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사진의 얼굴>은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구와바라 시세이 작가의 모습으로 시작해, 그가 일하러 나간 뒤 비어 있는 침대를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이러한 시작과 끝은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는 미국 현대미술가 척 클로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위대한 저널리즘의 출발점은 거창한 예술적 영감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일어나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노동의 반복에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희영 감독이 담아낸 구와바라 시세이의 여정은 한 포토 저널리스트의 삶을 따라가며 한국 현대사를 다시 조망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열렸던 고려대학교를 시작으로 청계천, 현충원, 동두천, 문경을 거쳐 북한의 풍경으로 이어지고, 2024년 탄핵 찬반 집회 현장을 담은 뒤 다시 도쿄의 자택으로 돌아오는 흐름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다. 이는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한 사진기자가 렌즈에 새겨 넣은, 격동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뜨거운 오디세이다.
구와바라는 1960년 일본의 미나마타병 비극을 시작으로 베트남전쟁과 한반도의 격동기까지 수십 년간 역사의 현장을 지켰다. 찰나의 사건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이 역사가 되어가는 시간의 궤적을 기록해온 그의 작업은 보도사진가가 단순한 ‘뉴스 기록자’를 넘어 ‘시대의 증언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그는 외국인이라는 일정한 거리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서도 역사의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마주했다. 구와바라는 관찰자로서의 거리와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감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며 역사를 기록해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뜨겁게 가슴을 울리는 단어는 단연 ‘오열(嗚咽)’이다. 구와바라는 극 중에서 두 차례 ‘오열’을 언급한다. 현충원의 비석들 앞에서 “땅속으로부터의 무수한 오열들이 카메라를 손에 쥔 살아 있는 인간의 발밑을 흔들었다”고 말할 때, 그리고 동두천에서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된 이들의 오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고백할 때 그의 목소리는 떨린다.
피와 눈물, 민주화와 역동적 변화가 교차했던 한국 현대사에서 구와바라 시세이가 포착한 핵심은 바로 이 ‘오열’이었다. 목메어 우는 소리는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민초들의 숨은 고통이자 시대를 견뎌낸 이들의 거친 숨소리다. 이방인의 렌즈에 담긴 한국 현대사가 차가운 기록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까지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렌즈 너머의 고통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발밑에서 느끼는 공감의 저널리스트였다.
<사진의 얼굴>은 그렇게 묵묵히 일어나 현장으로 향했던 한 거장의 삶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가 남긴 사진을 통해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 역사 속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의 무게를 되새긴다. 그에게 사진을 찍는 행위는 역사를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역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디며 기록하는 일이었다. 결국 <사진의 얼굴>은 역사의 파고 한가운데서 묵묵히 셔터를 눌러온 구와바라 시세이의 삶에 고희영 감독이 바치는 애틋한 헌사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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