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지도 '두목곰' 김동주 "2001년 KS 우승 기억 생생"..."가장 아쉬웠던 건 WBC"

[마이데일리 = 이석희 기자]“2001년 김인식 감독님과 함께 한국시리즈 우승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원조 두목곰’ 김동주는 17년동안 오직 두산에서만 뛴 원클럽맨이다. 은퇴 직전에는 KT에서 같이 뛰기를 희망했지만 그는 미련없이 유니폼을 벗고 두산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았다.

그렇기에 두산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김동주가 17년간 두산에서 뛰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를 물어보니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이라고 1초의 머뭇거림 없이 대답이 나왔다.

아마도 선수생활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한국시리즈 우승이어서다. 김동주가 선수생활하는 동안 두산은 그해 딱 한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은 2대 ‘두목곰’ 김태형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 후 3번의 우승을 더 차지했지만 말이다.

2001년 두산의 우승을 보면 정말 의외였다. 상대 사령탑이 삼성 김응용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코칭스태프는 해태에서 우승을 밥먹듯이 했던 유남호-김종모 코치 등이 김응룡 감독을 보좌했다.

선수들로는 LG 김동수, 롯데출신 박동의-마해영을 영입하고 당시 100만불보다 더 주고 가족들을 취직까지 시켜줬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갈베스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승엽도 주축 타자였다.

두산은 진필중-박명환 등 국내파 투수들을 중심으로 마운드를 꾸렸고 타선에는 타이론 우즈를 비롯해서 김동주-홍성흔-심재학-정수근-최훈재 등이 포진했다.

결과는 두산의 4승2패 승리. 김응용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쓰라린 패배를 맛보았다. 특히 상대 감독은 한때 해태에서 데리고 있던 코치 출신 김인식 감독이었다.

반면 김동주는 선수생활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WBC에서의 부상이라고 했다. 김동주는 지난 2006년 3월 WBC 아시아라운드 대만전에서 1루에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을 시도하다 어깨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 일로 인해 김동주는 KBO리그에도 출장할 수 없었다. 무려 124일을 뛰지 못했다. 만약 WBC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고 소속팀에서 정상적으로 시즌을 마쳤을 경우 그해 시즌 종료후 FA 신분을 얻을 수 있었는데 1군 선수 등록일수 32일 차이로 FA가 무산됐다.

결국 KBO는 그해 10월 30일 제6차 이사회를 열어 국가대표선수로서 국제대회에서 경기도중 부상을 당한 선수에게 정규시즌 결장일수의 50%를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김동주도 50%를 보상받았지만 결국 32일이 모자라 한 해 뒤 FA가 됐다.

김동주는 “한 해 일찍 FA가 됐으면 일본 진출 등 야구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물론 지금은 다 잊었다고 했지만 그래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듯 했다.

김동주는 선수생활 막판에 여러 가지 오래를 받았다. 당뇨병 환자라는 의심을 받았던 것도 그 한가지였다. 김동주는“당뇨병은 가족력이었어 당뇨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야구를 못할 지경은 아니었다”며 “코치들조차도 그걸 믿었을 정도였으니 팬들은 어떡했겠냐”고 반문했다.

은퇴하기 직전 구단과의 마찰로 인해 그는 은퇴식도 하지 못하고 두산 유니폼을 벗었다. 그렇지만 예전 두산 멤버들과는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며 후배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그를 만난 지난 주 그를 만난 서울 도곡동의 ‘김동주 아카데미’에도 두산 선수들이 찾아와서 옛이야기를 나누면서 선배에게 조언도 부탁하는 모습이었다.

“선수들 뿐 아니라 김인식 감독님도 가끔 연락드리는 등 예전 두산 멤버들과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비록 프로야구판에서는 떠났지만 장차 프로선수들을 꿈꾸는 후배들을 지도하면서 재목을 발굴하고 키우는 것이 보람차다는 김동주. 앞으로도 계속 ‘될성 부른 떡잎’을 발굴해서 한국프로야구가 발전하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야구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김동주. 사진=유진형 기자]

이석희 기자 goodlu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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