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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보리’, 래여애반다라[곽명동의 씨네톡]
20-05-2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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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김진유 감독은 영화 ‘나는보리’에 개인적 경험을 녹였다. 그는 2015년 농아인협회에서 진행한 토크콘서트 ‘수어로 공존하는 사회’에 참석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수어통역사 현영옥씨는 어렸을 때 농인 부모와 같이 소리를 잃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도 어린 시절 같은 생각을 했다. 현영옥씨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써내려가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도 포개졌다. 강릉 단오제에서 길을 잃고 경찰서를 찾아간 사연부터 옷가게 주인에게 못된 말을 듣는 에피소드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을 디테일하게 녹여냈다.

이 영화에서 보리(김아송)는 청인이고, 아빠(곽진석)와 엄마(허지나) 그리고 동생 정우(이린하)는 농인이다. 농인은 ‘들리지 않는 사람’이고, 청인은 ‘들리는 사람’이다. 외로움을 느끼는 비장애인 보리가 가족과의 유대감을 위해 되레 장애를 갖길 원한다(현영옥씨, 김진유 감독도 그랬다)는 설정은 과연 ‘장애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편견을 허문다. 단지 들리지 않을 뿐, 우리 모두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기존 한국영화가 장애인을 관성적으로 측은하게 소비해왔다면, 이 영화는 농인과 청인 사이에 아무런 장벽이 없다는 인식을 생산한다.

극중 보리는 매일 성황당에 들러 소리를 잃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어떤 일을 계기로 안들리는 척 연기를 하다 청인들이 내뱉는 몹쓸 말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예전과 달라진 친구들의 시선에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농인이 일상적으로 받는 사회적 차별을 몸소 겪으며 가족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보리가 가족과 같아지려고 하다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어찌 보리 뿐이겠는가. 더 넓게 펼쳐보면, 저마다의 인생은 서로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나는보리’를 보고 이성복 시인의 시집 ‘래여애반다라(來如愛反多羅)’가 떠올랐다. 1,300여년전 향가를 부르던 신라인들은 서러움을 노래했다. 이성복 시인은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맛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다(羅)”라고 설명했다. 보리는 ‘서러움(슬픔)의 강’을 건너려했다. 부모와 같아지려 했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슬픔에 빠진다. 서로 다른 운명에 맞서 대들다가, 잠시 농인의 삶을 살던 중에 많은 일을 겪는다. 결국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비단처럼 펼쳐진 자신의 길을 걷는다.

‘나는보리’는 시종 밝은 영화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서러움이 흐른다. 나는 왜 부모와 다른가. 부모는 왜 들을 수 없고, 나는 왜 들을 수 있는가. 거기에 특별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보리는 그 ‘이유없음’을 받아들인다(김진유 감독도 그러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보리는 바닷가를 홀로 걷는다. 이제 부모와 나 사이는 농인과 청인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마음 속에 담는다. 보리는 이제 한 뼘 더 성장했다.

주문진의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보리를 포근히 감싸 안는다.

[사진 = 영화사 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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