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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했는데 지옥이 시작됐다”…'오디세이' 놀란이 25년간 집요하게 파고든 ‘죄책감’[곽명동의 씨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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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이 그린 ‘영웅의 진짜 귀환’

'오디세이'./UPI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서 시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시간은 기억을 흔들고, 기억은 인간의 정체성을 뒤흔들며, 그 틈에서 죄책감이 싹튼다. 놀란의 인물들은 과거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는 오히려 더 선명한 형태로 그들을 따라온다. 그들에게 죄책감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현재를 움직이고 미래의 선택을 결정하는 윤리적 장치에 가깝다.

‘메멘토’(2001)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 놀란의 죄책감 탐구는 한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 질문은 영화가 거듭될수록 인간의 행위와 책임, 그리고 문명의 진보가 남긴 결과에 대한 문제로 넓어진다. 놀란은 인간이 무엇을 했는가를 넘어서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고,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까지 탐구한다. 결국 그의 영화에서 죄책감은 기억의 감정이면서 동시에 책임을 향해 나아가는 기억의 방식으로 작용한다.

'메멘토'./뉴마켓 필름스

‘메멘토’의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아내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그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사진과 메모, 문신을 통해 과거를 붙잡으려 하지만, 그 기록들은 진실을 보존하는 도구인 동시에 자신을 속이는 장치가 된다. 레너드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기억하지 못해서 괴로운 인간이라기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진실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기억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버린 인간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과거를 반복한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인간에게 반복은 진실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진실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레너드는 자신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복수의 목적을 영원히 연장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희생자를 만들어낸다. ‘메멘토’에서 죄책감은 인간을 과거에서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에 영원히 붙잡아두는 힘으로 작동한다.

'다크나이트'./워너브러더스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은 어린 시절 부모가 살해되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다크 나이트’(2008)에 이르면 그의 내면은 한 단계 더 복잡해진다. 이제 그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뿐 아니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내린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책임까지 마주한다.

결정적인 사건은 레이첼의 죽음이다. 브루스는 레이첼을 구하려 하지만, 조커(히스 레저)는 하비 덴트와 레이첼의 주소를 바꿔놓는다. 결국 배트맨이 찾아간 곳에는 레이첼이 아니라 하비가 있었고, 레이첼은 폭발로 목숨을 잃는다. 브루스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행동했던 자신의 선택이 비극의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조커는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조차 자신의 행동이 낳은 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파고든다. 브루스에게 죄책감은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선한 의도와 비극적인 결과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좋은 의도로 행동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가. ‘다크 나이트’는 이 불편한 질문을 브루스에게 남긴다.

'인셉션'./워너브러더스

‘인셉션’(2010)에 이르면 죄책감은 기억을 넘어 현실과 꿈을 구분하는 인식의 구조까지 침투한다.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내 맬(마리옹 코티야르)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타인의 무의식에 침투하기 위해 정교한 꿈의 세계를 설계하지만, 마음 깊숙이 묻어둔 죄책감의 형상인 맬은 그 세계를 끊임없이 무너뜨린다.

꿈속에서 나타나는 맬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다. 코브가 외면하려 했던 기억과 죄책감이 공간을 점령한 형태다. 타인의 꿈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순간에도 과거의 기억은 무의식의 균열을 타고 나타나고, 때로는 총을 들고 작전을 방해한다.

‘메멘토’에서 죄책감이 기억의 구조를 뒤틀었다면, ‘인셉션’에서는 죄책감이 현실과 꿈을 구분하는 인식의 구조까지 흔든다. 놀란에게 인간은 자신이 기억하는 것만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기억하지 못한 것, 외면한 것,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 역시 현재의 선택과 현실을 구성한다.

'오펜하이머'./UPI

‘오펜하이머’(2023)에 이르면 놀란의 질문은 한 인간의 내면을 넘어 인류 전체의 문제로 확대된다.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가 만들어낸 원자폭탄은 인간 지성의 눈부신 성취인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한 사건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힘이 세상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게 된 뒤에도, 그 힘을 만들어낸 사람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 남는다.

오펜하이머의 고통은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는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를 인간이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는 윤리적 감각에 가깝다. 과학적 성취는 완성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취가 세상에 남긴 결과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새로운 책임을 만들어낸다. 죄책감의 범위가 개인에서 문명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디세이’(2026)는 그 질문을 가장 오래된 신화의 형태로 되돌려놓는다. 오디세우스(맷 데이먼)는 지략으로 트로이를 무너뜨리고 귀환의 길에 오른다. 그러나 트로이의 목마라는 지혜는 동시에 기만이며, 그 기만은 수많은 죽음을 낳았다. 특히 제우스의 법과 크세니아(xenia), 즉 손님과 주인 사이의 신성한 질서를 위반한 행위는 승리 이후에도 오디세우스의 내면을 괴롭힌다.

오펜하이머가 자신이 만들어낸 힘의 결과를 짊어진 인간이라면,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승리를 가능하게 만든 기만과 폭력의 결과를 짊어진 인간이다. 두 인물은 시대도, 세계도 다르지만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인간은 자신이 이룬 성취만 기억할 것인가, 아니면 그 성취가 만들어낸 희생과 과오까지 기억할 것인가.

놀란의 영화에서 성공은 결말이 아니다. 오히려 성공한 순간부터 그 성공이 남긴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래서 놀란이 바라보는 영웅은 ‘승리하는 인간’에서 ‘자신의 승리를 감당해야 하는 인간’으로 이동한다. 오디세우스처럼 승리하고 오펜하이머처럼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결코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돌아보는 진짜 시간이 시작된다. 한 인간이 자신의 기억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서 출발한 질문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 나아가 문명의 성취가 어떤 희생 위에 세워지는지를 묻는 데까지 넓어진다.

크리스토퍼 놀란./UPI

놀란의 영웅들은 과거를 지워서 구원받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끝내 기억하려 한다. 어쩌면 문명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죄책감을 책임으로 바꾸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행위가 남긴 흔적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음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것. 그때 죄책감은 인간을 과거에 붙잡아두는 감정이 아니라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된다. 놀란의 영웅에게 진정한 귀환은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한 채 미래로 걸어가는 것이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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