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되고 차기 한국 대표팀 감독 선임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정해성 국가대표 전력강회위원회 위원장은 외국인 감독 7명과 한국인 감독 4명의 최종 후보 명단을 꾸렸다고 밝혔다. 5월까지 선임을 한다고 한다. 외국인 후보가 더 많은데 이상하게 한국인 감독으로 정해지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왜? 정 위원장이 핵심적인 한국 대표팀 감독의 자질로, 한국 문화와 정서, 한국적인 분위기에 대한 준비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국인 감독보다 이를 더 잘 아는 외국인 감독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이거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정 위원장과 위원회는 한참 잘못 짚었다. 한국 축구는 한국을 잘 아는 지도자가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지도자, 한국 축구를 발전시키고, 월드컵에서 선전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감독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초점이 한국에 맞춰져 있다. 세계 무대에 도전을 앞둔 한국 대표팀에 필요한 것이 한국이라는 것이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반발 심리로, 눈치보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워낙 높았으니, 클린스만 감독과 정반대의 감독, 정확히 말하면 축구적인 경쟁력이 아니라 클린스만 감독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감독을 찾고 있는 꼴이다.
제발 냉정하기를 바란다. 클린스만 감독에게 함몰돼 있지 말기를 바란다. 클린스만 감독이 상식을 파괴하는 독보적인 최악이었다. 그런데 이런 최악의 특별한 사례를, 외국인 감독 전체에 대입시켜 버렸다. 클린스만 감독이 그랬으니, 외국인 감독들은 한국 정서와 문화에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다른 외국인 감독은 그렇지 않다. 한국 문화와 정서의 이해.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세계 유일의 이상한 케이스다. 한국의 대표팀 감독으로 오는데 한국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 기본은 평가할 이유도 없다.
이 기본을 지키지 않은 유일한 감독이 클린스만 감독이었을 뿐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도, 파울루 벤투 감독 등 한국의 모든 외국인 감독들은 기본을 지켰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건 클린스만 감독 한 사람인데, 클린스만 감독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외국인 감독들이 기본을 지키지 않을 거라는 단순한 판단. 그래서 한국 문화와 정서를 핵심 역량으로 지정한 그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한국 정서 보다 세계 축구 경쟁력, 지도자 자질, 전술적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 본론이다. 그렇게 위원회는 자연스럽게 국내 감독으로 눈길이 쏠리게 만들었다. 정 위원장은 한국인 감독 후보가 4명이라고 했다. 4명 모두 현역 종사자라고 했다.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제외하면 K리그 감독이라는 의미다.
그러자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와 정 위원장을 향한 비난이 거세다. K리그를 봉으로 본다는 것이다. 시즌이 한창이다. 시즌 도중 한 클럽의 감독을 빼가는 것은, K리그에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고, 갑질을 하는 것이라며 축구협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갑질 맞다. K리그를 무시하는 것도 맞다. 한국 축구의 근간이 되는 K리그를 얼마나 아래로 보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시즌 도중 K리그의 감독을 빼가는 것이 얼마나 큰 혼란을 야기시키는 건지 아는가. 그 클럽을 그냥 절벽으로 밀어 버리는 것이다.
축구 국가대표팀 운영 규정 제12조 제2항에 협회는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당해 구단의 장에게 이를 통보하고,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축구협회와 K리그가 함께 발전해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수직 구조임을 증명하고 있다. 위에서 아래를 억누르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 '주는' 축구협회는 비난을 받는데 '받는' 감독들은 동정을 받는다? 모든 거래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맞아야' 이뤄지는 법이다. 이상하지 않나? 주는 사람만 나쁜 놈으로 찍히는 게.
많은 미디어와 팬들이 축구협회의 갑질에, 강요에 굴복하며 어쩔 수 없이 '희생'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K리그 감독 후보들을 향한 연민을 표현하고 있다. 주려는 사람만 잘못했다는 것이다. 받으려는 사람은 '희생양'이다.
