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티보이즈' 고은성, "계산은 하되 진짜 날것처럼" (인터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열심히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하는 배우가 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열심히'의 위험성을 알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아는 배우 고은성(23)이 그 주인공이다.

고은성이 출연중인 뮤지컬 '비스티보이즈'는 청담동의 유명 호스트바 '개츠비' M팀 선수의 이야기. '범죄와의 전쟁', '군도'의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윤계상의 만남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 '비스티보이즈'를 원작으로 탄생된 뮤지컬이다. 영화와는 호스트바라는 배경만 동일하고 기존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를 꿈꾸며 폼생폼사의 진수를 보여주는 '개츠비'의 선수 강민혁 역을 맡은 고은성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원래 적응을 늦게 하는 편인데 형들 덕분에 적응을 빨리 했다. 자유롭다고 해야 하나. 창작 초연이다 보니 다같이 만들어 가는 거라 처음엔 좀 어려움이 있었는데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서 좋다"고 입을 열었다.

▲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을 알게 됐다"

고은성은 '비스티보이즈'를 통해 새로 도전하는 것들이 많다. 한국인 배역도 처음이라 좀 더 사람 같은 느낌이 들고, 뮤지컬 '그리스' 공연과 병행하며 완급조절도 배우고 있다. 비슷한 듯 확실히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하며 지킬 것은 지키고 가져가야 할 감정은 그대로 가져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고은성은 "한국인 배역을 하니 재미있다. 일단 그렇게 많이 헤매지 않아도 된다. 한국 창작 작품이 나와 잘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전의 태도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며 "민혁 역이 서서히 들어온 것 같다. 전에는 사실 뭔가를 해야 된다는 게 연기라고 생각했다면 이걸 하면서는 내가 뭔가를 보여주기보다 우리 안에서 관계나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연습 하면서 '대본을 볼 때 너무 수박 겉핥기로 단면만 봤구나' 반성했다. 대본 속 글을 익혀 말로 바꾸는 게 우리 직업인데 그동안 내 대사에만 밑줄 치고 어떻게 잘 할지 단면적으로 접근했다. 잘 해야 된다는 욕심만 있었다"며 "이번엔 총괄적으로 보게 됐다. 말을 주고 받는 관계가 있고 왜 이 관계가 어떻게 형성 됐으며 왜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느냐에 대해 생각한다. 대화가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이번에 형들과 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고백했다.

"나이도 좀 어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비스티보이즈'는 대학로에서 인정 받는 형들도 많이 나오고 소극장에서 디테일한 연기를 해보고 싶어 하게 됐다. 주로 대극장 위주의 공연을 했다면 소극장에선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서 했다. '비스티보이즈'라는 작품을 같이 만들어가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부담은 전혀 없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 잃을 게 없었다."

고은성은 '비스티보이즈'를 통해 상대 배우와의 호흡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는 "무대에선 약속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나 혼자만 약속을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본능적인 것을 믿되 기본적으로는 약속하고 계산했던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며 "정해진 것은 있지만 그 안에 있는 리듬의 폭이 넓다. 자칫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한시라도 긴장을 놓칠 수 없다. 계속 상대방과 어울리며 호흡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진짜처럼, 날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사실 '비스티보이즈'는 호스트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호스트바 자체를 다루기보다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소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 이에 배우들끼리 진짜 호스트바에 가보자는 이야기까지 나눴지만 결국 실행되지는 못했다.

고은성은 "진짜 같이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호스트바에 진짜 가보고 싶었다. 근데 나중엔 우리가 가보지 않아도 진짜 같이 보일 것 같았다. 왜냐면 사람은 다 똑같지 않나. 흑인, 백인 다 똑같고 직업의 귀천을 떠나 사람은 다 똑같다"며 "단지 자기 위치, 직업이 뭔가에 따라 쓰는 단어나 습관, 환경이 달라질 뿐이다. 사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똑같다"고 설명했다.

