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의 물의 미학[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올드보이’의 가장 유명한 대사는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예요”일 것이다. 극증 오대수(최민식)는 고교시절 우연히 훔쳐본 우진(유지태)과 그의 친누나 수아(윤진서)의 금지된 관계를 발설했다가 그리스 비극에 버금가는 엄청난 복수를 당한다. 오대수는 아무 생각 없이 친구에게 가볍게 전해줬지만, 모래알처럼 느껴졌던 그의 말은 15년의 세월에 걸쳐 바윗덩어리로 커진 상태로 오대수의 심장을 무겁게 ‘쿵’하고 내리친다. 박찬욱 영화의 미학 중 하나는 ‘물.에.가.라.앉.는.다’이다.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화의 이미지는 수직으로 이루어진다. 아찔한 전락. 수아는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졌다.

‘올드보이’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 중 하나는 동진(송강호)이 선천성 청각 장애인 류(신하균)를 살해하는 장면이다. 류는 친누나의 신장이식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의 연인 영미(배두나)와 함께 동진의 아이를 유괴한다. “딱 필요한 돈만 받고 돌려주는 거야. 이건 착한 유괴야.” 의도와 달리, 누나는 죽고 아이도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차갑게 흐르는 강물에서 동진은 류에게 “너 착한 거 나도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라는 말과 함께 칼을 들고 강물 밑으로 잠수한다. 친누나를 살리기 위한 착한 유괴는 결국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파국을 맞는다.

‘박쥐’는 또 어떠한가. 뱀파이어가 된 신부 상현(송강호)은 친구 강우(신하균)의 아내 태주(김옥빈)의 묘한 매력에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태주는 상현의 가공할 힘을 이용해 남편을 죽이자고 제안하고, 살인만은 피하고자 했던 상현은 결국 태주를 위해 죄를 저지른다. 상현이 강우를 끌고 들어가는 곳도 낚시금지구역의 저수지 물 속이다. 상현과 태주가 최후를 맞이하는 장소 역시 바다 앞 절벽이다. “지옥에서 만나자”라는 약속을 한 뒤 태양을 기다리는 동안, 바다에선 고래 두 마리가 물을 뿜으며 치솟았다 가라앉는다. 이들 역시 한 줌의 재가 되어 붉은빛의 바닷속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형사 해준(박해일)은 평소 눈에 안약을 넣는다. 이 액체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하여 지표 가까이에 작은 물방울로 뜨는 안개로 변했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로 변한다. 극 초반 높은 산 위에서 이루어졌던 사건으로 연결된 해준과 서래(탕웨이)의 사랑은 끝내 바다에 이른다. 박찬욱 영화의 물은 ‘죽음의 메타포’다. 서래가 모래를 파고 들어가는 것 역시 전락의 행위다. 그러나 ‘모호함’을 즐기는 박찬욱 감독의 특성을 감안하면, 서래는 ‘위장된 죽음’을 택했을 수도 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맞는 해준을 영원히 바라보는 여인의 초상.

오늘도 들리는 파도소리는 해준에게 ‘미결’로 남고 싶은 서래의 마음일 것이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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