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 '렛미인' 600:1 주인공 안승균 "10년치 운 다 쓴것 같아요"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올해 나이 스물셋. 어린 나이에 덜컥 연극 ‘렛미인’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600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었고, 신인임에도 큰 무대에 당당히 섰다. 캐스팅부터 화제를 모은 배우 안승균은 작은 체구임에도 무대를 꽉 채웠다. 신선한 눈빛과 특유의 에너지가 관객들을 단번에 홀렸다.

연극 ‘렛미인’은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외톨이 소년 오스카의 가장 매혹적이고 잔인한 사랑 이야기로 안승균이 연기하는 오스카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인생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겁이 많은 캐릭터지만 일라이를 만나면서 서서히 사랑의 감정에 들뜨고, 자신의 삶에 애착을 갖게 되는 인물이다.

지난해 소극장 뮤지컬로 데뷔한 안승균은 올해 연극 ‘렛미인’을 통해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부담을 느낄 법도 하지만 안승균은 부담감보다 책임감을 갖고 있다. 아직 어리고, 자신이 걸어 나갈 길이 그리 짧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됐든 사람들은 저란 사람, 저란 배우를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예술의 전당에 제 사진이 걸려 있고, 공연이 끝나고 평을 해주는 걸 보면 감사하고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책임감이 생겨요. 배우라는 이름을 가져버렸잖아요. 정말 배우라는 직업에 있어 책임감을 갖고 이 일을 더 간절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현재 국민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중인 안승균은 지난해 단편영화에 출연하고 뮤지컬 ‘마이맘’, 연극 ‘비행소년 KW4839’을 통해 무대에 섰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 설 수 있는 무대가 감사했고, 즐거웠다. 영화, 연극, 뮤지컬은 다르지만 같다는 생각으로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으려 했고, 그 기회는 ‘렛미인’에서도 얻게 됐다.

안승균은 “10년치 운 다 쓴 것 같아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렛미인’은 공연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신시컴퍼니에서 제작한 연극인데다 원작 팬이 워낙 많아 기대가 큰 작품이었다. 공연장 역시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이라는 큰 무대인 만큼 주요 배우들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런 작품에 안승균을 비롯 박소담, 이은지, 오승훈이라는 신예들이 이름을 올린 것이다.

“안 믿겨졌어요. 주변 사람들도 ‘100% 떨어질 거다’, ‘좋은 경험이다’, ‘아무리 잘해도 네가 신인인데 누가 그렇게 큰 배역을 주고, 큰 무대에 서게 하겠냐’ 등의 반응이었죠. 현실적인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얘길 들으니까 오기가 생겼다가 기가 죽더라고요. 전 시작한지도 얼마 안 됐고 이 현실을 잘 모르니까 ‘그렇구나’ 했어요. 그래서 기대도 안했는데 오디션 보는 동안 너무 재밌는 거예요. 4차 오디션까지 있었는데 정말 후회 없이 했어요. 욕심도 없었고요. 그냥 영화 ‘렛미인’을 너무 재밌게 봤기 때문에 오스카란 배역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서사극을 만나 누군가 대화를 하며 연기하니까 과정 자체가 재밌었어요. 춤을 전공해서 무브먼트를 좋아하는데 3차 오디션은 또 무브먼트였거든요. 진짜 오디션 자체가 너무 재밌었어요.”

오디션 현장, 연습 등 안승균에겐 모든 것이 재밌었다. 그는 “오디션 과정에서 연습할 때 밤에 놀이터에서 칼 들고 움직이는 장면을 연습했는데 실제로 경비 아저씨가 수상한 사람인 줄 알고 오기도 했다”며 “최종 오디션 때는 존 티파니 연출이 ‘똑똑한 배우 같다’고 해서 너무 신났다. 이후에 연기를 더 보고싶다며 지목해서 이은지 누나와 파트너가 돼 연기를 했다. 둘이서 너무 재밌게 했는데 누나가 확실히 편하게 리드를 해줘서 나도 잘 할 수 있었다. ‘이 누나는 꼭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합격했고, 나도 함께 만나게 되니 신기했고 감사했다”고 털어놨다.

오디션부터 재밌었다는 이 배우. 진정 즐길 줄 아는 대범한 배우였다. 고등학교 때 영화로 ‘렛미인’을 접한 그는 판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작품에 매력을 느꼈다. 오디션을 앞두고는 소설을 3일 만에 읽었다. 이를 통해 디테일한 부분을 더 캐치할 수 있었고, 처음 ‘렛미인’을 접했을 때 느꼈던 감성과 공감을 다시 끌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오스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일까. 함께 오스카 역에 발탁된 오승훈은 이후 안승균에게 ‘오디션장 엘리베이터에서 널 봤을 때부터 오스카 같았다’고 말했다고.

