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태훈, "믿음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 (인터뷰)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21경기 41⅓이닝.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성적이지만 그에게는 '반전 계기'를 마련한 숫자였다.

SK 와이번스 좌완투수 김태훈. 그는 구리 인창고 시절 '퍼펙트맨'으로 이름을 떨쳤다. 2008년 미추홀기에서 고교야구 사상 첫 퍼펙트를 기록한 그는 SK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하지만 프로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부상과 군 복무로 인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27경기 등판에 그쳤다. 2016년에도 15경기에 나섰지만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4.30에 만족했다. 투구 이닝 또한 14⅔이닝이 전부였다.

2017시즌에는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어느 정도 각인했다. 2017시즌 성적은 21경기 2승 2패 3홀드 평균자책점 6.53. 비록 평균자책점은 높았지만 시즌 중반까지 팀에서 그의 역할은 기록, 그 이상이었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김태훈을 선발로 6차례 내세웠으며 불펜일 때는 중요한 순간 내보낼 때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태훈이 돌아보는 2017년은 어떤 모습일까.

▲ "100점 만점에 30점… 믿음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

김태훈은 시즌 초반 1군에 없었다. 스캇 다이아몬드의 부상을 틈타 기회를 잡았고 이를 살렸다. 시즌 첫 등판이자 선발 등판인 5월 7일 고척 넥센전에서 4⅓이닝 5피안타 4탈삼진 1볼넷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했다. 이어 5월 26일 LG전에서는 5⅓이닝 5피안타 5탈삼진 1볼넷 무실점 투구 속 감격의 데뷔 첫 승을 거뒀다.

연일 안정된 투구를 이어가자 마운드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도 늘어났다. 힐만 감독은 그를 선발은 물론이고 가끔씩 불펜으로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부진한 경기가 늘어났다.

김태훈은 "올시즌을 점수로 평가한다면 100점 중에 30점 정도 같다. 목표 이닝도 못 채우고, 1군에서 자리도 못 잡은 상태다"라고 말한 뒤 "기복이 심하다보니 2군에도 몇 번 내려갔다. 감독님, 코치님께서 믿고 내보내 주셨는데 보답을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간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에 (채)병용이 형, (고)효준이 형, (전)병두 형은 그런 역할을 잘 소화했는데 나는 아직까지 그 정도의 선수가 아니라 힘들었던 것 같다. 믿음 속에 활용을 하려고 하신 것이기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선발 등판 사이) 불펜 피칭 대신 (불펜으로) 나갔던 것이라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고 돌아봤다.

▲ 잊지 못할 '절친' 안치홍과의 대결

김태훈은 프로에 데뷔하기 전인 2009년, 안치홍(KIA 타이거즈)과 대결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김태훈과 안치홍은 구리리틀야구단과 구리 인창중에서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안치홍이 훈련소에 갈 때도 함께 했으며 5일 열린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총회 전날에도 만나는 등 서로는 친구, 그 이상의 존재다.

하지만 1군 무대에서의 맞대결은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안치홍은 데뷔 첫 해부터 1군 무대에 안착한 반면 김태훈은 부상 등으로 인해 공백이 있었기 때문.

올해 5월 14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드디어 맞대결이 이뤄졌다. 이날 선발로 나선 김태훈은 1번 김주찬부터 2번 이명기, 3번 나지완, 4번 최형우, 5번 이범호까지 모두 범타로 처리했다. 드디어 6번 안치홍과의 만남. 결과는 볼넷이었다.

두 번째 타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치홍을 만나기 전까지 6타자 연속 범타 행진을 이어가던 김태훈은 안치홍을 만난 뒤 급격히 제구가 흔들렸다. 또 한 번 볼넷. 안치홍과의 만남 이후 제구가 흔들린 탓에 이날 김태훈은 4이닝만 소화했다.

김태훈은 "첫 대결에 앞서 (안)치홍이도 타석에서 웃더라. '얘는 무조건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몸에 힘이 들어갔다. 당시에 (이)홍구형이 포수였는데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고 웃었다.

이어 그는 "이후 다른 경기에서 세 번 더 만났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삼진 2개를 잡았다(5타석 3타수 무안타 2볼넷)"고 으쓱하며 말했다. 또 그는 "삼진을 잡을 때 체인지업만 5개를 던진 적이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 연락이 와서 '체인지업만 5개 던지는 것은 반칙 아니냐'고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 "말 뿐이 아닌, 정말 풀타임을 소화하고 싶다"

비록 김태훈 본인은 올시즌을 30점이라고 평가했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시즌이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으며 아프지 않고 한 시즌을 소화했다.

김태훈은 "군대 가기 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재활 파트에 있었지만 3년 동안은 1군이든 2군이든 계속 던졌다. 이제는 부상에 대한 불안감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할 수는 없다. 그는 "이제는 말 뿐이 아닌, 정말 풀타임을 소화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10월말부터 한 달여간 진행된 가고시마 캠프에도 참가했다. 김태훈은 "올해 체력적으로 힘들었다"며 "때문에 구속이 많이 떨어졌다. 이로 인해 (타자와의 승부 때) 피해가는 것도 있었다. 공이 빠른 투수였는데 느려지다보니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살을 빼면서 스피드와 회전력을 늘리려고 노력했다. 또 주자 있을 때 흔들린 적이 많아서 그 상황을 생각하면서 연습했다. 코치님과 형들은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하는데 (시즌이 끝난 뒤) 편한 상태에서 한 것이라 잘 모르겠다. 일단 유지를 계속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140km대 중반대 구속도 나오는 김태훈이지만 시즌 중반 힘이 떨어졌을 때는 최고구속이 141km에 130km대 구속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이번 가고시마 캠프 라이브 피칭 때는 143~144km까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12월과 1월 계획을 특별히 잡은 것은 없지만 내 자신과 약속을 했다. 캠프 때 공이 좋았으니까 그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일주일에 4~5번 정도는 캐치볼을 하려고 한다"고 계획을 드러냈다.

김태훈에게 2017년은 희망과 아쉬움이 공존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올시즌 경험들이 '2018시즌 김태훈'에게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SK 김태훈. 사진=마이데일리DB, SK 와이번스 제공]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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