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 '렛미인' 오승훈, 600:1 경쟁률 뚫을만 했던 심상찮은 신예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600대1 경쟁률을 뚫을만 하다. 모두의 관심이 모아졌던 연극 '렛미인' 오디션에서 6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오스카 역을 거머쥔 신예 오승훈. 무서운 신예의 남다른 시작이 심상치 않다.

오승훈은 올해 연극 '렛미인'으로 배우 인생의 첫 발을 뗐다.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모인 나무엑터스에 가능성을 인정 받고 1년여간 실력을 갈고 닦은 오승훈은 연극 '렛미인'을 통해서도 가능성을 입증했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이끌어낸 결과다.

연극 '렛미인'은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외톨이 소년 오스카의 가장 매혹적이고 잔인한 사랑 이야기로 오승훈이 연기하는 오스카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인생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겁이 많은 캐릭터지만 일라이를 만나면서 서서히 사랑의 감정에 들뜨고, 자신의 삶에 애착을 갖게 되는 인물이다.

아직 이렇다할 연기 경력이 없는 오승훈은 '렛미인' 오디션에 합격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연극 무대를 항상 꿈꿨지만 자신의 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그러나 오디션 소식을 접하고 본 영화에서 매력을 느낀 그는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고, 그 기회를 잡았다.

"합격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재밌게 부딪칠 수 있었어요. 얼마나 많은 분들이 도전했겠어요. 물론 저도 자신있게 덤볐지만 그래도 결과가 따라올 거라 마음 먹진 못했어요.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많은 배움이 있겠지' 생각하며 그 배움 속에서 최선을 다했죠. 그런 과정에서 좋은 면이 보였던 것 같아요. 정말 좋은 기회를 얻었죠."

'렛미인'은 1차 서류를 포함해 4차 오디션까지 진행됐다. 멀고 험한 길이었지만 오승훈은 오히려 과정이 즐거웠다. 아무 경험도 없기 때문에 가서 연기라도 해보고 싶었던 그는 첫 오디션에 대해 "너무 흥분되고 재밌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연습과는 다른 현장에서 나오는 것들이 있었어요. 느낌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연습 하면서 제 안의 오스카가 많이 깨어난 것 같아요. 3차는 무브먼트였는데 저는 무용을 해본적도 없고 경험이 없어 뭘 준비해야 할지 사실 몰랐어요. 무브먼트는 아름다운 움직임이라고 생각해 걱정을 많이 했죠. 근데 막상 가니 막 뛰더라고요?(웃음) 제가 농구 선수 출신인데 농구가 리듬운동이다 보니 뛰는건 자신있거든요. 다행이다 싶었죠. 근데 이후에 안무를 배웠어요. 잘 외우지 못해 눈을 질끈 감고 무작정 열심히 했죠."

뛰는 것은 자신있었지만 안무는 쉽지 않았다. 결국 옆 사람을 보며 따라하기 바빴다. 그러나 이 당찬 신예는 이 과정조차 무섭지 않고 재밌었다. "한번도 그런 오디션을 본적이 없어 과정이 너무 재밌어 땀을 쫙 빼고 나왔다"며 웃은 오승훈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너무 재밌었던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몸을 잘 쓰는 분들이 많아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엔 연기할 기회를 주셨는데 이은지 배우와 페어로 연기를 하게 됐어요. 서로 한 번도 맞춰본적이 없는데 너무 잘 주시고, 제가 주는 것도 잘 받아주셔서 어느 순간 연결이 돼있더라고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연기를 선보이고나선 안무를 한 번 더 보신다고 했어요. 사실 그 전에 제 연기가 마음에 든다면 안무를 한 번 더 확인할 거라 생각해 전날 밤 집에서 안무 연습을 했었어요. 근데 딱 시키는 거예요. '됐네!'라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했어요."

분명 처음인데도 오승훈은 당찼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당참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 당참은 한 차례 실패를 겪으며 얻은 자산이다. "운동할 때 되게 게을렀는데 어찌 됐든 한 번 가졌던 꿈에 실패를 겪었고, 이후 두번째 꿈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정반대로 살려고 했다"며 "게을러지려고 하면 무조건 채찍질 하며 살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니 재미도 있어졌고, 재미가 있어지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오승훈은 자신의 힘으로 4차 오디션 과정을 거쳐 오스카 역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합격 통보 받고 딱 이틀 좋았다"는 의외의 답을 내놨다. 합격의 기쁨을 만끽한 후엔 두려움이 엄습한 것. 하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제작진 덕에 걱정을 없애고 무조건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존 티파니 연출님은 저를 많이 보시지 않았는데 연습하는 것만 보고도 저를 꿰뚫고 계셔서 깜짝 놀랐어요. 정말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으시고 섬세하세요. 연습을 하면서 제일 절실하게 느꼈던건 어떻게 연기를 하든 진심을 다 하면, 그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진실이고 진짜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오승훈은 점점 오스카가 됐다. 영화를 통해 오스카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던 그는 연극 대본을 더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보같고 웃긴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순수함을 넘어 고독함, 외로운 삶이 보였다. 순수함과 외로움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는 것이 힘들었지만 대본을 뒷부분부터 거꾸로 읽으며 그 변화와 감정을 느끼려 노력했다.