이미 오스카였던 그의 모습은 ‘렛미인’ 제작진 눈에도 보였다. 4차 오디션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오스카 역을 얻었다. 본인은 말 할 것도 없고 주변에서도 신기해했다. 안승균을 아는 사람부터 모르는 사람까지 다양한 반응이었다.

안승균은 “처음에 캐스팅 공개가 됐을 때는 홍광호 선배님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며 웃은 뒤 “모두가 호의적인 반응이라 놀랐다. 인정해주는 분도 있었고 진심으로 축하하며 응원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다들 호의적인 반응이었기 때문에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도 당연히 있었어요. 하지만 연습 과정 때 많이 버리려고 노력했죠.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조바심도 들고 부담도 됐었어요. 팀에서 막내고 경력도 많은 애가 아니니까요. ‘렛미인’ 연습 때 ‘비행소년 KW4839’ 지방 공연을 하고 있어서 연습에 빠졌었는데 오니까 1막 연습이 끝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이 돼서 더 조바심이 생겼어요. 큰 배역을 맡아 놓고 못하면 욕먹을 것 같았고, 제작진이나 배우들, 신시컴퍼니에서 절 미워할까봐 무서웠어요.(웃음) 그래서 그 때 더 욕심을 많이 부렸던 것 같아요.”

안승균 본인은 조바심을 느꼈지만 연출진은 오히려 안승균에게 ‘똑똑하다’고 칭찬했다. 하루만에 연습 때 못했던 부분들을 모두 외워 다음날 런을 돌았기 때문. 그러나 이 또한 안승균을 불안하게 했다. 똑똑하다는 것이 외우는 것 자체를 말하는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진심이 들어가지 않은 계산적인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심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항상 진심이란 말을 일부러 해요. 계속 자극시키고 싶어서요. ‘절대로 착각하지 말자’고 계속 생각하죠. 뭔가 성격상 그렇기도 하고 댄서 활동을 하며 퍼포먼스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보여지는 것에 신경 쓰게 되거든요. 그래서 계속 ‘진심, 진심’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사실 지금 저는 테크닉도 없고, 완전 노력파라고 하기도 부끄러워요. 그런 지점에서 계속 잘 할 수 있는 것은 진심이란 말밖에 없더라고요. 무대에서도 항상 되새기려고 해요. 분명히 좋은 기회가 왔고, 아니나 다를까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는데 그러다 보면 착각하게 될 것 같거든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목표가 뭔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이 작품을 하면서 다시 정리하고 고민하고 있어요. 벌써 이렇게 큰 작품을 하는 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처음부터 너무 큰 작품을 했는데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했는데 이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도 깨달았죠.”

안승균은 ‘렛미인’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있었다. 작품을 통해 만난 선배들을 통해 ‘나 정말 어리다’라는 것도 많이 느꼈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다. 자책하고 후회하고 고민하며 분명 많은 것들을 깨닫고 있다. 더 경험하고 싶고 더 고민하고 싶다.

숱한 고민을 거치고 있기 때문일까. 안승균은 영리하면서도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진심을 바탕으로 영리함이 발현되니 그의 오스카는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오스카라는 인물에게 객관적으로 다가갔어요. 아빠는 게이, 엄마는 알콜중독자, 학교에선 왕따, 상상력이 풍부하고 여린 아이. 혼자 놀기 좋아하는 아이 이런 식으로요. 그러고나서 대본을 정말 많이 읽으면서 느낀 건 오스카는 평범하다는 거예요. 너무 있을법한 인물인 거죠. 힘든 가정환경 속에서 살았는데도 이 정도로 큰거면 너무 착한건데 자꾸 안 좋은 일들만 겪으니 불쌍했어요.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불쌍하다기보다 외로워 보였으면 했어요. 그래서 더 평범하게 연기하고 싶었죠. 사실 오스카는 영리해요. 물론 자라는 환경 때문에 영리해진 것도 있고요. 그래서 일라이와의 관계가 더욱 와닿아요.”

안승균은 오스카가 일라이를 만나며 갖게 되는 마음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했다. “‘가끔 너네 집에서 너랑 너네 아빠 싸우는 소리가 들려’라고 하는데 그게 ‘나도 그래. 그 마음 알아. 안아줄게’ 이 마음 같아요. 제 상상에 오스카는 일라이랑 하칸이랑 싸우는걸 벽을 통해 들으면서 웃었을 것 같아요. 이유가 생긴 거죠. ‘나도 저 마음 아는데. 위로해줘야겠다’. 오스카에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질문해주는 사람이 너무 오랜만이니까 일라이와 더 함께 하고 싶은 거예요.”

