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정도전’처럼 개혁을 바라는 게 아닐까? [장영준의 망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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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1997년 인기리에 방영된 KBS 1TV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 태조 이방원 역의 유동근은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당시 이 드라마와 관련해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방송에서 심심치 않게 지적되곤 하던 ‘옥에 티’였다. 당시 극중 하륜(임혁)이 이방원(유동근)에게 “천기를 보니 이제 틀림없이 왕세자가 되십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방원이 타고 있던 말 앞다리에 ‘DJ’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작은 티 하나가 정치적으로 연결되면서 담당 PD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다행히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일이어서 한동안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같은 채널에서 같은 시대인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정도전’이 방송돼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 이방원 역의 유동근은 이성계 역으로, 이방원 역에는 안재모가 나섰다. 특히 타이틀 롤인 정도전 역에는 배우 조재현이 카리스마 넘치는 열연을 펼치고 있어 시청률 상승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중추적 역할을 한 정도전이란 인물을 재조명해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촌철살인의 명대사로 호평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치열한 정치전이 한창인 가운데서도 선역과 악역의 구분 없이 서로의 이념을 내세우며 대립하는 모습이 현대의 정치와 많은 부분 닮아 있어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공감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정도전’이 사랑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그간 방송가를 장악하다시피 한 ‘픽션 사극’에 대한 반발심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픽션 사극은 기존 정통 사극과 비슷한 면이 많지만, 이야기 대부분이 허구라는 점에서 남녀 주인공의 러브라인에 초점을 맞추는 등의 극적인 요소가 강조될 뿐이다. 반면, ‘정도전’은 방송 전부터 정통 사극이라는 점을 내세워 픽션 사극과는 차별화 한 작품임을 강조했다. 오로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철저한 고증을 거친 작품이라는 점에서 ‘정도전’은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정도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로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도전’은 조선 건국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일면에는 현대 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당과 야당이 대립하며 서로에 대한 비방도 서슴지 않는 모습, 여론 몰이, 각각 국민(백성)을 앞세우며 서로의 정책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들은 지금과 비교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저변에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이 깔려 있다는 점도 똑같다. 그래서 좀 더 극적으로 표현되는 ‘정도전’을 통해 시청자들은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현실에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는 혁명을 ‘정도전’에서 대리만족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와 이로 인해 드러난 낡고 오래된 관행들. 그리고 유벙언 일가를 통해 밝혀진 비리 커넥션들까지. 조선이 건국된 지 600년이 훌쩍 지났지만, 우리 사회 곳곳을 좀먹고 있는 이런 어두운 단면들은 쉽사리 세상 밖으로 나올 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정도전’과 같은 역성혁명은 아닐지라도 한 번쯤은 완전히 뒤엎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드라마의 인기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수많은 명대사가 있지만, 다음과 같은 대사는 두고 두고 곱씹어 볼 만하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 군주는 가장 가벼운 것이라 했습니다. 해서 백성의 고통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 정도전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 포스터 & 현장 스틸컷. 사진 = KBS 제공]

장영준 digou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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