"호스트바 용어 같은 것은 다같이 공부했다. 영화 '비스티보이즈'를 많이 참고했다. 다섯번 넘게 보면서 거기서 쓰는 말들과 알 수 없는 공기, 기류 같은 것을 익혔다. 그러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살인자 역을 해야 한다고 살인을 할 수는 없지 않나. 간접적인 경험과 상상력으로 배역 속 인물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호스트바 선수들을 실제로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어느 한 명 표정이 안 좋다거나 숨고 싶어 하는 사람 없이 당당하더라. 애초에 주위의 편견을 신경 쓸거면 이 일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거다. 모두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민혁 역은 어떻게 잡아 갔을까. 그는 "사실 어떤 형들은 내가 그냥 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전에 이미지 훈련을 많이 해놨다. 영화 '비스티보이즈' 하정우, 드라마 '신의 선물-14일' 조승우를 참고했다"며 "날라리 같지만 그냥 행동이 그런 사람으로 잡았다. 감정적으로는 깊게 파고 들지 않았다. 물론 그러고 싶지만 내가 남들한테 보여줄 때 굳이 그걸 드러나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희화화 하고 싶고, 즐겁게 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첫 연습 때 리딩 하는데 더 쉬웠던 건 '연출님이 나를 염두해두고 쓰셨나' 할 정도로 민혁이 말투를 정해놨기 때문이다. 완전 허세스럽게 툭툭 뱉었다. 짜여진 재미보다 진짜 같은걸 원했다. 내가 계산을 하되 진짜처럼, 날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초반에는 거의 생 회로 갔다.(웃음) 날것으로 나와서 서서히 익어서 생선구이가 되는 건데 사실 그 때 그 때 다르다. 근데 항상 똑같이 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 신경을 탁, 촉각을 탁 곤두세우면서도 자연스럽게, 뭘 하는지 느끼게 하면서 빈틈을 파고들고 싶다."

▲ "좋은 사람, 좋은 남자. '굿맨'이 워너비"

고은성은 유쾌하고 재미있는 배우였다. 식상한 질문을 던져도 찰진 비유와 센스로 웃음을 자아냈다. 어린 나이지만 자신의 의견을 납득시킬 줄 알고, 또 그만큼의 지식과 깨달음을 갖고 있었다. 배우로서의 의지도 남달랐다. 매 상황을 배움의 장으로 만드는 영리함도 지녔다.

고은성은 "사실 뭔가를 열심히 하는 타입이 아니다. 건방진 말이 아니라 파고들어서 공부하는 타입은 아니란 것이다. 근데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한다. 그걸 나도 모르게 파고 있게 되는 것"이라며 "그만큼 다른걸 놓치고 가는 부분이 있긴 한데 요즘엔 안 그러려고 한다. 습관이 결국 성격을 만들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안 좋은 습관은 고치려 한다. 음악만 해도 뮤지컬 넘버만 들어왔는데 요즘엔 오페라나 록도 듣는다"고 고백했다.

다양성을 지니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고은성은 사실 최근 열심히 안 사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렸다. 원래 열심히 살았지만 열심히만 하니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 두 달동안 미국에 머물렀던 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러 다니며 자신이 얼마나 촌스러운 사고방식을 갖고 살았는지 느끼게 되면서 이같은 결정을 하게 됐다.

그는 "연습에 맨날 나가고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왜 못 깨닫고 뒤처질까, 이 숲에서 나 혼자 이상한 묘목 같았다. 생각해보니 열심히는 내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부족한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모르고 열심히 하는 건 바보 같은 것"이라며 "열심히 안 하고 내려 놓으니 오히려 뭔가 깨닫게 되더라. 그렇다고 지금 열심히 안한다는건 아닌데 그 태도와 마음을 어떻게 지녀야 하는지를 깨닫고 있다"고 털어놨다.

"어린 나이에 데뷔 해보니 느낀 것도 많다. 사실 배우는 청개구리다. 근데 매번 넘어야 할 산들이 있다. 매번 산을 넘으면 또 넘을 산이 있다. 저 산을 넘을 수 있을까 두려움도 있고 마음은 타들어가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산을 넘을 거다. '비스티보이즈' 역시 좋은 경험이고 배우로서의 삶을 이어가는 단계다. 좋은 기운을 주기 때문에 이 기운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근데 솔직히 민혁과 '비스티보이즈'가 나한테 남긴건 '누나누나'다.(웃음) 가끔 '누나누나'를 할 땐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느낌이 있다. 좋은 아웃도어를 입고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마지막으로 고은성은 "내가 불행하면 기쁜 연기를 한다 한들 정말 기쁠 수 있겠나. 나는 배우를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연기를 할 때 방해불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계속 연기를 하고 싶고 다양한 장르를 하고싶다. 뮤지컬만 하겠다도 아니다. 영화,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기회가 되고 인연이 닿는다면 다양한 장르에서 '저 배우 저 역할 진짜 소화 잘 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여러가지 장르를 하는 좋은 사람, 좋은 남자. '굿맨'이 워너비다"고 말했다.

한편 고은성이 출연하는 뮤지컬 '비스티보이즈'는 오는 9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비스티보이즈' 고은성, 공연 이미지, 포스터. 사진 = 네오 프로덕션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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