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허 플레이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랴 [MD리뷰]

[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고급 외제 승용차가 허름한 농가에 들어선다. 그 차에서 내린 부부는 농가의 여주인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그 농가에서 살고 있는 10대 소녀를 유심히 살펴본다. 도시에서 온 여자, 소녀, 그리고 소녀의 엄마 사이에는 묘한 어색함과 긴장감이 감돈다. 이들 사이에는 모종의 거래가 진행 중이었다.

도시여자는 편리하고 화려한 일상을 모두 포기하고 낯선 시골에 내려와 적응하려 애쓴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오로지 소녀만이 들어온다. 도시여자는 소녀를 위해 뭐든 해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녀가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소녀가 아니었다. 바로 소녀의 몸속에 있는 아기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행여 아기가 잘못될까 소녀를 자신의 방에서 재우고 코앞에서 감시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녀는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덜컥 아이를 임신하고 말았다. 엄마도 그 사실을 알게 됐지만, 두 모녀에게 딱히 대안은 없었다. 그때 마침 도시여자로부터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고, 모녀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도시여자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간다. 그러나 소녀는 두렵다. 자신이 엄마가 된다는 것도,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것도 모두 무섭고 불편할 뿐이다. 소녀는 차마 뱃속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만다.

엄마는 아직 철도 들지 않은 딸이 덜컥 임신을 했다는 사실에 눈 앞이 캄캄했지만, 다행히 대안이 생긴 것 같아 안심한다. 그 대안을 제시한 도시여자의 눈치를 보면서도 딸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딸을 위해 이 위험한 비밀 거래를 성사시켰고, 딸과 함께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물론, 딸이 무사히 출산한 뒤에 이룰 수 있는 꿈이지만. 엄마는 매정해 보였지만, 동시에 현실적이고 매우 이성적이었다.

여자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엄마로 '인 허 플레이스'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시선을 이동시킨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세 여자들의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느냐고. 여자의 시선에서, 소녀의 시선에서, 엄마의 시선에서 보면 각자가 가진 아픔이 있고, 왜 이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정당성이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설득시킨다.

영화는 세 여인의 세밀한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내 몰입도를 높인다. 볼거리 하나 없는 남루한 농장이 영화 속 배경의 전부인지라 제법 지루할 법도 하지만, '인 허 플레이스'는 이러한 지루함마저 느낄 틈을 관객들에게 허용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몰입도를 높이는 데 크게 한 몫 했다. 도시 여자로 분한 윤다경과 임신한 10대 소녀의 엄마 길해연은 다수의 작품을 통해 검증된 탄탄한 연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작품을 이끈다. 여기에 10대 임신 소녀를 연기한 안지혜는 이번 작품이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한 심리 묘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들 세 여배우의 조합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한국에서 오로지 연기력만으로 평가해 직접 캐스팅에 나선 알버트 신 감독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시골 농장에 사는 10대 임신 소녀의 가족과 그들을 찾아온 한 여성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인 허 플레이스'는 오는 17일 개봉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인 허 플레이스' 포스터와 스틸. 사진 = 홀리가든 제공]

장영준 digou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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