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이준호 칼럼니스트] 골프는 여전히 귀족 스포츠인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성장의 골프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성적의 골프를 하고 있는가. 얼마 전 열린 축구 경청회가 그랬듯, 현장의 목소리는 이미 충분히 쌓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듣는 것만으로 판은 바뀌지 않는다. 골프는 한 판을 도는 운동이다. 오늘은 그 판을 어떻게 다시 짤지, 세 개의 판으로 나눠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자. 한국 골프는 이미 세계적이다. 우리 선수들은 세계 투어에서 오랫동안 경쟁력을 증명해 왔고, 국내 여자 프로 투어는 올 시즌 31개 대회 총상금 347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이뤘다. 문제는 이 화려한 성과의 이면이다. 저변과 비용, 골프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만큼의 관심을 함께 받지는 못했다. 정상은 세계에 닿았는데, 그 아래를 받치는 판은 아직 손볼 곳이 많다.
먼저 돈의 판이다. 1편에서 봤듯 골프의 문턱은 높다. 그런데 그 문턱을 낮추라고 만든 제도부터 헐겁다. 대중형 골프장은 세금을 면제받는 대신 요금을 기준 아래로 묶기로 돼 있는데, 그 세제 혜택은 한 해 1조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고도 기준 그린피를 넘기는 대중형 골프장이 열 곳 중 한둘꼴이다. 상한을 '평균 요금'으로 재는 탓에, 한산한 시간대의 할인 가격이 전체 평균을 낮춰 정작 이용이 몰리는 시간대의 높은 요금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판을 이렇게 다시 짜볼 수 있다. 평균 요금만 볼 게 아니라 이용이 몰리는 시간대의 실제 요금까지 함께 관리하고, 기준을 거듭 어기면 대중형 지정과 세제 혜택을 재검토하도록 연동 장치를 두는 것이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저렴한 공공 골프장을 조성·운영하는 길도 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공공 골프장이나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에콜리안형 모델을 논의해 왔다. 이웃 일본에서는 노캐디와 셀프 플레이, 저렴한 평일 상품처럼 이용자가 비용을 낮출 선택지가 훨씬 넓다. 골프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서는 세인트앤드루스의 명문 코스마저 지방정부가 소유하고 법으로 설립된 공공 트러스트가 운영하는 공공 자산이어서, 지역 주민과 자국민에게 요금을 크게 낮춰 개방한다. 가격 자체가 아니라 그 선택권을, 우리 현실에 맞게 옮겨 올 일이다.
두 번째는 성장의 판이다. 2편에서 필자는 아이들이 성장보다 성적에 쫓긴다고 했다. 그 한복판에 최저학력제가 있다. 다행히 교육부는 2024년 11월 초·중 학생선수의 대회 출전 제한 적용을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체육계에서도 최저학력제를 제재 중심이 아니라 학습 지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반가운 신호다. 다만 유예는 임시방편일 뿐, 잣대 자체를 다시 세우는 일이 남아 있다.
제안은 분명하다. 출전 자격을 특정 교과 성적 하나로 제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업 지원과 함께 선수에게 정말 필요한 배움도 채워야 한다. 계약과 세금, 자산 관리를 다루는 금융, 도핑과 인권을 다루는 스포츠 윤리, 성폭력 예방을 포함한 성교육, 그리고 운동을 그만둔 뒤의 삶을 준비하는 진로 교육이다. 공부를 놓자는 말이 아니다. 성적표로 재단하는 방식을 멈추고, 실제로 삶에 남는 소양을 쌓게 하자는 것이다. 가령 미국의 유소년 골프 프로그램 '퍼스트 티'는 골프를 매개로 목표 설정과 자기 관리, 협력 같은 삶의 기술을 가르친다. 골프가 성적을 겨루는 도구를 넘어 사람을 키우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건 프로가 될 소수의 아이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아이가 프로 무대에 오르거나 그곳에 오래 남는 것은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전 세계 선수의 경력 개발과 은퇴 이후의 삶을 지원하고, 유럽연합이 학업과 직업을 병행하는 '이중경력' 체계를 정책적으로 강조해 온 이유가 여기 있다. 운동을 거쳐 간 모든 아이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갈 밑천을 쥐게 하는 것, 그게 진짜 육성이다. 국내에도 선수 진로·은퇴 지원 사업이 없지 않다. 다만 주니어 시절부터 전 생애에 걸쳐 이어지는 체계로 보기는 어렵다. 지원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상시 체계여야 한다. 그 내용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생성형 AI와 사무 도구를 다루는 디지털 소양과 어학부터, 스포츠 영상분석·재활·컨디셔닝처럼 선수 경험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전문 직군으로의 전환 교육, 현직자 멘토링까지, 운동을 놓은 뒤에도 쓸 수 있는 실질 역량을 유소년 단계부터 촘촘히 쌓게 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육성의 방향 자체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소수의 유망주를 골라 몰아주는 '엘리트 선발'에 익숙했다. 반면 일본이나 유럽은 학교와 지역의 클럽 스포츠로 저변을 넓게 깔고, 그 두꺼운 바탕에서 선수가 자연스럽게 올라오도록 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엘리트만 겨냥하기보다 동호인과 학교 스포츠클럽처럼 '즐기는 골프'의 바탕을 넓히면, 선수층도 그만큼 두꺼워지고 골프를 특권으로만 보던 시선도 옅어진다. 저변이 넓어야 정상도 높아진다.