안승균은 기억에 남는 장면 역시 일라이를 향한 오스카의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을 꼽았다. “마지막 수영장 신에서 물 속으로 들어가 잠수를 하는데 실제로 배우 안승균도 죽을 것 같아요. 항상 긴장 되고 목에 담 올 것 같거든요.(웃음) 그 장면에서 일라이가 꺼내주니 얼마나 고맙겠어요. 근데 그 때 눈을 마주치고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너 코피나’예요. 자기가 죽을 뻔 했는데 일라이 코피 나는 게 더 걱정되는 거죠. 항상 뭔가 당하고 힘들 때 일라이가 나타나 구해주고 위로해줘요. 그러니 일라이가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서 이후에 일라이와 떠날 때 더 단단하게 연기하려고 해요. ‘이제는 내가 지켜줄게’ 이런 마음으로 떠나는 거죠. 이렇게 미친 듯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직 열두살인 이 자식이 너무 부러워요. 오스카는 이후에 하칸처럼 살아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처음엔 ‘일라이 몇 번째 남자야!’ 하면서 장난쳤지만 그만큼 정말 매력 있는 인물이라 연기하면서도 단순히 순수한 사랑이 아닌 오스카의 마음이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승균과 이야기 하면 할수록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작품을 대하는, 인물에 다가가는, 상대역과 호흡하는 자세가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진정으로 오스카가 어떻게 해야 더 외로워 보이고 고독할까를 생각하며 계속 나를 체크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그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계속 고민하는 건 오래 하고 싶으니까 그래요.(웃음) 결국 들통 날테니까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죠. ‘렛미인’에서는 이미지가 맞아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거든요. 안주해버리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며 항상 채찍질해요. 연기가 정말 어려워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적응하게 되는 게 제일 무섭죠. 항상 마음을 비우면서도 고민하면서 하려고요. 뭔가 해보려고 하는 순간이 방해가 되더라고요. 일부러 표현하려 하지 말자고 (오)승훈 형이랑도 계속 얘기했어요. 승훈 형이랑은 스승님이 같아서 더 친해질 수 있었는데 서로 얘기도 많이 하고 챙겨줬어요. 둘 다 열정을 갖고 시작하는 단계라 ‘같이 성공하자’, ‘진짜 열심히 하자’고 하면서 서로 인정해줬어요. 그래서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고 서로 윈윈한 것 같아요.”

작품 이야기만으로도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풍부했다. 그래서 더 안승균 자체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아직 어리지만 풍부한 그의 인생 이야기가 그가 보여줄 행보에 대한 기대를 더 높였다.

안승균은 학창 시절 스트릿 댄서 활동을 했다. 1년간 공연을 하며 경험을 많이 쌓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연극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슬픈 연극이 아닌데 오열했다. 너무 멋있어서 울었다. 눈물을 흘리는 본인이 신기했다. 그 때부터 연기자로 꿈을 바꿨다.

“커튼콜 때 눈물이 터졌어요. 선배들이 하는 학교 공연이었는데 그걸 보고 ‘이거다. 이거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선생님한테 바로 가서 연기하고 싶다고 전과시켜달라고 했어요. 근데 제가 댄스과 2기라서 선생님이 일단 댄스과에서 열심히 해주길 바라셨어요. 그래서 1년동안 열심히 한 거예요. 춤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연기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죠. 상도 많이 타고 전과하고 싶어서 성적 관리도 열심히 해서 내신 1등급으로 관리를 하니까 선생님들이 예뻐해주셨어요. 그렇게 하고 전과를 했어요. 처음에 다가왔던 연기는 그렇게 춤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뭐라고 그렇게 울었을까 신기한 분야였어요. 운명을 만난 것처럼 살아있는 느낌이었죠. 평생 연기가 하고싶어졌고, 연기를 배우는 과정이 너무 신났어요.”

안승균에게 연기는 오스카의 일라이였다. 운명과도 같았고, 인생을 통째로 흔들었다. 연기를 배우며 깨지고 혼나는 것도 좋았다. 모든 게 새로웠고 신기해 계속해서 시도하고 싶었다. ‘넌 어리니까 넘어져서 상처가 생겨도 금방 아문다. 부러져도 된다’고 말하는 선배들의 말도 와닿았다. 더 자극 받고 더 경험하고 싶다.

“제가 흥이 많아요. 그래서 뭘 해도 재밌게 작업하고 싶어요. 사실 지금 제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건가 고민되기도 해요. 즐기기보다 무조건 파고들고 고민하는 게 먼저인가 싶기도 하죠. 계속 이렇게 고민하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렇게 배우면서 관객들에게 ‘저 배우가 연기하면 매력이 느껴진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그게 진심이라고 생각해요. ‘저 배우 연기 잘 한 대’ 보다 계속 기억나고 맴도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고싶고요. 그러려면 정말 많이 따뜻해져야겠죠?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배우가 되고싶습니다.”

[안승균.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