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 중 2년은 여름철 환자가 겨울 앞질러…60대 이상 85%
한쪽 마비·발음장애 동반되면 ‘FAST’ 기억하고 즉시 119 신고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무더운 날 야외에서 활동하다 갑자기 어지럽거나 몸에 힘이 빠지면 흔히 ‘더위를 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늘에서 쉬거나 물을 마시면 괜찮아질 것이라 여기기 쉽지만,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얼굴이 비대칭으로 처지거나 발음이 어눌해졌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의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뇌경색은 추운 겨울철에 주로 발생하는 질환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에도 안심할 수 없다. 땀을 많이 흘려 체내 수분이 부족해지면 혈액이 농축되고 혈전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더위로 말초혈관이 확장되면서 혈압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이미 뇌혈관이 좁아진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갈증과 체온 변화에 둔감한 고령자나 고혈압·당뇨병·이상지질혈증 등 뇌혈관질환 위험요인을 가진 사람은 여름철 탈수와 혈압 변화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다만 뇌경색은 탈수만으로 발생하는 질환은 아니다. 죽상경화증과 심방세동, 소혈관질환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 여름 환자가 겨울보다 많기도…계절 가리지 않는 뇌경색
실제 국내 뇌경색 진료인원은 여름철에도 겨울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 통계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허혈성 뇌졸중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여름철인 6~8월에도 매달 15만명을 웃돌았다.
월별 진료인원을 단순 합산하면 2023년 여름철 진료인원은 50만764명으로, 같은 해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겨울철 진료인원 47만9902명보다 2만862명 많았다. 지난해에도 여름철 진료인원이 48만7750명으로 겨울철의 48만5743명을 약 0.4% 앞섰다. 최근 3개년 가운데 2개년은 여름철 진료인원이 겨울철보다 많았던 셈이다.
연령별로 보면 위험은 고령층에 집중됐다. 3개년 누적 진료인원을 기준으로 60대 이상이 전체의 85.2%를 차지했다. 70대가 30.5%로 가장 많았고, 80대 이상 29.6%, 60대 25.2% 순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갈증을 느끼는 기능과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 탈수에 취약해진다. 여기에 이뇨제 등 복용 약물과 만성질환의 영향이 더해지면 여름철 혈관 건강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 어지럼증과 함께 말 꼬이고 휘청거린다면
단순히 어지럽다는 이유만으로 뇌경색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온열질환이나 탈수, 귀의 전정기관 이상으로도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지럼증과 함께 나타나는 증상이다.
윤원기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뇌혈관센터장(신경외과 교수)은 “단순 어지럼증은 온열질환·탈수·말초성 전정질환에서도 흔해 그것만으로 뇌경색을 강하게 의심하기는 어렵다”며 “갑작스러운 어지럼증과 함께 보행 불안, 복시, 발음장애, 한쪽 마비·감각저하가 동반되면 후순환 뇌졸중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경색 의심 증상은 ‘FAST 법칙’으로 기억하면 쉽다.
‘F(Face)’는 얼굴 마비다. 웃을 때 한쪽 입꼬리가 처지거나 얼굴 양쪽이 비대칭으로 보이는 경우다. ‘A(Arms)’는 팔 마비로, 양팔을 들어 올렸을 때 한쪽 팔이 내려가거나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S(Speech)’는 언어장애다. 발음이 갑자기 어눌해지거나 평소처럼 문장을 말하지 못한다면 의심해야 한다. 마지막 ‘T(Time)’는 시간이다. 이런 증상이 하나라도 나타나면 지체하지 말고 119에 신고해 응급실로 가야 한다.
증상이 몇 분 또는 몇 시간 만에 사라졌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일시적으로 뇌혈류가 감소했다가 회복되는 ‘일과성 허혈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니 뇌졸중’으로 불리지만 위험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일과성 허혈발작 이후 발생하는 뇌졸중 가운데 상당수가 첫 이틀 안에 나타나는 만큼, 증상이 사라졌더라도 급성 뇌경색에 준해 신속하게 진료받아야 한다.
◇ 최대 24시간 치료 가능해도…빠를수록 예후 좋아
뇌경색 치료의 핵심은 막힌 혈관을 최대한 빨리 다시 뚫는 것이다. 증상 발생 후 골든타임 안에 병원에 도착하면 정맥으로 혈전용해제를 투여해 혈전을 녹이거나, 미세도관을 뇌혈관 안으로 넣어 혈전을 직접 제거하는 혈전제거술을 시행할 수 있다.
혈전제거술은 뇌혈관 영상검사 결과에 따라 일부 환자에서 발병 후 최대 24시간까지 고려할 수 있다. 그렇다고 치료를 미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증상 발생 시각과 막힌 혈관의 위치, 뇌 조직 상태, 출혈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치료 여부를 결정하며, 같은 치료를 받더라도 시작이 빠를수록 예후가 좋다.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일단 최대한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예방을 위해서는 야외 활동 전후로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고, 갈증이 심해지기 전에 물을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다만 심부전이나 만성 신부전 등으로 수분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환자는 임의로 물 섭취량을 늘리지 말고 담당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윤 센터장은 “여름철 야외 활동 시에는 갈증을 느끼기 전에 미지근한 물을 자주 마셔 혈액 농축을 막아야 한다”며 “심부전이나 만성 신부전 등으로 수분 섭취 제한이 필요한 환자는 반드시 담당 주치의와 상의해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으로 약물을 복용 중인 환자는 여름 휴가나 외부 활동 중에도 복용을 거르지 않는 것이 뇌경색 예방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호빈 기자 hblee@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