. '맨헌트'의 최고의 신스틸러, 아니 '신스틸둘기'가 아닌가 싶다. 극 초반, 주인공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본격적으로 장한위와 콤비를 이루기 전 난투극을 벌이던 중 돌바위 위에 머리를 부딪치는 아찔한 순간에 놓이게 된다. 이 순간, 비둘기가 후쿠야마 마사하루 코앞으로 날아들며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난데없이 남주인공을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하면서까지 비둘기를 강조하는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비둘기는 역시 '평화의 상징'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많은 스토리를 담고 싶었던 탓에 개연성은 떨어진다. 한중일 합작 영화로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각 역할이 품고 있는 사연은 방대하다. 하지원만 해도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는 킬러, 동료의 죽음에 대한 복수, 변호사 짝사랑, 배신감 등등의 설정을 갖고 있다. 이는 주연이 아닌 사실상 조연에 가까운 역할인데 말이다. 특히나 장한위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던 치웨이가 결국 그와 해피엔딩 결말을 맺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실소를 유발한다.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어느 부분 하나 속 시원하게 매듭이 지어지지 않았다. 겉핥기 식으로만 다뤄진다.

캐릭터가 힘을 못 쓰면서 배우의 매력은 당연히 엿보기 어렵다. 하지원부터 장한위, 후쿠야마 마사하루, 쿠니무라 준 등 아시아 톱스타들이 한데 뭉쳤지만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영화 속 "옛날 영화들은 늘 이렇게 끝나죠", "옛날 영화들엔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라는 대사들은 오우삼 감독의 남다른 자신감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자조적 메시지 같지만 이것이 바로 옛날 영화의 맛이라는 것을, 트랜드만 쫓아가는 실상을 꼬집는 뜻을 전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를 작품으로 증명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사실 젊은 연령층의 반응을 심각하게 고려하면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좋은 영화이면 세대를 불문하고 감동을 느끼고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싶다"라는 오우삼 감독. 이제는 분명히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맨헌트'는 오는 12월 국내 개봉 예정이다.

[사진 = 풍경소리, 부산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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