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프리미어 12가 우리에게 안긴 고민들 [창간특집]

[마이데일리 = 윤욱재 기자] 우승의 맛은 언제나 달콤하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프리미어 12의 초대 챔피언으로 우뚝 서며 야구 강국의 면모를 보였다.

메이저리거들이 불참해 '진정한 국제화'를 모색하기 위해 출범한 이 대회의 의미가 퇴색됐지만 한국은 메이저리거를 제외하고도 최정예 멤버를 구성한 일본을 준결승에서 꺾었고 예선전에서 승부치기 끝에 패배를 당한 미국을 상대로 우승을 확정 지었다.

단기전에서도 '믿음의 야구'를 선보인 김인식 대표팀 감독의 리더십을 필두로 베테랑과 신참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제 몫을 보인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값진 우승을 따냈다. 온갖 꼼수를 부리면서 우승에 올인한 일본을 준결승전에서, 그것도 0-3으로 뒤지다 9회초 이대호의 역전타로 4-3 역전승을 거둔 순간은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우승은 달콤하지만 그래도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곱씹어봐야 할 부분도 있었다. 한국 야구의 현실과 미래를 모두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다. 한국 야구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 삿포로돔에서 고척돔을 떠올리다

"이게 야구장이지" 일본과의 개막전을 치르기 위해 삿포로돔에 들어선 오재원의 한마디였다. 아마 모든 선수들이 오재원의 생각과 일치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돔구장은 더이상 꿈이 아니다. 고척스카이돔의 개장으로 '돔구장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고척돔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마냥 기쁘지 만은 않다. 당초 동대문야구장을 허물고 아마추어 야구의 요람으로 시작된 고척돔은 어느덧 프로 구단 유치를 위한 용도로 바뀌어 있었고 그러다보니 규모를 억지로 키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런 저런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그냥 야구장에 들어섰을 때, 다 지은지 10년도 지난 삿포로돔이 고척돔보다 좋아 보이는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SBS 특별해설위원으로 삿포로돔을 찾은 이승엽은 "조명이 정말 밝다"는 첫 마디로 나무랄데 없는 시설임을 말했고 개막전에 앞서 훈련을 치른 김재호는 "이런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있기 때문에 일본이 강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모두가 감탄할 수 있는 돔구장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으로 불편한 부분에 대해 수정과 보완 작업이 이뤄질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 전임감독제, 이젠 정말 필요하다

일본이 준결승전에서 탈락하고 3위에 머물렀지만 이미 그들의 시선은 '다음 대회'로 향하고 있다. 일본 대표팀을 맡고 있는 고쿠보 히로키 감독은 이미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선수단을 지휘하기로 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아직 누가 차기 WBC 감독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전임감독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프리미어 12에서의 성공은 우리에게 왜 전임감독제가 반드시 필요한지를 보여줬다. 김인식 감독은 과거 WBC에서 한화 감독을 맡으면서도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뒀으나 당시 대표팀과 소속팀을 모두 챙겨야 하는 어려움도 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표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는 규정이 있지만 이젠 전임감독제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김인식 감독은 이번 대회를 진행하던 중 "자신의 소속팀이 있으면서 대표팀 감독까지 하는 건 쉽지 않다"고 밝히며 전임감독제에 대한 찬성 의견을 보탰었다.

무엇보다 프리미어 12의 등장으로 WBC와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가 빈번해지면서 대표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전임감독제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프리미어 12와 WBC 모두 4년 주기로 치러지는데 프리미어 12가 2015년에 출범하고 WBC는 2017년에 4회 대회를 가질 예정이니 2년마다 한번씩 국가대항전을 갖는 셈이다.

▲ 메이저리거 불참, 우리는 최정예 멤버를 내보내야 하는가

세계랭킹 1위부터 12위까지 참가해 국가대항전을 벌여 야구의 진정한 국제화를 이루고 2020 도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재진입하기 위해 프리미어 12가 탄생했다. 그런데 세계 최고를 가리는 자리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빠졌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아쉬운 점, 바로 메이저리거의 불참이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프리미어 12 대회에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등록된 선수의 출전을 불허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과연 우리는 메이저리거를 제외한 최정예 멤버를 구성해야 할까. 일부에서는 "젊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주축으로 구성하자"는 말도 한다. 프리미어 12의 전신 격인 야구월드컵에 내보내는 선수단 수준을 생각하면 되겠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최정예 멤버 구성에 나섰다. "올림픽에 재진입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겠다"는 게 우리의 공식 입장이다. 문제는 메이저리거들이 나서지 않아 이번 대회에서의 우승이 '세계 최강'으로 인정받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 중, 김인식 감독에게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대표팀을 구성하는 방안'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김인식 감독은 "상비군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과연 그 젊은 선수들이 충분히 합동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구단에서 줄지 의문이다. 또한 젊은 선수들로 나갔을 때 결과가 좋지 않으면 비난이 있을 것이다. 세대교체를 위한 측면도 있겠지만 한꺼번에 젊은 선수들이 나온다고 해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프리미어 12가 1회 대회처럼 메이저리거들의 불참이 이어지고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비상식적인 운영을 지속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야구의 세계화'가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아마도 2회 대회를 지켜보면 그 답이 나올 것 같다.

▲ 오타니가 안긴 충격, 한국 야구의 시스템을 돌아볼 기회

만약 오타니 쇼헤이가 준결승전에서 9회까지 던졌다면? 야구에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7회까지 85구로 한국 타선을 무실점으로 묶은 오타니였기에 그리 의미 없는 가정은 아닌 것 같다.

마음 먹으면 160km 강속구를 던질 수 있고 포크볼의 구속도 147km까지 나오는 괴물투수. 슬라이더도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과 침착함까지 갖췄다. 대부분 우리 타자들은 "오타니 같은 공은 처음 본다", "알고도 못 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왜 이런 투수를 만들 수 없는 것일까. 우리도 리틀야구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있는데 김인식 감독은 "이런 선수들이 사라진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분명 좋은 기량과 잠재력을 갖춘 선수는 있는데 이들이 오타니처럼 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적 지상주의로 인한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은 여전하다. 그래서 프로에 들어오자마자 적응이 어렵고 수술을 진행하는 선수도 여럿 있다. 언제쯤 우리는 혹사 없는 아마야구를 볼 수 있을까. 또한 야구는 장비를 갖춰야 할 수 있는 경기다.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따라서 김인식 감독은 '장학 제도의 확산으로 유망주 선수들에게 폭넓은 기회 제공'을 할 것을 주장했다.

오타니가 안긴 충격은 역설적으로 우리 야구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제는 그 기회를 살려야 한다.

[사진 = 마이데일리 DB]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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