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씽로튼', 뮤지컬에 바치는 헌사…양요섭 진가 빛났다 [마데핫리뷰]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인류 최초 뮤지컬이 탄생하는 순간은 어땠을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지만 쉽게 다룰 수 없었던 '뮤지컬의 기원'에 독창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뮤지컬 '썸씽로튼'이 마침내 돌아왔다. 2019년 코로나19로 아쉽게 막 내렸던 초연이 원작에 충실했다면, 이번에는 한국적 색채를 입혀 관객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간다. 예컨대 대표 넘버 '어 뮤지컬(A Musical)'에 '서편제'의 곡조를 삽입하고, 전 세계 흥행 돌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이러다 다 죽어"란 대사를 인용해 깨알 같은 웃음을 만든다. 오직 국내 공연에서만 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달 23일부터 공연하고 있는 '썸씽로튼'은 낭만의 르네상스 시대를 대변하는 극작가 셰익스피어에 맞서 뮤지컬을 제작하게 된 바텀 형제의 고군분투를 담았다. 초연을 이끌었던 이지나 연출, 김성수 음악감독, 서병구 안무가가 재차 힘을 합쳐 완성도 높은 호흡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언어유희다. 작고 변변하지 못한 극단의 대표 닉 바텀은 올리는 공연마다 쫄딱 망하는 것도 모자라 후원까지 끊긴다. 동생인 극작가 나이젤 바텀은 뛰어난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닉과 나이젤의 성은 바닥을 의미하는 '바텀(Bottom)'. 형제는 '톱(Top) 작가' 셰익스피어를 누르고 정상에 오를 것이라며 '바텀스 고너 비 온 톱(Bottom's gonna be on top)'을 불러 자조적인 실소를 날린다.

닉은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를 찾아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맞설 강력한 한방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닉이 만난 노스트라다무스는 그의 조카 토마스다. 어딘가 나사 풀린 듯 허술한 토마스는 훗날 노래로 연극을 하는 뮤지컬의 인기를 내다본다. 셰익스피어의 미래 역작은 '햄릿(Hamlet)'이 아닌 '오믈릿(Omelette)'이 될 거라고도 한다. 닉은 우여곡절을 거쳐 달걀이 노래하고 춤추는 첫 뮤지컬 '오믈릿'을 무대에 올린다.

'썸씽로튼'의 두 번째 재미 요소는 곳곳에 숨은 뮤지컬을 찾아내는 데 있다. '레미제라블', '싱잉 인 더 레인',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캣츠' 등의 대사와 장면 일부가 여기저기 녹아들어 있다. 뮤지컬에 바치는 160분짜리 헌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뮤지컬 팬이라면 웃음을 넘어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강필석, 이충주, 양요섭이 닉, 서경수, 윤지성이 셰익스피어를 연기한다. 나이젤은 임규형, 황순종, 닉의 아내 비아는 이영미, 안유진, 이채민이 분했다. 포샤는 이지수, 이아진, 장민제, 토마스 노스트라다무스는 남경주, 정원영이 번갈아 맡는다.

특히 양요섭의 호연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맞은 그는 '광화문연가', '조로', '로빈훗', '신데렐라', '그날들'을 비롯한 다수의 경험으로 쌓은 공력을 총동원해 관객을 마구 빨아들인다. 셰익스피어에게 질투심을 드러내는 모습은 얄미우면서도 딱하고, 대신 생계유지에 나선 아내를 통해 무능력한 가장의 면모가 드러날 땐 짠하다. 셰익스피어와의 탭 댄스 대결에서는 14년 차 아이돌로서 갈고 닦은 기량을 보란 듯 뽐낸다. "멋진 선후배, 연출, 스태프와 호흡을 맞추며 많은 관객에게 웃음을 드리는 일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라는 말마따나 양요섭의 닉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뮤지컬 '썸씽로튼'은 오는 4월 10일까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사진 = 엠씨어터]

양유진 기자 youjiny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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