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봉준호 ‘옥자’, 소녀의 생명력을 위하여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소녀’는 대중문화에서 ‘생명력’의 은유로 읽힌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등에서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연과 생명의 위대한 힘을 역설했다.

봉준호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옥자’ 역시 소녀 미자(안서현)가 주인공이다. 미자는 영혼의 소울메이트인 슈퍼돼지 옥자를 구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에 정면으로 맞선다.

‘괴물’ ‘설국열차’ ‘옥자’로 이어지는 봉준호 감독의 ‘소녀 3부작’ 영화의 특징은 소녀의 모성애이다. 그의 영화에서 소녀는 자신보다 어리거나 힘이 없는 존재를 보듬는다.

‘괴물’의 현서(고아성)는 자신처럼 산 채로 괴물에게 잡혀온 세주(이동호)를 돌본다. 그는 집도 부모도 없이 세상을 떠도는 부랑소년 세주를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보호한다. 비록 현서는 죽음을 맞이하지만, 아버지 강두(송강호)는 세주를 품에 안아 그에게 밥을 먹이며 생명을 이어가게 해준다.

‘설국열차’의 열일곱 살 소녀 요나(고아성)는 다섯 살 흑인소년과 함께 생존했다. 요나가 어린 소년을 보호하고, 인류의 새로운 미래에 희망의 단초를 쌓으리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실제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 개봉 당시 영화 에필로그에 성장한 흑인소년이 내레이션을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여지를 남기기 위해 뺐다고 밝힌 바 있다).

‘옥자’의 미자는 거의 슈퍼돼지의 엄마처럼 행동한다. ‘마더’가 모성애의 암울한 버전이라면, ‘옥자’는 희망적 버전이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에서 교복 입은 소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 죄책감의 반작용이 소녀의 생명력이다.

‘옥자’에 등장하는 육식 시스템은 견고하다.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의 효율성(값싼 고기를 제공하겠다!)은 무너지지 않는다. 우울한 현실이 주는 씁쓸한 잔상 속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밝고 명확한 엔딩을 보여준다.

관객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을 것이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쇼박스,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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