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찬-홍준학"혼연 일체의 자세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마이데일리 = 이석희 기자]삼성이 한달 가까이 이어온 13연패에서 탈출했다. 삼성은 지난 24일 고척 키움전서 8-0으로 승리였다. 지난 6월30일 대구 KT전부터 시작된 13연패의 지긋지긋한 사슬도 끊었다. 무려 25일만에 맛본 승리였다.

지난 한달 가까운 시간을 되돌아 보면 삼성은 정말 무능한 팀이었다. 몰염치하게도 삼성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삼성 관련 일화가 하나 생각났다. 타계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관련한 것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애니콜 화형식’이다.

당시 기사를 보면 이건희회장은 삼성이 모토로라를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게 애니콜을 출시하다보니 휴대폰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소비자들과 대리점 점주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다. 점주가 애니콜 소비자들에게 빰을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받은 이회장은 격노했다. 이회장은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경북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애니콜 화형식’을 지시했다.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라.”

이건희회장이 불같이 화를 낸 때문인지 구미공장 직원들은 운동장 한 편엔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리고 운동장 한복판에는 15만대의 휴대폰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망치를 손에 쥔 10여명의 직원은 휴대폰을 박살냈고, 불까지 질렀다. 500억원어치의 휴대폰이 불길에 휩싸였다.

이것이 바로 ‘애니콜 화형식’이고 이로 인해 품질 최우선인 고급화 전략으로 지금의 ‘갤럭시 신화’를 만들어 낸 원동력이 됐다.

삼성 13연패와 ‘애니콜 화형식’을 비교한 것은 너무 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올 해 삼성의 캐치 프레이즈가 뭔지 알면 수긍이 좀 갈 것이다.

구단 홈페이지 첫 화면 구단 소개에 원기찬 구단주와 홍준학 단장의 이름을 걸고 이렇게 적혀 있다. ‘2022 혼연일체의 자세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아마도 지난 해 공동 1위까지 올라갔던 정규리그의 결과는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재도약하겠다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특히 혼연일체의 일자를 한문이 아닌 아라비아숫자 '1'로 적어 놓은 것을 보면 1등을 하겠다는 야심을 숨겨 놓은 듯 하다.

하지만 올 시즌 내내 이 구호를 행동으로 옮겼는 지는 정말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혼연일체, 다시 시작 등 구호는 거창했지만 행동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구단 수뇌부는 팬들의 아우성에 모르는 척 귀를 막고 입을 닫은 것처럼 보였다. 27년전 화형식을 지켜봤을 원기찬 구단주도 모른척 했다. 팬들의 불만을 깡그리 무시해도 유분수일 정도였다.

팬들은 수뇌부가‘애니콜 화형식’같은 결단도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13연패 동안 원기찬 구단주와 홍준학 단장, 허삼영 감독의 태도에 팬들은 정말 어이없어 했다. 마치 ‘요행’을 바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언젠가는 연패가 끝이 나겠지’라는 '인디언식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 같아 보여서다.

오죽 답답했으면 13연패후 팬들은 이런 글을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한 삼성팬이 기자에게 보낸 ‘상소문’형식의 글을 보면 정말 철저하게 구단 수뇌부는 이건희 회장과 반대로 행동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 부분만 적었다(원문은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에 있다고 한다).

‘봉구의 봉자도 모르는 전하를 업신여긴 간신 홍준학은 허당 허삼영을 앞세워 사자국의 존엄한 위엄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나이다.

그동안 도탄에 빠진 사자국의 백성들은 백방으로 이런 잘못을 바로잡아줄 것을 전하께 탄원하였으나 전하께서는 집행유예기간의 중죄인이라 그 어느 하나 소신대로 결정을 내리시지 못하고 계시나이다.‘

이에 사자국의 백성들은 다음과 같이 시무(時務) 삼조(三條)를 주청드리오니 부디 굽어 보살펴주시기를 간청 하나이다.

1. 금번 어린이 스케치북 검열사태에 대한 관련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대국민 사과를 하소서.

2. 사자국의 위신을 나락으로 빠지게 한 삼악(三惡) 원,홍,허는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시고

3. 1, 2항의 조치가 끝나는 즉시 전하께옵서는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 낙향하여 중죄인의 자세를 갖추고 남아있는 형집행을 경건하게 이행하소서.'

[13연패후 고개숙인 삼성 선수들. 사진=고척 송일섭 기자, 삼성 홈페이지]

이석희 기자 goodlu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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