과연 그럴까. K리그 감독 후보들, 정말 원하지 않으면 '거부'할 수 있다. 거절하면 된다. 운영 규정에 저렇게 명시가 돼 있지만, 21세기에, 공산당도 아니고, 축구협회가 아무리 막무가내라고 해도, 억지로, 강압적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정 위원장도 분명 '소통'하겠다고 했다. 일방통행이 아니라고 했다. 강압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K리그 감독의 의사를 묻겠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K리그 감독이 정말 싫으면, 정말 원하지 않으면 거부하면 된다. 축구협회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보복이라도 당할까 두려운가? 그런 시대는 지났다. 자신의 의지대로, 소신대로 하면 된다. K리그 감독 후보들이 거부한다면, K리그 감독 빼가기 논란도 말끔히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규정에 따라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K리그 팀을 지도하고, 발전시키고, 팬들과 함께 하겠다는 사유보다 K리그 감독에게 더 특별한 사유가 무엇이 있는가. K리그 감독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K리그에 남는 게 맞다. 진정 사랑한다면, 진정 애착이 있다면, 왜 하지 못한다고, K리그에 남겠다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겠는가? 클럽과 팬들을 위해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축구협회 제안을 거부하면 될 일을,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 누군가 축구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 아닐까. 축구협회 역시 누군가는 제안을 수락할 것을 예측하고 있으니,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 이토록 큰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시즌 도중 K리그 클럽을 떠나는 건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시즌이 끝난 것도 아니고, 중간에 도망가는 것이다. K리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행태다. K리그는 또 한 번 큰 상처를 받게 된다. K리그를 버린 그는 단번에 역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게 축구협회가 도와주고 있지 않나. 겉으로는 희생양으로 포장되면서, 축구협회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리는 모양새로. 욕도 먹지 않고, 오히려 동정을 받으며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방법으로.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대표팀 감독을 수락한다면, K리그 감독 후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발 '희생', '헌신', '봉사' 이런 단어를 쓰지 않기를 부탁한다.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대표팀 감독을 해보고 싶었다고. 월드컵을 지도해 보고 싶었다고. K리그 구단과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이것이 K리그를 시즌 도중 버리고 떠나는 그가 K리그 팬들과 한국 축구 팬들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포장하려 애쓰지 말기를 바란다. 축구 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마침 지금 한국 축구가 위기다. 때문에 위기, 헌신, 희생이라는 단어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의 위기를 축구인으로서 가만히 볼 수 없었다', '한국 축구를 위해 희생하겠다', '한국 축구 헌신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 '쉬운 길을 놔두고 힘들고 어려운 길로 가겠다', '고심 끝에 한국 축구를 위해 봉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받은 사랑을 돌려주겠다' 등등.
한국 축구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이 대표팀 감독, 월드컵 감독만 있는 게 아니다. 왜 한국 축구 최고의 자리에 서서 위기와 싸우려 하는가. 왜 희생과 봉사는 가장 주목 받는 자리에서 해야만 하는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에서 구단의 가치를 높이고, 수준 높은 대표팀 선수를 배출하고, 흥행을 유도하고, 아시아의 위상을 높이는 것 역시 한국 축구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오히려 K리그를 버리고 도중에 떠나는 것이 한국 축구에 더 큰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
또 희생과 헌신은 이럴 때 하는 게 아니다. 그 누구도 하려고 나서지 않을 때 하는 것이 희생이다.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앞장서서 하는 것이 헌신이다. 한국 대표팀 감독, 정확히 말해 한국 월드컵 감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줄을 섰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도 줄을 섰다. 이게 왜 희생이고 헌신인가.
상식적으로 봐도 K리그 감독에서 월드컵 감독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한국 축구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잡는 것이다. 위상도, 연봉도, 스포트라이트도 높아진다. 생애 한 번 잡기 힘든 월드컵 지휘봉을 잡을 수 있다. 이게 왜 희생이고 헌신인가.
결국은 '욕심'이다. K리그를 버리고 탐할 만큼 욕심이 나는 것이다. 이 욕심을 희생과 헌신이라는 두꺼운 포장지 뒤에 숨겨 감추려는 것이다. 한국 축구 위기의 시대를 자신의 욕심으로 채우지 말기를 바란다. 축구협회 탓하지 마라.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자신의 결정이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 위르겐 클린스만 전 한국 대표팀 감독. 사진 = 대한축구협회]
최용재 기자 dragonj@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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