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들의 반란, 류지혁·정진호 성장의 진정한 의미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백업으로 뛰면서 타격감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야수 백업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타격감 유지다. 물론 벤치에서 백업들에게 부여한 기본적인 임무가 있다. 타격이 아니더라도, 대수비 혹은 대주자로서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면 얼마든지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주전으로 도약하거나, 주전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려면 임팩트 있는 타격을 보여줘야 한다. 극심한 타고투저 시대다. 타자가 타격에서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면 1군 주전으로 도약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백업들은 특성상 매 경기 꾸준히 출전한다는 보장이 없다. 출전 기회가 불규칙적이니 타석에 들어설 기회 역시 불규칙하다. 당연히 타격감을 끌어올릴 기회가 제한적이다. 2군에서 좋은 감각을 갖고 1군에 올라와도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타격감이 떨어진다. 백업 야수들의 딜레마다.

두산 백업들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게 더욱 힘들다. 포지션별 주전구도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전들을 위협하는 견제세력, 즉 1.5군 전력마저 탄탄하다. 예를 들어 2군에서 막 올라온 야수는 선발과 백업을 오가는 허경민, 최주환, 오재일 등과의 경쟁이 쉽지 않다. 이들은 다른 팀에 가면 충분히 주전으로 뛸 수 있다. 그만큼 두산 야수진이 두껍다.

김태형 감독도 잘 안다. 18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특히 우리 팀이 그렇다. 백업들이 타격감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라고 했다. 물론 주전들의 부상 혹은 부진이라는 약간의 운도 작용해야 한다. 그러나 딜레마를 해결하는 건 선수 본인의 몫이다.

김 감독은 "류지혁, 박세혁, 정진호는 올 시즌에 많이 좋아졌다"라고 칭찬했다. 이들은 주전들의 부상 혹은 부진을 틈타 팀 내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다. 작은 기회를 잘 잡았고, 사령탑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면서 출전 빈도가 늘어났다. 실전 경험이 쌓이면서 노하우가 생기고 좋은 타격을 보여준다. 선순환이다.

예를 들어 류지혁은 본래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할 정도로 출중한 수비력을 보유했다. 사실 1군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년에는 타격에선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김 감독도 "삼진이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올 시즌 류지혁의 타격은 날카롭다. 93경기서 190타수 57안타 타율 0.300 2홈런 20타점 46득점 7도루. 김재호의 허리 통증을 틈타 점점 입지를 넓혔다. 약간의 운이 작용한 대목. 그러나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본인이 더 많은 노력을 했다. 김 감독은 "컨택도 좋아지고 스윙 자체가 날카로워졌다. 파워도 좋아졌다"라고 칭찬했다.

류지혁은 18일 잠실 KIA전서 올 시즌 타격이 썩 좋지 않은 허경민을 제치고 주전 3루수로 나섰다. 주전유격수 김재호가 21일만에 선발라인업에 복귀했다. 그러나 류지혁은 백업으로 밀려나지 않고 주전으로 살아남았다. 그의 팀 내 입지가 달라진 게 입증된 경기.

마찬가지로 민병헌의 부상 공백을 잘 메운 정진호는 민병헌 컴백 이후에도 박건우와 번갈아 주전으로 꾸준히 출전한다. 박건우가 발목이 썩 좋지 않다. 관리가 필요하다. 김재환이 체력안배를 위해 지명타자로 나서면 박건우와 함께 출전한다. 이때 에반스가 1루를 보면서 오재일이 백업으로 밀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전, 백업들의 자리다툼이 치열해진다.

김 감독도 "잘하는 선수가 경기에 나가는 것이다. 당분간 재호는 (허리)관리가 필요하다. 지혁이와 경민이를 적절히 활용할 것"이라며 경쟁을 부추겼다. 결과적으로 두산은 일부 주축들의 부진과 부상을 백업들의 성장으로 절묘하게 메워내며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다만, 백업에서 주전급으로 성장해도 긴장을 놓을 수는 없다. 작년에 자리잡은 오재일, 2년 전 자리잡은 허경민은 올 시즌 조금 주춤하면서 다시 입지가 흔들린다. 올 시즌 초반 오재원의 극심한 부진으로 주전으로 올라선 최주환도 8월에 0.241로 주춤하자 다시 주전과 백업을 오간다.

[류지혁(위), 정진호(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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