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대단할것도, 모자랄것도 없는 감독 구혜선 (인터뷰)

[마이데일리 = 이은지 기자] 구혜선을 수식하는 단어들은 많다. 처음에는 인터넷 얼짱 출신이었고, 그 다음은 연기자 혹은 배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감독이 됐다. 단편영화 '유쾌한 도우미'를 시작으로 '요술' '복숭아 나무'까지 이어졌고, '다우더'에는 출연까지 했다. 이 사이 구혜선은 음반을 발매했고, 책을 쓰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구혜선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6월 드라마 '엔젤아이즈' 종영 후 구혜선은 영화로 돌아왔다. 시나리오를 썼고, 감독을 했다. 출연도 했다. 오랫동안 연기자로 살아왔지만, 영화에 출연한 것은 이번 '다우더'가 처음이었다.

'다우더'는 한 모녀의 복잡한 관계와 어긋난 모정을 날카롭고도 애수 어린 시선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것은 어쩌면 구혜선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고, 구혜선이 살았던 세대의 공통된 이야기다. IMF로 어려운 생활을 했고, 그 시대 아버지들은 새벽에 일을 나가 밤늦게 돌아왔다. 모든 시대가 그렇겠지만, 이 시대 역시 엄마와 딸의 관계는 특별하고 각별했다.

'다우더'라는 제목 역시 특이하다. 영어로는 도우터(daughter), 즉 딸이라는 의미다. 사실은 없는 말이고 만들어진 말이다. '다우더'는 사실 구혜선이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쓸 때 파일명이었다. "나도 '다우더'라고 쓴 줄 몰랐다. 파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왜 '다우더'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게 '다우더'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해서 '다우더'가 나왔고, 가제로 사용했다. 다른 제목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묘하게 어울렸다. 엄마의 어긋난 사랑과 이상하게 발음되는 '다우더'가 묘하게 어울렸다. 잘못된 파일명과 잘못된 말, 엄마. '다우더'와 모든 것이 어울렸단다.

영화 속에는 감독 구혜선뿐만 아니라 인간 구혜선의 고민이 보였다. 많은 영화들이 그렇지만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된 영화였다.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상황이 변했고 위치가 변했다. 엄마에게 도망치고 있었던 친구들은 '내 아이가 도망치면 어쩌지'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무뚝뚝한 자신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부모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가 돼 사랑스러운 딸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다우더'는 오롯이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영화 속 산에게는 아버지가 있다. 하지만 단 한번 등장한 것 외에는 산에게 아버지에 대한 존재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어긋난 사랑으로 산을 구속하고 숨통을 죄어 오지만 아버지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감독 구혜선의 의도였다. "영화에 아빠의 존재가 부각이 되면 가족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모녀관계의 심리를 찍고 싶었다. 아빠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분산이 된다. 아버지라는 출구가 있으면 안됐고, 우리 아버지 때는 다들 그랬던것 같다. 새벽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고, 그러면 바로 주무셔야 했다."

구혜선은 시나리오를 직접 써 연출을 하고 있다. '복숭아 나무'는 동화적이었다면, 이번에는 현실적이다. 구혜선의 변화가 보였고,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만큼 구혜선도 많이 변했다. 매년 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복숭아 나무'가 추구하는 메시지가 긍정적이었다면, '다우더'는 아니었다. '긍정의 힘'을 외치고 밝은 모습을 보여줬던 구혜선은 '이게 진실이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진짜 구혜선'을 조금 더 보여주고 싶었다.

"나를 좀 더 보여줘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비관론도 읽어보고, 부정적인 이야기도 들어보고, 냉혹하지만 현실인 것을 똑바로 쳐다봤다. 나를 비우고 좀 편안해지고, 냉혹함을 느껴봐야 유쾌해지는 것 같다. 과거엔 누가 놀리면 상처가 됐다면 지금은 남이 놀리기 전에 자학을 한다. 어느 날부터 내가 그러고 있더라. 예를 들면 영화 스코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저번에도 망해서 이번에도 괜찮아'와 같은 것이다. 과거에는 롤모델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누구도 나의, 또 다른 사람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인생을 사는것이다. 그 누구도 나보다 잘날수 없고, 나도 그 누구보다 대단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구혜선'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쉽게 감독이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100% 사실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구혜선은 "천 번의 거절을 당했다"고 했다. 정말 많은 시나리오를 썼지만, '천번'이나 거절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까워서 쥐고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버렸단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를 보면 공통점이 있었다(물론 버린 시나리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요술'과 '복숭아 나무' '다우더'까지 보편적인 감성을 이야기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다른 시나리오를 쓰지만, 보편적인 사상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청개구리 심리가 있는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때나 할때 조금 틀어서 보는 습관이 있다."

구혜선은 자신의 필모에 들어갈 영화 첫 출연을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작품을 택했다. 큰 의미를 지닌 듯 했지만, 구혜선의 답변은 간단했다. 바로 '제작비'였다. "한명이라도 덜기 위해서 내가 출연을 했다. 어쩌면 날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또 내가 가지고 있던 느낌이 많이 변했다. 잘 웃는 단발머리가 나였다면, 웃음기가 없고 냉정한 캐릭터를 만난 것이다. 역할도 부담스럽게 많은 게 아니었다. 해보고 싶었다. 결과와 상관없이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다. 하하."

만능 엔터테이너 구혜선. 하지만 어떤 이들은 "한 가지만 열심히 해라"고 지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구혜선이 멈추진 않는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어렸을때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어떤것도 할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나이었다. 이게 잘 안됐을 때의 데미지까지 각오를 했었단다. 남들보단 자신 스스로에게 자극을 받는 스타일이었다.

"색으로 표현하면 보라색 자극이 필요하다. 흰색이나 검정색이 아닌 색 말이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히면서 색을 찾아가고 있다. 나를 향한 시선을 알고 있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쪽 일을 하면서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존중은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길로 가지 않을 뿐이다. 나를 긍적으로 평가해주는 분들고 부정적으로 평가해주는 분들이 있다. 그들이 충돌하는 것이 있다. 그거서 나오는 결과물을 느낀다. 내 스스로 찾아가는 것 같다."

[영화 '다우더' 감독 겸 배우 구혜선.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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