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위대했던 음악, 엔니오 모리꼬네[추모글]

[김성대의 음악노트]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압도적인 브랜드는 의외로 음악가의 이름이다. ‘시민 케인’의 오손 웰스도 히치콕의 스릴러도 아닌 그 이름은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다.

무려 60년이다. 그는 웬만한 한 사람의 인생을 음악으로 살았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낭만과 말러 심포니의 격정을 동시에 이식한 그 음악은 자신이 서식한 영화들보다 스스로(음악)가 더 유명하거나 스스로 덕분에 영화가 유명해졌거나에서 갈팡질팡 했다. 소리가 이미지를 지배해 이미지와 소리의 빗장이 풀리면서 모리꼬네의 음악은 영화보다 좀 더 먼 더 높은, 그리고 더 깊은 미학의 영역에 자신의 가치를 묻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그의 음악은 결국 소리의 미장센, 선율의 롱테이크였고 엔니오와 영화 또는 영화와 모리꼬네 음악의 관계는 ‘대부’와 니노 로타, 아니면 미야자키 하야오 곁의 히사이시 조와 다르지 않았다.

프레스코발디, 팔레스트리나, 몬테베르디, 스트라빈스키에게 영향 받은 모리꼬네의 음악 세계는 종교와 사랑, 폭력 사이에 위로와 평화 때론 슬픔을 엇질러 해져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안식을 주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언뜻 큰 상관이 없어보이는 대중음악 뮤지션들까지 차별없이 품었으니 과연 시대와 세대, 장르를 넘어선 마에스트로의 경지에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지만 분명하게 이르렀다.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신해철이 '아버지와 나 part 1'을 쓰면서 참고 했을 시네마 천국 '사랑의 테마', 부활의 김태원이 기타 연주곡으로 남긴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질의 테마(Jill's Theme') 등 명곡들이 많지만 모리꼬네 스코어 중 가장 유명한 건 역시 세르조 레오네의 66년작 ‘석양의 무법자’ 메인 테마와 대미를 장식한 ‘The Ecstasy Of Gold’일 거다.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와 펑크 밴드 라몬스는 이중 후자를 각각 자신들의 콘서트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곡으로 썼고, 래퍼 제이-지는 자신의 곡 'Blueprint 2'에 이 곡을 샘플링 했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마스 볼타 역시 레오네의 또 다른 걸작 ‘황야의 무법자’ 테마를 자신들의 콘서트 인트로로 썼다.

90년대를 호령한 브릿팝 밴드들 역시 모리꼬네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사정은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도 마찬가지.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밴드가 남긴 최고작으로 회자되는 ‘OK Computer’ 녹음 스타일을 모리꼬네의 것에서 훔쳐왔다. 그런 라디오헤드만큼 인기를 얻었던 뮤즈도 자신들의 4집 수록곡들인 ‘City Of Delusion’ ‘Hoodoo’ ‘Knights of Cydonia’를 모리꼬네라는 거름으로 길렀다. 또 프랑스 일렉트로닉 아이콘 데이비드 게타의 ‘Lovers On The Sun’은 엔니오의 마카로니 웨스턴 시절에 영감을 얻은 곡이고, 악틱 몽키즈의 알렉스 터너도 자신의 프로젝트 라스트 쉐도우 퍼펫츠(The Last Shadow Puppets)의 앨범 ‘The Age of the Understatement’ 곡들을 쓸 때 엔니오의 작법을 참고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날스 바클리의 히트싱글 ‘Crazy’ 역시 모리꼬네 음악이 없었다면 그 성격이나 완성도에서 조금은 다른 길을 걸었을 지 모른다. 그 외 트립합 밴드 포티셰드와 일렉트로닉 듀오 골드프랩, 데인저 마우스와 다이어 스트레이츠, 조지오 모로더와 매시브 어택도 자신들의 음악 어느 한 구석을 모리꼬네에게 빚지고 있었다.

그리고 2020년 8월 '시네마 천국'부터 ‘시크릿 레터’까지, 모리꼬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감독 세르조 레오네보다 더 많은 작품을 함께 한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지난 4년간 작업해온 110분 분량 엔니오 모리꼬네 다큐멘터리를 발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큐 제목은 다름 아닌 ‘음악의 시선(The Glance Of Music)’. 이는 물론 소리로 영상을 주무른 희대의 거장에게 보내는 감독의 진심어린 헌사이리라.

모리꼬네 자택에서 40여 시간 진행한 인터뷰를 축으로 삼는 이 다큐멘터리엔 엔니오의 뒤를 잇는 영화음악 거장들인 존 윌리엄스와 한스 짐머,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와 싱어송라이터 폴 사이먼, 포크 뮤지션 조안 바에즈와 프로듀서 겸 뮤지션인 퀸시 존스,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와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브루스는 2007년 ‘We All Love Ennio Morricone’라는 이름을 걸고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리, 셀린 디온 등과 함께 거장의 업적을 기린 바 있다), 이탈리아의 국보급 가수 주케로 같은 유명 음악인들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롤랑 조페, 올리버 스톤, 쿠엔틴 타란티노 등 엔니오가 생전에 함께 작업한 영화감독들의 생생한 멘트가 첨부됐다. 말 그대로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음악가가 생전에 어떤 ‘음악적 시선’을 견지해왔는지 이 다큐멘터리는 당사자의 증언과 주위의 증언들로 철저히 환기시켜 줄 모양새다.

하지만 2004년, 끝내 자신의 전기 영화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레이 찰스처럼 모리꼬네 역시 본인의 전기 영상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우연일까. 글을 마치려는 찰나 '어느 연약한 짐승의 죽음(Le Professionnel)'에 삽입된 'Chi Mai'가 서글프게 흘러나온다. 거추장스러운 세상에 한 떨기 순수의 음악을 남기고 간 영화음악 거장. 그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제, 비로소 음악은 영원을 얻었다.

[사진제공=AFP/BB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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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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