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예의 에필로그] '韓 드라마 대모' 김수현 작가가 나무에서 떨어진 이유

[마이데일리 = 최지예 기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아마 나무에서 떨어진 게 원숭이가 아니었다면 이런 속담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드라마의 대모로 불리며 굵직한 획을 그어낸 김수현 작가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김수현 작가가 쓴 SBS 주말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극본 김수현 연출 손정현)가 21일 밤 54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당초 60회를 예정했던 '그래, 그런거야'는 6회 축소 방영이 결정됐는데, 저조한 시청률과 낮은 화제성으로 인한 광고 부진이 그 배경이었다. 1972년 데뷔 이래 현재까지 60여 편에 이르는 드라마를 내 놓으며 한국 방송계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군림해 온 김 작가에겐 뼈 아픈 결과다.

이번 '그래, 그런거야'는 김 작가의 드라마 인생에서 큰 실패작으로 남을 전망이다.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 이야기는 핵가족을 넘어서 1인 가구가 만연한 현 사회에 공감을 얻지 못했다. 유종철(이순재)과 김숙자(강부자)를 중심으로 삼형제,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빼곡한 가족 관계도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이지선(서지혜)이 시아버지인 유민호(노주현)와 계속해서 함께 사는 설정도 흔치 않은 사례라 이질적이었다.

김 작가는 뚝심 있게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가족의 군상을 그려내고 싶었을 지 모르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시청자들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대본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오랜 연륜을 가진 김수현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 드라마의 큰 역사이자, 빛나는 유산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날카로운 시선은 그 어떤 작가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정체성을 지녔다. 가족드라마에 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내며 특유의 색깔을 뽐냈다.

'엄마가 뿔났다'(2008)는 한 평생 가족을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엄마의 존재를 돌아보게 했다. '인생은 아름다워'(2010)에선 지상파에서는 흔히 다루지 않는 동성애 코드를 녹여냈다. '부모님 전상서'(2004)에는 자폐아 문제를 다뤘다. 당시 브라운관에 장애인이 등장하는 것은 낯선 광경이었다. 김 작가는 장애인 가족이 갖고 있는 어려움과 난관을 그렸다. 김수현 작가의 이 같은 작품들은 파격을 넘어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켜 낸 수작으로 꼽힌다.

김수현 작가는 70% 이상의 시청률 기록을 보유한 한국 대표 드라마 작가다. 그에게 붙여진 '드라마의 연금술사', '안방 대통령'이란 별칭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청자들은 다시 한 번 김 작가가 신선한 설정과 깊은 메시지가 담긴 작품으로 씩씩하게 나무에 올라주길 바라고 있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SBS 제공]

최지예 기자 olivia731@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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