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세번째 살인’,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의 섬뜩함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누군가 떠난 뒤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을 견디며 살아가는지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데뷔작 ‘환상의 빛’부터 최근작 ‘태풍이 지나가고’에 이르기까지 그는 상실을 경험한 보통 사람들이 고통을 안으로 삭히거나 애써 잊기위해 하루하루를 인내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즐겨 다뤘다. 특히 힘들게 살아가는 인물이 예상치못한 곳에서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을 섬뜩하게 포착낼 때, 그의 연출력은 전율을 불러 일으킨다.

‘세번째 살인’은 그동안 가족영화에 주력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살인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법정영화를 다뤘다는 점에서 단연 눈에 띈다. 승소 밖에 모르는 냉철한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자신을 해고한 공장 사장을 살해하여 사형이 확실시되고 있는 미스미(야쿠쇼 코지)의 변호를 맡으면서 혼란에 빠지는 이야기다.

언뜻 보면, ‘세번째 살인’은 그의 전작들과 궤를 달리하는 사회 드라마처럼 보인다. 일본 사법 시스템의 부조리를 통해 진실의 유무를 곱씹게 만든다. 특히 교도소 면접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시게모리와 미스미가 대화를 나누는 대목은 높은 밀도감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과연 세 번째 살인의 주체가 누구인지 반문하는 힘을 지녔다.

이 영화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천착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고통스러운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의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는 부엌에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내면의 상처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얼굴 표정은 온 몸의 신경세포가 순식간에 움츠려드는 섬뜩함이 서려있다. 이때 조명은 사키에의 얼굴 반쪽을 어둡게 드리운다. 진실은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서 고개를 내민다.

이 장면은 ‘걸어도 걸어도’의 부엌신을 떠올리게 한다. 큰 아들을 잃은 삶의 피해자인 어머니(키키 키린)가 작은 아들에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벌을 받지는 않을거야”라고 차갑게 말하는 장면 역시 꼭꼭 숨겨놓았던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오랜 시간 삭히고 삭힌 마음의 통증이 명료한 대사 속에서 울리는데, 그 마음이 관객의 내면까지 흔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응시하는 곳은 깊게 내상을 입은 보통 사람의 마음 속이다. 그곳에선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고,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슬픔이 심연 속에 잠겨 있다. 관객은 그의 카메라를 따라 심연으로 내려간다. 거기에 삶의 진실이 있을테니까.

[사진 제공 = 티캐스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