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않녀' 도지원 "경빈 보내고 나를 다시 찾았다" (인터뷰)

[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배우 도지원에게 KBS 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극본 김인영 연출 유현기 한상우 제작 IOK미디어)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동안 족쇄처럼 붙어 다니던 '경빈'의 그림자를 홀가분하게 벗어던질 수 있었다. 배우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이 도지원에게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었다.

도지원은 극 중 김혜자와 이순재의 첫째 딸 김현정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방송사 앵커에 처음 도전한 도지원은 자신감 넘치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의 모습과 치열한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장녀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그려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또 문학(손창민)과의 만남으로 점차 변화해가는 감정과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설렘 가득한 로맨스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워낙 연기 잘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호흡은 말 할 나위가 없었죠. 성격 좋으신 감독님 지휘 아래 연기자와 스태프들 모두 '으?X으?X'하면서 촬영에 임했어요. 첫 대본 연습 때는 김혜자 선생님이 작가님을 칭친하시더라고요. 기대된다고. 그러자 작가님도 '힘을 얻어간다. 열심히 쓰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 개인적으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고, 또 잘 될 거라는 저희 나름의 확신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올해로 데뷔 26년차인 도지원은 연기에 있어서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그러나 도지원은 아직도 선배 연기자들과 함께 할 때면 배울 게 참 많다. 특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을 통해 처음 인연을 맺은 김혜자 이순재 장미희와 연기하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함께 로맨스 연기로 호흡을 맞춘 손창민도 마찬가지였다. 도지원은 "연기 분야의 한 획을 그은 분들과 한 자리에서 연기한다는 게 설???고 소감을 전했다.

"그 분들은 연기에서건 사생활에서건 보여지는 하나하나가 전부 배울 것들이었어요. 저에게는 이번 작품이 제 연기 생활에 있어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특히 상대역이었던 손창민 선배님은 함께 연기하면서 아역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견뎌내면서 결코 허투루 연기 생활을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굉장히 철두철미하고 공과 사에 대한 것도 확실하시더라고요. 또 감성을 예리하게 캐치해내시는데, 배울 점도 많았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벌써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도지원에게는 2001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 출연 당시의 후궁 경빈 박씨 역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스스로도 경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도지원은 '착하지 않은 여자들'을 통해 경빈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극중 나말년(서이숙)에게 가족간 서열을 따지며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장면에서 도지원은 경빈의 유행어였던 "뭬야?"를 외쳐 보는 이들의 웃음보를 자극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그 장면에 대한 느낌이 딱 경빈이었어요. 저는 그 대사를 스스로 족쇄라고 생각하는데, 벗어나는데 10여년이 흘렀거든요. 그동안에는 그 말을 제 입에서 절대 꺼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본을 보는 순간 '뭬야'의 느낌이 강하게 오더라고요. 대본에 그 대사는 써 있지 않았지만, 그걸 할까말까 굉장히 고민했어요. 그러다 결국 하기로 했고, 그렇게 그 신을 만들어 낸거죠. 그런데, 그 대사를 한 뒤 뭔가 홀가분한 느낌을 받았어요."

배우라면 응당 한 캐릭터에 갇히는 걸 절대 원하지 않는다. 도지원도 마찬가지였다. 한 때 스스로도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이 역을 줘도 저 역을 줘도 다 할 수 있는 배우. 그래서 도지원은 '여인천하' 출연 후 한동안 공백기를 보내기도 했다. 스스로를 한 작품, 한 캐릭터에 묶어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버리면서까지 지내던 방황의 시간은 '웃어라 동해야'를 만나면서 끝을 맺었다.

"'웃어라 동해야'의 안나를 만나면서 '이제 극과 극을 연기해봤으니 어떤 역을 받아들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행히도 운이 좋았는지 시트콤부터 '힐러' '착하지 않은 여자들'까지 정말 하고 싶었던 역할들을 하게 됐죠. 저를 다시 찾은 느낌이었어요. 경빈을 할 때는 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거든요. 이제는 다음에 어떤 연기를 할까 생각하면서 기대가 되요. 쉬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가 있다면 안 쉬어도 될 것 같아요."

도지원의 얼굴에서는 한 결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배우로서의 진지한 고민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이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운 말투로 후배 연기자들이 들으면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의미심장한 각오를 남겼다.

"주연만 찾고, 스타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점점 주인공을 받춰주는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연기를 할 수 없어요. 그냥 쉬어야죠. 물론, 저도 숱한 고민과 혼자만의 싸움? 이런 걸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또 대선배님들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 계실 수 있는 거고요. 욕심보다는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냥 정체돼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노력하려고요. 그래야 앞으로도 좋은 배우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배우 도지원.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장영준 기자 digout@mydaily.co.kr

장영준 digou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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