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화재 후 메자닌 전수조사·규제 나선 정부
메자닌은 아마존·UPS도 쓰는 글로벌 표준 구조
전문가 “준공 후 임의 개조·소방점검 부재 문제”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지난 7월 인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이후 대형 화제가 반복되면서 메자닌 구조 안전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구조물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정부도 전수조사와 안전 기준 정비에 나섰다.
메자닌은 층고가 높은 창고 내부에 철골 구조물을 세워 복층으로 나누는 설계 방식이다. 별도 증축 없이 보관·작업 공간을 2~3배로 늘릴 수 있어 이커머스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 글로벌 표준 구조…섣부른 규제는 물류 대란 부른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물류시설 화재안전 제도개선 TF’를 가동하고 적층식 랙과 메자닌 등 물류시설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정부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메자닌 설치 관련 신고 의무화 등 법적 규제 장치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메자닌 구조를 직접적인 화재 원인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지만, 좁은 공간에 물품을 빽빽하게 적재하는 특성상 ‘중층 적재 구조’를 초기 진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학계와 소방 전문가들은 “화재의 본질은 구조물 형태가 아니라 실제 적재 환경과 소방 설비 관리”라며 “구조 자체를 틀어막기보다 완공 후 이뤄지는 무분별한 개조와 소방점검 공백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메자닌 구조는 쿠팡뿐만 아니라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등 국내 주요 기업은 물론 미국 아마존, UPS 등 전 세계 물류 기업들이 표준으로 채택해 사용 중이다. 정부의 스마트물류센터 인증을 받은 시설에서도 대거 도입 활용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인더스트리 리서치 등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약 42만개, 미국에만 18만개의 메자닌 물류센터가 운용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메자닌은 공간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현장에서 쓰이는 표준 설계 방식”이라며 “화재 원인을 ‘안방이 커서 불이 났다’는 식으로 구조 자체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런 산업 스탠더드를 일률적으로 규제하면 국내 기업의 물류 비용만 급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기업이 리스크를 책임지도록 화재보험을 강화하는 등 사후 대응 인프라를 정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메자닌 구조물 대부분이 불연 등급 이상의 강재로 제작돼 화재를 키우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한다.
안영효 인천대 글로벌트레이드앤서비스학부 교수는 “메자닌 구조를 화재 원인으로 연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하이랙(고층 적재 방식)과 비교하면 메자닌은 층이 구분돼 화염의 수직 확산이 일정 부분 억제되는 특성도 있다”고 했다.
◇ 빈 창고로 준공 검사…실제 운영 들어차면 ‘깜깜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진짜 화재 취약점은 건축 준공 시점과 실제 운영 환경 사이에 놓인 제도적 허점이다.
대형 물류센터는 개발사업자가 건물을 먼저 지은 뒤 물류기업이 임차해 들어가는 구조가 많다. 이 때문에 건축·소방 심사가 이뤄지는 준공 단계에서는 추후 어떤 물품이 얼마나 높고 촘촘하게 적재될지 파악하기 어렵다. 임차 기업이 입주해 메자닌을 세우고 물품을 고밀도로 쌓으면 건물 내부의 화재하중과 피난 여건이 크게 달라지지만, 이를 사후에 점검하는 체계는 미흡한 실정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재는 준공 전 소방점검을 받은 뒤 메자닌을 추가 설치하더라도 재점검을 받지 않는 제도적 공백이 존재한다”며 “메자닌 배치 후 반드시 추가 소방점검을 받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미국·유럽은 적재 위험도 따라 소방설비 차등 적용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메자닌 구조 자체를 금지하는 대신, 보관 물품의 위험 등급과 적재 높이, 랙 밀도에 맞춰 소방설비를 차등 설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고천장·고적재 조건에서는 랙 내부에 소화수를 직접 주입하는 ‘인랙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해, 구조물이 아니라 ‘적재 위험’ 자체를 관리하는 접근이다.
실제 미국방화협회(NFPA)의 스프링클러 설비기준(NFPA 13)은 적재물과 팔레트(받침대)의 화재 위험도를 세분화해 규정한다. 적재물을 불연성, 목재·종이 등 가연성, 일반 플라스틱, 발포 플라스틱 등 7~8개 등급으로 나누고, 팔레트 소재(목재·플라스틱 등)에 따라서도 위험성 평가를 달리한다.
이를 토대로 랙 내 스프링클러 배치 간격도 정교하게 적용된다. 비교적 위험성이 낮은 적재물에는 가로 2.4m 간격으로 설치하지만, 불이 잘 붙는 플라스틱 화물에는 1.5m 간격으로 촘촘하게 설치하도록 규정하며, 불길을 초기에 잡는 ‘신속반응형’ 헤드 사용을 최우선으로 요구한다.
반면 한국은 미국 기준을 참고해 2024년 창고시설 화재안전기술기준(NFTC 609)을 제정했지만, 적재물의 위험성을 세부적으로 분류하지 않은 채 스프링클러를 높이 3m마다 설치하도록 일괄 규정하는 데 그쳐 현장 적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2021년 덕평 쿠팡 화재 이후 소방청이 방수량과 수원을 상향하는 등 화재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했지만, 법 개정 이전인 2020년 준공된 기존 물류센터는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아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 메자닌 효율성 살리되, 방재 시스템 고도화 관건
국내 약 6000여개 물류센터 가운데 메자닌이 얼마나 설치돼 있는지 정부의 정확한 기초 통계조차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물류시설 등록 시 메자닌 여부가 필수 기재 사항이 아닌 탓이다.
전문가들은 신축 물류센터뿐 아니라 기존 시설까지 적재 환경과 소방설비가 적정한지, 화재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 소방방재업계 관계자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보여주기식으로 구조물 해체나 신규 법안 제정만 외치면 사고는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며 “메자닌의 효율성은 유지하면서 화재 예방과 초동 대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법정 기준을 강화하고 현실적인 방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메자닌을 포함한 물류센터의 적재 환경과 방재 시스템을 중심으로 집중 점검에 나서고 있다.
조덕진 행정안전부 사회재난실장은 지난달 26일 쿠팡 대구 풀필먼트센터 실태 점검에서 “대형 물류시설은 다양한 물품과 설비가 집적돼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안전관리 체계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방금숙 기자 mintb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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