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이 던지고 싶었던 질문들 [장영준의 망중한]

[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광복 70주년을 맞아 KBS에서 준비한 2부작 특집극 '눈길'(극본 유보라 연출 이나정)이 3·1절을 맞아 지난달 28일과 3월 1일 이틀 연속 방영됐다. 1994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아픈 역사를 견뎌낸 두 소녀의 가슴 아픈 우정을 그린 작품인데, 반응은 뜨거웠다.

'눈길'은 본격적으로 위안부를 소재로 한 드라마다. 일제시대가 배경인 드라마에서 위안부가 종종 등장하기는 했지만 '눈길'처럼 본격적으로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최초이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불편하고 부끄럽게 인식되고 있는 역사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대본을 집필한 유보라 작가는 '눈길' 집필 전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제작진에 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 직접 수요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작가의 의지와 공영방송 KBS가 의기투합하면서 '눈길'이 탄생할 수 있었다.

위안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정작 그 피해자들이 당시에 겪었을 공포와 아픔, 그리고 상처는 좀처럼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도 언론을 통해 숱하게 보도가 됐지만 여전히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위안부라는 단어를 들을 때면 으레 자극적인 장면들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눈길'은 그런 자극적인 모습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두 소녀를 중심으로 그들의 감정선에 초점을 맞춰 당시 일본군에 끌려간 소녀들이 느꼈을 감정들을 시청자들로 하여금 오롯이 이입하도록 만들었다.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돼 임신과 낙태를 반복하고, 점점 폭력에 길들여지는 모습.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극한의 공포와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다시 그곳을 떠나야했던 아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답답한 현실까지. '눈길'은 담담하게, 그러나 극중 종분(김향기, 김영옥)과 영애(김새론)를 통해 직설적으로 이 모두를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함영훈 CP는 제작발표회에서 "드라마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 바로 드라마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눈길'이 묻고자 했던 건 "그 분들의 아픔을 알고 계셨습니까?" "아직도 그 분들에게 편견을 갖고 계십니까?"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아십니까?"가 아닐까.

그래서 '눈길'과 같은 드라마는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질문이 계속돼야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벌써 평균 연령이 90세이 이르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집회를 하고, 정부에 항의를 하고, 일본 측에 사과를 요구해도 좀처럼 진전이 없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드라마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책임있는 자들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KBS 2TV 광복 70주년 특집극 '눈길' 주요 장면. 사진 = KBS 방송 화면 캡처]

장영준 digou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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