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10시 경기 대성공, KBL·WKBL 틀을 깨라 [김진성의 야농벗기기]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틀을 깨야 한다.

KBL이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실시한 밤 10시 경기가 대성공을 거뒀다. 구랍 31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오리온-SK전은 한국에서 가장 늦게 시작한 프로스포츠 경기였다. 경기 후 1월1일 0시에 맞춰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를 실시했다.

농구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주일전에 시작한 1~2층 온라인 티켓 예매가 일찌감치 마감됐다. 경기시작 2시간 전부터 판매한 3층 티켓도 전반전이 끝난 뒤 다 팔렸다. 6083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빈 자리는 없었고, 일부는 복도에 앉아서 관전했다. 2011년 고양체육관 개장 이후 최다관중이었다. 오리온 정규시즌 홈 경기가 매진 된 것도 처음이었다.

오리온과 KBL이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와 함께 준비한 각종 이벤트도 볼 만했다는 평가다. 농구 팬들은 농구도 보고 공연도 감상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누렸다. 타 구단들도 각종 상품들을 후원하며 동업자 정신을 발휘했다.

KBL도 밤 10시 경기 대성공에 고무된 분위기다. KBL 관계자는 "앞으로 12월31일 경기는 전부 밤 10시에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라고 웃었다. 당장 올해부터 정례화될 가능성이 있다. 오리온 추일승 감독도 "KBL만의 전통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SK 문경은 감독은 이런 이벤트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감독은 "12월 31일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에도 밤 늦게 시작해도 된다. 제주도, 광주 등 프로농구 연고가 없는 곳에서 경기를 해도 된다. 우리가 매년 여름에 찾는 상주도 체육관 시설이 좋다. 팬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나"라고 했다. 올 시즌 교체한 24초 계시기의 이동 문제에 대해서도 "싣고 내려가야죠"라고 했다.

문 감독 발언은 KBL과 10개 구단이 프로농구 인기부활을 위해 팬들에게 좀 더 다가서야 한다는 뜻이다. 농구라는 상품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변화가 필수적이다. 한 농구관계자는 "농구 그 자체만 빼고 깰 수 있는 틀을 모두 깨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농구가 위기에 빠졌다는 말 자체가 진부하다. 국제경쟁력은 물론이고, KBL, WKBL이 자체적인 콘텐츠만으로 팬들에게 어필하는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났다. 밤 10시 경기와 신년 카운트다운 이벤트, 중소도시 개최 그 이상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안타까운 건 KBL, WKBL, 남녀 16개 구단 현장 프런트, 구단 수뇌부들 중에서 오픈 마인드, 다시 말해 진정한 팬 퍼스트 마인드를 지닌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적어도 기자는 KBL, WKBL 현장에서 수년째 그렇게 느낀다.

그저 소속팀의 매 경기 승패에 희비가 엇갈린다. 어쩌다 모기업 고위층들이 현장에 찾아오면 의전에만 급급한 구단이 수두룩하다. 구단 고위층들이 경기 후 선수단을 격려하는 건 좋지만, 홈 팬들이 경기장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건 더더욱 아쉽다. 어떻게든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이기주의도 극심하다. 특히 KBL 구단들보다 금융, 보험사들로 구성, 라이벌 의식이 팽배한 WKBL 구단들이 더하다. (팬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들만의 자존심 싸움일 뿐이다) KBL만 해도 이번 밤 10시 경기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사실 일부 구단들과 현장 지도자들은 은근히 난색을 드러냈다.

KBL, WKBL 16개 구단 모기업들은 구단에 시즌 운영비만 지원한다고 끝이 아니다. 경제와 시국이 좋지 않아 돈 한푼 벌지 못하는 스포츠 구단들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건 이해한다. 그래도 특정 분야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면 농구를 통해 팬들에게 서비스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구단 고위층들, 그리고 구단 살림을 책임지는 단장들부터 리그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한국농구 발전을 위해 분발해야 한다. 눈 앞의 1승, 한 시즌 성적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한다. 경기장에서 경기 대신 팬들부터 쳐다봤으면 좋겠다. 모기업 고위층들, 단장들이 앉는 일부 경기장의 고급스러운 의자들을 보면 권위주의가 느껴져 불편하다. 고위층들, 단장들의 마인드부터 진정한 팬 퍼스트로 바꿔야 현장 프런트들이 농구 흥행과 발전을 위해 사고의 틀을 깰 수 있다.

농구 팬들은 12월31일 밤 10시 팁오프에 열광했다. 신년 카운트다운 이벤트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왔다. 이제 KBL, WKBL, 16개 구단 구성원들이 다시 답할 차례다.

[1월1일 카운트다운 행사. 사진 = 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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