"연습 기간 초반에는 진짜 할 수 있는건가 싶었어요. 두려웠죠. 첫 런스루 때 1막이 끝난 뒤에 위가 뒤틀릴 정도로 기가 빨린 느낌이었을 정도예요. 하지만 연출님, 많은 선배님들과 소통하며 자신감이 생겼어요. 솔직히 전 가진게 없으니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작정 열심히 덤볐죠. 100% 만족하지는 못해도 우려했던 것보다는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함이있어요. 공연을 올린 후에 '내가 못하는 게 아니구나. 할 수 있구나'라는 마음이 컸어요. 생각보다 너무 너무 재밌어서 더 좋았고요."

무대에 오른 뒤에는 디테일에 신경쓰고 있다. 살아있지 않은 느낌은 싫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계획적인 연기를 했던 그는 '렛미인'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재미, 마음으로 연기하는 법을 알게 됐다. 그러니 디테일한 감성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작가의 글 사이 사이를 채우는 것이 배우가 할 일이라는 말에 공감해 그 사이를 채워넣을 디테일에 신경쓰고 있다. 그렇다고 그 부분에 집착하진 않는다. 집착하는 순간 어색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자연스러운 감정에 더 집중하고 있다.

"오스카는 모든 사람과 만나요. 1초라도 집중력을 놓치면 모든게 확 깨져버리죠. 상대에게 집중해서 전달해주지 않으면 저 또한 그만큼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다 어그러지죠. 매순간 집중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두번째 공연 할 때까지는 상대방 눈이 잘 안 보였어요. 근데 선배님들이나 연출님이 '다른거 하지 말고 지금 네 앞에 있는 사람의 눈만 보며 그 사람이 주는 말만 들어봐라'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그 때부터였떤 것 같아요. 매 순간 진심으로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상대역과의 소통을 알게된 오승훈에게 두 일라이 이은지, 박소담은 어떨까. "두 분이 정말 다르다"고 운을 뗀 그는 "박소담은 소녀같고 인간 같은 일라이인 반면 이은지 배우는 좀 더 뱀파이어 같고 사람 같지 않은 일라이"라며 "박소담 배우와 연기할 때는 오스카와 일라이의 관계가 후루룩 풀려버리는 것 같고, 이은지 배우와 연기할 때는 소년과 소녀로서 한단계씩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훅훅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오승훈이라는 배우의 진가가 보였다. 이에 배우 이전에 사람 오승훈이 궁금했다.

오승훈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해 농구로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농구선수의 꿈은 좌절됐다. 농구를 포기하게 됐을 때 그는 학창시절 봤던 영화 '해바라기'를 떠올렸다. 평소 울지 않던 그는 김래원의 연기를 보고 영화관에서 통곡했다. 그 때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멋있고 매력있다고 느꼈고, 농구를 포기한 뒤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배우가 매력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 드라마 '뉴하트'를 본 뒤에는 의사가 되겠다고 의학용어를 외우기도 했죠. 이틀만에 꿈을 접었지만.(웃음) 배우는 항상 제게 매력있는 직업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농구를 그만두고나서 다른 비전에 대해 생각해보니 배우가 생각 나더라고요. 체육계에 있고싶진 않았어요. 완전히 다른걸 해보고 싶었죠. 연기와 관련해선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새롭게 시작해야 했어요."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무작정 연기 학원을 찾았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지만 성공에 대한 욕심이 컸던 탓에 연기 학원에서의 생활은 바로 그의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결국 3개월만에 학원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왔다.

그러나 길은 의외의 곳에서 다시 열렸다. 연기학원에 다닐 때 신청해놨던 SBS '기적의 오디션' 측에서 연락이 온 것. 방송에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오디션은 오승훈을 다시 배우의 길로 끌어들였다. 특히 심사위원이었던 이범수는 오승훈이 부진한 모습을 였음에도 계속해서 도움을 줬다.

결국 오디션에선 탈락했지만 오승훈 마음 속에 있던 연기 열정이 그 때 비로소 피어올랐다. 그만둔 연기 학원 선생님에게 새벽에 전화를 했을 정도로 흥분됐다. 당시 연기 학원 선생님은 열심히 하다 돌연 그만둔 오승훈에게 '연기할 각오가 돼있다면 지금 당장 입대를 해봐라'라고 했다. 이에 오승훈은 단번에 군대에 갔고, 의지를 불태우며 연기를 배웠다.

"농구 그만둘 때 너무 힘들었어요. 미련도 남았죠. 부모님도 힘들어 하셨고요. 그래서 연기는 더 죽기살기로 했어요. 전역하고나서 작은 회사와 계약하기도 했는데 사정이 좋지 않아 1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오기가 발동했죠. 그래서 나도 한 번 부딪쳐보자 하고 나무엑터스 오디션을 봤어요.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합격했죠. 되게 얼떨떨했어요. 1년동안 나무엑터스에 있으면서 성장했고, 엄청 많은 것들이 변화했어요. 사람으로서도, 배우로서도 정말 많이 배웠죠. 앞으로 나무의 희망이 되고 싶어요."

이제 갓 시작했기 때문일까. 오승훈에겐 풋풋한 빛이 났다. 순수하면서도 영리했고, 진심을 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지금은 제 자신보다 오스카와 일라이가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게 '렛미인'에 집중하고 싶어요. '렛미인' 자체가 아름답고 환상적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돋보이려 하지 않고 잘 해야겠죠? 진심으로 해야 하고요. 그렇게 하면 제가 눈에 띄려고 하지 않아도 더 잘 보일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제가 갖고 있는 매력들을 많이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관객 앞에서든, 시청자 앞에서든 더 많은 면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연극 '렛미인'. 공연시간 140분. 오는 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02-577-1987

[오승훈.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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