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예의 에필로그] 에픽하이 타블로, 2005년 아버지 일기 속 편지를 받다

[마이데일리 = 최지예 기자] '아들아, 후회 없는 삶을 살거라.'

때는 지난 2005년. 에픽하이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데뷔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타블로의 아버지는 에픽하이의 공연을 보시고 그날의 일기를 쓰셨다.

'아내와 함께 난생 처음 선웅이(타블로 본명)가 하는 공연에 구경을 갔다 왔다. 석사까지 해서는 랩을 한다는 아들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오늘 들은 선웅이 노래에는 철학과 사랑이 녹아 있었다. 역시 내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하지 않을지언정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모습이 좋았다. 선웅이가 앞으로도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길.'

31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열린 에픽하이 콘서트 '현재상영중 2016'에 갔다. 오래된 데뷔 앨범부터 최근작 '신발장'까지 에픽하이의 역사가 한 자리서 펼쳐졌다. '하이스쿨'과 'E.P.I.K'로 점철되는 예전 에픽하이 음악들이 정겹고 흥겨워 손을 들고 몸을 흔들었다. 초창기 에픽하이의 감성들은 조금은 거칠고 원초적이었지만, 그만큼 순수했고 메시지가 살아 있었다.

"오늘은 저희 아버지 생일이에요. 아빠가 하늘에서 보고 계실 거예요." 이날 공연 말미 타블로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를 추억했다. 그 동안 랩 가사에서, 여러 방송에서 타블로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자주 고백해 왔다. 관객들 앞에서 타블로는 아버지의 일기를 전했다. 일기였지만,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편지였다. 공연장 관객들을 감동케 한 아버지의 글은 담백했지만 진심의 힘이 있었다. 이른바 한국 감성힙합의 지평을 연 타블로의 감성과 철학의 뿌리는 아버지의 영향이란 생각이 들었다.

타블로는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며 "최근 1년 사이 이 일을 한 것에 대해 후회했었다. 회의감도 많이 느꼈다. 그런데 이 공연을 시작하기 하루 전 보게 된 아버지의 일기에 마음을 다졌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어떤 이유에서 타블로가 음악을 하게 된 걸 후회했는지 헤아리기 어렵지만, 음악을 갓 시작해 길을 걷기 시작한 아들을 보고 적은 아버지의 일기 속 그 진심을 다시 한번 믿어보길 바란다. 세상에서 타블로를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의 눈은 결코 틀리지 않았을 테니까. 2005년 소극장 무대 위 타블로와 에픽하이는 분명 가진 것 없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 팬이 된 걸 후회하지 않게 하겠다. 여러분을 웃게 만드는 에픽하이가 되겠다"고 인사한 타블로는 수건 뒤에 '모든 것을 후회해도, 여러분을 만난 걸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쓰고, 관객석에 던졌다.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지예 기자 olivia731@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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