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푸르른날에', 어김없이 찾아온 5월…여전히 푸르른 [MD리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어김없이 5월은 찾아왔고 여전히 그날, 그들은 푸르르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와 신시컴퍼니가 공동 제작하는 연극 '푸르른 날에'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속에서 꽃핀 남녀의 사랑과 그 후 30여 년의 인생 역정을 구도(求道)와 다도(茶道)의 정신으로 녹여낸 정경진 작가 작품. 지난 2011년 고선웅이 각색, 연출을 맡아 새롭게 태어난 뒤 2015년 다섯번째 무대를 올렸다.

올해로 5번째 시즌을 맞은 연극 '푸르른날에'는 매년 5월이 되면 관객들을 찾아와 그들을 웃기고 울리며 가슴 뭉클한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 초연부터 2015년 공연까지 매번 같은 배우들이 관객들과 5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관객과 만나 이야기 하며 미래를 바라봤다.

그래서일까. '푸르른날에'와 관객들의 유대감은 유독 끈끈하다. 실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고, 배우들의 열연이 그저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전해지기에 더 진하다. 내 옆에 있는 우리 가족, 연인, 친구, 동료 등의 이야기, 즉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나의 이야기이기에 더 와닿는다.

'푸르른날에'는 제목과는 다르게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푸르른날에 우리는 상처 입었고, 찬란한 그 때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토록 푸르고 찬란해서 이 아픔은 더 가슴을 후벼 판다.

하지만 '푸르른날에'는 초반 극을 명량하게 이끌어 간다. 신파극으로 웃음을 주는 동시에 관객들 몰입을 깨트린다. 무겁고 어두운 역사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묘사는 자칫 위험할 수 있기 때문.

몰입을 깨고 유머와 위트로 웃음을 준 뒤, 조금은 긴장을 푼 상태에서 점차 역사의 현실적인 모습을 마주하게 하며 그로 인한 효과를 더욱 크게 만든다. 극이 주는 재미와 위트에 웃다가 어느새 눈물이 흐르는 작품이 바로 '푸르른날에'다.

단지 그 때의 역사만을 그리지 않는 것도 '푸르른날에'의 장점이다. '푸르른날에'는 그 때의 우리가 현재 다시 만나 서로를 용서하고 그 때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과정을 보여주며 상처 입은 우리의 역사 역시 치유해주려 노력한다. 서로에게 실망한 이들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들도, 죄를 지은 이들도 치유해주려는 것이다.

무대 역시 '푸르른날에'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일조한다. 높은 천장, 무대 앞쪽엔 물길이 설치돼 있다. 이 물길을 그냥 건너기도 하고 밟기도 한다. 그저 물길이 되기도, 이승과 저승의 우리를 나누기도,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길이 되기도 한다. 항쟁이 벌어지던 무대는 꽃가루가 떨어지며 푸르른날이 되기도 한다. 깔끔하면서도 독특한 무대 장치가 효과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5번째 무대인 만큼 배우들의 열연 역시 역사를 마주하게 한다. 실제 그날의 그들처럼 느껴지는 배우들은 5년간 관객들과 함께 하며 무한 신뢰를 준다. 초연 때부터 작품을 지켜온 배우 이명행, 김학선, 정재은을 포함 20여명의 배우들의 합은 상상 이상이다.

이들은 이번 2015년, 5번째 공연을 마지막으로 '푸르른날에'를 떠나기에 이번 무대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듯 하다. 함께 역사를 그리며 성장하고 관객들과 함께 호흡한 이들이 주는 감동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어김없이 5월이 찾아오며 여전히 그날, 그들은 푸르렀다. 초연 배우들은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떠나지만 내년에도 어김없이 5월은 찾아올 것이고, 그들이 그렸던 우리의 역사, 그 때의 그들은 여전히 푸르고 찬란할 것이다.

오는 31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공연시간 110분. 문의 02-577-1987

[연극 '푸르른날에' 공연 이미지.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