마지막은 판을 짜는 손이다.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왜 바뀌지 않을까. 앞의 두 판이 겉도는 이유도 여기 있다. 최저학력제 하나만 봐도 학습권을 우선하는 교육 정책과 선수 육성의 현실을 강조하는 체육계가 오래 엇박을 냈다. 부처의 칸막이 사이에서 정작 흔들리는 건 언제나 현장이다.
현장으로 눈을 돌리면, 짚어야 할 곳은 또 있다. 대회 환경, 특히 폭염이다. 골프 시즌은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지만, 기후변화로 여름 더위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한여름 대회에서는 경기력은 물론 선수들의 건강까지 위협받는다. 문제는 이런 여름이 예외가 아니라 점점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는 데 있다. 폭염 수준에 따라 티오프 시간과 경기 일정을 조정하는 대회 운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날씨가 흔드는 것은 선수의 건강만이 아니다. 경기의 공정성까지 건드린다. 대회와 골프장의 사용 계약은 대개 정해진 시간까지여서, 그 시간이 지나면 골프장은 예약된 일반 팀을 받아야 한다. 비로 경기가 밀려도 순연할 여지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지켜본 하부 투어 예선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면 18홀로 예정됐던 경기가 9홀로 줄어 그 짧은 승부로 당락이 갈리기도 한다. 정규 대회도 하루 일정이 통째로 취소되면 나흘 경기가 사흘로 줄어 우승자를 가린다. 선수 한 명의 시즌이, 그리고 그 무대를 지켜보는 팬의 신뢰가 날씨와 계약의 빈틈 앞에서 흔들린다. 불가항력적인 기후변화라면, 이제는 거기에 맞춰 구조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예비일을 두거나 대회용 코스를 따로 확보하는 길부터 지금의 틀을 넘어선 파격적인 대안까지, 한번쯤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사람을 기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유소년 지도는 성인 골퍼를 가르치는 일의 축소판이 아니고, 경기 실적이 곧 좋은 지도 능력을 뜻하지도 않는다. 유소년을 맡는 지도자라면 스윙 기술만이 아니라 성장과 발달, 부상 예방, 심리, 그리고 아동의 인권까지 함께 배워야 한다.
결국 '정책은 있는데 현장은 그대로'라는, 1편에서 옮긴 한마디를 뒤집는 데서 변화는 시작된다. 다만 그 변화는 어느 것도 구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요금 상한 하나를 손보려 해도 골프장의 수익과 지자체의 세수, 이용객의 부담이 서로 얽혀 있고, 최저학력제의 잣대를 바꾸는 일에는 교육부와 문체부, 대학 입시, 학부모의 셈법이 한데 걸린다. 그래서 필요한 건 선언이 아니라 실행 구조다. 요금과 세제 쪽은 관련 법령과 고시를 손봐 혜택이 요금 준수와 실제로 연동되게 해야 하고, 육성 쪽은 학교체육진흥법을 비롯한 관련 제도와 교육 과정을 함께 손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모두를 조율할, 문체부와 교육부가 상시적으로 한 테이블에 앉는 구조가 필요하다.
제도가 전부도 아니다. 골프를 '가진 사람들의 사치'로, 운동하는 아이를 성적표 한 장으로 재단하는 시선이 그대로라면 어떤 법도 반쪽에 그친다. 그리고 그 낙인은 아이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골프는 취미가 아니라 생업이자 꿈이다. 필드에 선 프로와 그 꿈을 좇는 지망생, 그리고 오늘도 땀 흘리는 주니어 선수에게, 자신이 몸담은 세계를 단지 사치 산업의 일부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반갑지만은 않다. 결국 골프를, 그리고 그 곁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골프는 여전히 귀족 스포츠인가, 우리 아이들은 성장의 골프를 하고 있는가, 그래서 무엇을 바꿀 것인가. 정답을 누군가 대신 정해 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낡은 판을 그대로 둔 채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침 스포츠계 곳곳이 오래된 시스템을 다시 묻는 지금이다. 골프도 예외일 수 없다. 이제는 듣기를 넘어, 판을 다시 짤 차례다.
이준호 스윙다인 아카데미 대표/KPGA PRO(Class A)
※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참고: 대중형 골프장 요금·세제 기준과 기준요금 초과·세금감면 규모 관련 자료·보도(문화체육관광부 등, 2026), 공공(시립) 골프장 및 한·일·스코틀랜드 등 해외 퍼블릭 골프 운영·접근성 사례, 학생선수 최저학력제 개정·유예 및 개선 논의(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선수 이중경력(dual career)과 선진국 학교·클럽 스포츠 기반 육성·생활체육 자료(국제올림픽위원회·일본·독일·미국 First Tee 등), 폭염 등 기후변화가 대회 운영에 미치는 영향 및 악천후 라운드 축소 사례·규정(KPGA·KLPGA, 2025~2026), 한국 선수의 국제 무대 성과 및 KLPGA 투어 규모 관련 보도(2026).
심재희 기자 kkamano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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