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타선·니퍼트 관계 재정립, 야구는 생물이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삼성타선과 니퍼트의 관계가 재정립될 조짐이다.

장기레이스를 치르다 보면 특정 타자와 특정 투수 사이에서 천적 관계가 발생한다. 유난히 특정 투수의 볼을 잘 치는 타자가 있고, 반대로 유난히 못 치는 타자가 있다. 타자 특유의 스윙 궤적과 투수 특유의 타점, 구종 등 각자의 특성이 결합해 남들이 다 잘 공략하는 투수의 공을 유독 공략하지 못하는 타자, 남들이 쩔쩔매는 투수의 공을 유독 잘 공략하는 타자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삼성 타자들과 두산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의 인연은 질기다. 모든 타자에게 적용된 건 아니었지만, 니퍼트는 확실히 삼성 타선에 강했다. 2011년 입단 이후 지난해까지 19경기에 등판, 13승1패 평균자책점 2.33. 퀄리티스타트만 무려 15차례. 지난해에도 7경기서 5승 평균자책점 2.72로 막강했다. 두산은 지난해 니퍼트가 등판한 삼성전 7경기서 모두 이겼다.

▲왜 니퍼트가 까다롭나

니퍼트는 큰 키를 바탕으로 마치 2층에서 내리꽂는 듯한 타점 높은 직구가 주무기. 타자 입장에선 공략이 무척 힘들다. 공의 궤적이 처음부터 시야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타격 타이밍을 제대로 잡는 게 쉽지 않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니퍼트 특유의 하이 볼(높은 볼)에 당하면 안 된다. 타점이 높으면 타자 입장에선 높은 볼도 스트라이크로 보인다"라고 했다. 타자 입장에선 니퍼트의 공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채 높거나 낮게 제구 되는 공도 순간적으로 스트라이크로 판단, 방망이를 내밀 수 있다. 당연히 범타의 확률이 높다. 헛스윙이나 파울이 나와도 니퍼트에게 유리한 볼카운트가 조성된다. 타자들은 여유가 사라진다. 변화구 유인구에 꼼짝없이 속을 수밖에 없다.

두산 김현수는 이번 스프링캠프 자체 연습경기서 처음으로 니퍼트의 공을 상대했다. 그는 "왜 타자들이 니퍼트를 까다로워하는지 알겠더라. 직구가 몸쪽으로 들어오는데 도저히 칠 수 있는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라고 했다. 모든 타자들이 니퍼트를 까다로워하고, 삼성 타자들은 특별히 니퍼트를 더 힘겨워했다.

▲니퍼트도 사람이다

니퍼트도 사람이다. 21일 잠실 맞대결서 6이닝 8피안타 1볼넷 2탈삼진 4실점했다. 딱히 난타 당했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니퍼트에게 유독 약한 삼성 타선인 걸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 삼성은 이흥련, 박한이, 박석민이 니퍼트에게 각각 2안타씩을 뽑아냈다. 오랜만에 선발 출전한 이흥련이 선제 결승 2타점 2루타를 뽑아낸 게 하이라이트.

이날 니퍼트의 공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 타점은 여전히 높았는데 공이 들어가는 코스가 어정쩡했다. 확실히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찌르지도 못했다. 삼성 타자들이 치기 좋게, 적당히 높게 들어가는 공이 많았다. 최근 타격감이 좋지 않았던 삼성 타자들은 20일 경기서 무려 24안타 25득점하며 감각을 많이 끌어올린 상태. 니퍼트의 실투를 공략할 수 있는 집중력이 있었다. 삼성 타선은 니퍼트를 완벽하게 공략하진 못했다. 하지만, 니퍼트 공포증을 어느 정도 극복한 건 분명해 보인다. 심리적으로 자신감을 얻었다면 다음 맞대결서 니퍼트의 구위가 좋더라도 일방적으로 끌려 다닐 가능성은 낮다. 삼성 천적 니퍼트도 사람이다. 삼성전서 항상 잘 던질 수는 없다.

▲야구는 생물이다

삼성 타자들 중에서 니퍼트에게 가장 강한 타자는 베테랑 박한이. 2013년 한국시리즈서는 니퍼트에게 홈런을 뽑아냈다. 21일 경기서도 3타수 2안타로 강했다. 니퍼트 통산 상대전적은 47타수 19안타 타율 0.404.

박한이는 "니퍼트는 컨트롤도 좋고 볼도 빠르다. 볼카운트가 몰리면 불리해진다. 특정 코스를 노리고 적극적으로 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짧게 스윙해야 안타가 나온다"라고 교과서적인 답을 내놓았다. 물론 그는 "항상 내가 생각한 곳으로 공이 들어오긴 한다"라며 베테랑 특유의 경험을 과시했다.

박한이가 니퍼트에게 강한 건 마음을 비웠기 때문. 그는 "니퍼트가 우리 타자들에게 강하다고 하는데 사실 원래 좋은 투수다. 잘 던지는 투수에게 안타를 칠 확률이 몇 %나 되겠나. 잘 치면 좋은 것이고 못 쳐도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마음을 비우고 공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안타를 적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니퍼트에게 강한 타자가 됐다.

야구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을 때가 많다. 선수들은 매일 같은 훈련을 반복하고 승패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살아 숨쉬는 생물이다. 니퍼트에게 강한 박한이처럼 물밑에서 치열하게 움직인다. 당연히 특정 시점, 주기, 기간을 기준으로 큰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지난 4년간 천적이었던 삼성타선과 니퍼트의 관계 역시 이날을 계기로 재정립될 수 있다. 삼성 타선이 니퍼트에게 항상 무너진다는 법은 없다. 반대로 심기일전한 니퍼트가 또 다시 반격할지도 모른다.

[삼성 선수들(위), 니퍼트(가운데) 니퍼트에게 홈런을 친 박한이(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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