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 첫 출연 서태지, 왜 이제야 왔습니까? [MD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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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인천 이승록 기자] 정말 엄청났다. 안 봤다면 후회할 뻔한 공연이었다.

데뷔 24년차 서태지가 최초로 국내 록 페스티벌에 무대에 섰다. 직접 주최한 ETPFEST 외에 서태지가 국내 록 페스티벌에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8일 2015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현장에서 신입생 서태지의 공연을 목격했다.

서태지는 10주년을 맞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둘째 날 헤드라이너였고, 총 3일 중 유일한 한국인 헤드라이너였다.

▲ 1시간 50분 19곡

오후 9시 30분에 시작한 공연은 예정된 시각을 넘겨 밤 11시 20분께 끝났다. 공연시간 1시간 50분. 노래만 19곡. 오프닝 'Watch Out'과 엔딩 'Live Wire' 사이가 빼곡히 채워졌다. 최신곡 'Christmalo.Win'에다가 '울트라맨이야'에 'Heffy End', '필승'에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 수록곡 '내 모든 것'까지 서태지의 음악 인생이 총망라됐다.

역시 록 페스티벌 신입생이라 의욕 넘친 공연시간과 세트리스트였다.

▲ 4만5천 명

"'펜타포트' 장난 아닌데요?"

신입생 서태지도 놀랐다. 주최측 추산 관객 4만5천 명.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10년 역사상 최다 일일 관객이었다. 모여든 관객들의 끝을 헤아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4만5천 명이 '필승'을 '떼창' 하자 인천이 뒤흔들렸다.

▲ 매서운 '떼창'

'필승', '시대유감', '컴백홈', '교실이데아' 등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노래를 연이어 배치한 서태지의 기획이 무시무시한 '떼창'을 일으켰다.

록 페스티벌이 자신의 팬들뿐 아니라 모든 음악 팬들이 한자리에 모인 축제의 순간이란 걸 서태지도 잘 알고 있었다. 관객들이 잘 알고 있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몰아넣었고 20여 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4만5천 명의 관객이 웅장한 '떼창'을 완성했다.

▲ 한 남자가 서태지와 함께 '컴백홈'을 부르다

"특별한 무대를 만들어 볼게요." 서태지가 관객들 중 한 명과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오빠 저요!", "형 여기요!" 여기저기 손을 번쩍 들었다. 이때 맨 앞줄에 있던 한 남성 관객이 서태지 눈에 띄었고 "서태지 팬이에요?" 서태지가 묻자 이 남성은 "조금 팬이요"라고 했다. 서태지가 웃음을 터뜨리며 얼마나 자신의 노래를 아는지 노래를 시켰는데, 놀랍게도 술술 쏟아내는 '컴백홈'. "팬도 아닌데 노래는 어떻게 알아요?" 서태지가 놀라 묻자 이 남성 관객이 하는 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구나 다 알지 않나요?" 관객들이 환호했다.

결국 이 남성은 무대 위로 올려 보내졌고, 서태지와 함께 4만5천 관객들 앞에서 '컴백홈'을 불렀다. 랩은 유려했고, 양현석, 이주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춤 솜씨까지 완벽했다. 서태지는 또 놀랐고, 관객들도 열광했다. 이 남성이 엎드리자 서태지가 그 위를 춤추며 지나갔다.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의 부활을 보는 듯했다.

팬이 아니라고 애써 주장한 이 남성 관객과 서태지의 합동 공연은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무대를 마치며 90도로 인사를 꾸벅 하고 들어간 이 관객에게 서태지는 물론 관객들 모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서태지는 "팬이 아닌 데도 굉장한데요?" 했다.

▲ 서태지도 시대도 변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았다. 서태지의 미모도, 목소리도 그리고 유감스러운 시대도. "이 뭣 같은 세상 뒤집을 준비가 됐습니까?" 서태지의 외침과 함께 '시대유감'이 시작됐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하고 4만5천 관객이 '떼창'했다. 장관이었다. 1995년 노래가 발표된 지 20년이 지났으나 세상을 향한 관객들의 통렬한 외침은 더욱 날카로웠다.

▲ 타이거JK, 윤미래 그리고 '교실이데아'

"한국 힙합계의 레전드"라는 소개와 함께 깜짝 등장한 타이거JK와 윤미래. '교실이데아' 단 한 곡만을 돕기 위해 둘은 무대에 올랐다. '힙합 레전드' 부부는 서태지와 붉은 깃발을 흔들며 "됐어! 이제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하고 부르짖었다. 관객들의 울분 섞인 '떼창'은 최고조에 달했다. 서태지는 "지금까지 들은 '떼창' 중에 가장 컸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교실이데아'를 쏟아낸 관객들에게 부탁했다. "지금까지 여전히 교육 현실은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 있는 여러분이 바꿔주시길 바랍니다."

▲ "아이유! 아이유!"

남성 팬들이 본분을 망각한 순간이 있었다. 서태지가 분위기를 바꿔 '소격동'을 준비하자 눈치도 빠른 남성 관객들은 "아이유! 아이유!" 연호했다. 얼핏 들어도 굵직굵직한 목소리들은 흡사 군부대 위문공연을 방불케 했다. 서태지가 웃으며 "뭐? 아이유?" 했고, 여성 관객들이 "서태지! 서태지!"를 외치며 맞불 놓았다.

하지만 막상 '소격동'이 시작되자 동화 같은 광경이 연출됐다. 서태지는 조명을 껐고, 아이유를 외치던 남성 관객들과 서태지를 외치던 여성 관객들 모두 하나 되어 노래에 맞춰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흔들었다. 그 불빛은 서태지의 말처럼 "별들이 바로 여기에 있네요"였다.

▲ '너에게' 보내는 메시지

1993년 발표된 '너에게'를 22년이 흘러 서태지는 다시 불렀다. 최대한 원곡에 가깝게 편곡돼 그 시절로 관객들을 떠나 보냈다.

그리고 노래하며 관객들을 둘러보는 서태지의 눈빛에는 왠지 모를 아련함이 배어있었다. "날 보고 웃어주는 네가 그냥 고마울 뿐이야"란 노랫말은 마치 20년이 넘는 우여곡절의 시간 동안 자신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팬들에게 서태지가 털어놓는 고백 같았다. '너에게' 마지막 구절에서 서태지는 "네 순수한 마음 변치 않길 바래"라고 기원했다.

▲ "잊지 않을게"

아니. 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서태지는 마지막곡 'Live Wire'를 부르기 전 관객들을 향해 "2015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꿈결 같은 시간이었다"며 "여러분의 모습 잊지 않을게요"라고 약속했다.

관객들은 무대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에 온몸을 적시며 'Live Wire'의 노랫소리에 샤워했고, 서태지 역시 남은 에너지를 마지막 곡에서 아낌없이 다 쏟아냈다. 행복한 얼굴로 점프하고 헤드뱅잉 하던 4만5천 관객들의 얼굴.

"'펜타포트' 안녕!" 서태지는 떠났지만 2015년 8월 8일 2015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뜨거웠던 밤을 함께한 관객들은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 = 예스컴이엔티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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