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리뷰] "들어가도 돼?"…연극 '렛미인', 이토록 찬란한 구원의 손길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들어가도 돼?". 뱀파이서 소녀 일라이가 10대 소년 오스카에게 묻는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부모에게도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오스카에게 일라이의 물음은 구원의 손길과도 같아 가슴이 시린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일라이에 대한 경계심이 생겼을 때, 결국 그를 붙잡는 것은 사랑이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이 결국 인생을 지탱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혼란한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들어가도 돼?", 그야말로 찬란한 구원의 손길과도 같다. 오스카와 일라이만의 모스부호 또한 결핍을 채운 이들의 위대한 사랑을 눈을 넘어 귀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연극 '렛미인'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10대 소년 오스카와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 일라이 옆에서 한평생 헌신한 하칸의 매혹적이면서도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 스웨덴에서 최초로 개봉하고 미국에서 다시 리메이크 돼 전세계에 매니아 관객들을 양산하며 사랑 받아 온 영화를 원작으로 했다.

비영어권 최초로 개막, 한국에서는 원작 연극의 모든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라이선스 공연으로 선보이고 있다. 오리지널 연출 존 티파니를 비롯한 해외 제작진이 방한해 공연을 진두지휘하는 만큼 본 공연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진다. 군더더기 없이 작품 본연의 색에 집중하는 만큼 극 몰입도가 뛰어나다.

'렛미인' 속 인물들은 모두가 결핍돼 있다. 우리와 다를바 없는 평범한 이들이지만 우리가 그렇듯 결국 모두가 결핍을 갖고 있고, 안전함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더 오스카와 일라이의 이야기가 공감된다. 이들이 서로에게 내미는 손길은 따뜻할 수밖에 없다. 극한의 결핍 속에서 서로를 채워주는 안전함을 느끼게 하니까.

'렛미인'은 뱀파이어를 그리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다. 잔잔한 감성으로 꽉 차 있다. 휘몰아치는 이야기에 충격적인 장면이 계속되지만 이는 충격과 공포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짙은 감성으로 다가와 가슴 시리게 하고, 그 시린 가슴을 따뜻한 사랑으로 채울 수 있게 한다.

이는 무대와 음향의 공이 크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자작나무 숲을 표현한 무대는 쓸쓸함이 가득하면서도 결국 땅을 뒤덮어 포근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놀이터 구조물은 단순하지만 인물들의 움직임을 더욱 다채롭게 하고 잎 없는 나무 역시 인간의 고독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수영장 고문신에서 놀이터가 수조로 변하는 모습은 무대 장치 활용에 신선함을 더한다.

인물들의 무브먼트는 '렛미인' 특유의 감성을 극대화시킨다. 안무가 스티븐 호겟은 섬세한 무브먼트를 통해 인물의 속내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뱀파이어의 몸짓은 물론 인물들의 현재 감정까지, 신비로우면서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움직임으로 풀어내 집중도를 높인다. 서로에게 기대고 싶고, 교감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오스카와 그의 엄마가 침대 위에서 선보이는 발레는 그 고요한 움직임만으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무대와 무브먼트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은 단연 음악과 조명 효과다. 올라퍼 아르날즈(Olafur Arnalds)의 음악이 없었다면 '렛미인'이 그려내는 결핍 속 안전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조용한 무대 위를 덮는 어둡고도 신비로운 조명은 '렛미인'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요소다.

오로지 인물에 맞게 캐스팅한 배우들도 '렛미인'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배우들 전체가 제 옷을 입은 듯 역할 몰입도가 뛰어나다. 오스카, 일라이 역 젊은 배우들의 신선한 연기와 하칸 역 주진모의 묵직한 연기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이들 외의 인물들도 압축된 이야기 속에서 저마다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며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에 힘을 싣는다.

주인공 오스카, 일라이 역을 연기하는 신인배우들은 보물이 따로 없다. 인지도를 철저히 배제하고 오디션을 진행한 결과, 오로지 인물 자체에 딱 맞는 배우들이 무대에 서게 됐다. 높은 경쟁률을 뚫은 만큼 신인임에도 집중력 있는 연기력으로 관객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박소담, 이은지, 오승훈, 안승균은 스펀지처럼 인물 자체를 빨아 들였다. '충무로의 괴물 신예'라 불리는 박소담은 첫 연극 무대에서도 남다른 에너지와 기본기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이은지 또한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만만치 않다.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더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유연한 연기력이 돋보인다.

오승훈은 데뷔임에도 무대 위 디테일의 묘미를 아는 듯 하다.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디테일이 오스카의 감성을 더 깊게 전달한다. 안승균 또한 영리함이 드러난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인물을 그려낸다. 불필요한 요소가 느껴지지 않아 그 존재 자체가 오스카로 다가온다. 박소담, 이은지, 오승훈, 안승균.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

연극 '렛미인'. 공연시간 140분. 오는 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02-577-1987

[연극 '렛미인' 공연 이미지.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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