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70~80% 안압 정상…안압 검사만으로 발견 어려워
한번 손상된 시신경 회복 어려워…40세부터 정기검진 必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건강검진 결과표에서 안압이 ‘정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녹내장 걱정도 내려놓기 쉽다. 눈에 별다른 통증이 없고 잘 보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국내 녹내장 환자 대부분은 안압이 정상 범위에 있는 ‘정상안압녹내장’에 해당한다. 안압 수치만 믿고 안심했다가는 소리 없이 진행되는 시신경 손상을 놓칠 수 있다는 의미다.
15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녹내장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21년 108만29명에서 2025년 127만94명으로 4년 새 약 17.6% 증가했다.
녹내장은 눈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시신경이 손상되면서 시야가 점차 좁아지는 질환이다. 문제는 원발개방각녹내장과 정상안압녹내장 등 대부분의 만성 녹내장이 초기에는 뚜렷한 자각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압은 눈 속에서 만들어지는 액체인 ‘방수’의 생성과 배출 균형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안압이 높을수록 녹내장의 발생과 진행 위험이 커지지만, 안압이 높다고 해서 모두 녹내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안압이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시신경 손상과 시야 결손이 나타날 수 있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국내 녹내장 환자의 약 70~80%는 정상안압녹내장에 해당한다. 안압이 통상적인 정상 범위에 머물러 있는데도 녹내장성 시신경 손상과 시야 결손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상안압녹내장의 발생과 진행에는 시신경으로 향하는 혈류 이상과 유전적 소인, 고도근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건강검진에서 안압이 정상으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녹내장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박지혜 고려대 안산병원 안과 교수는 “양쪽 눈이 서로의 시야결손을 보완하기 때문에 한쪽 눈이나 일부 시야가 손상돼도 환자가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렵다”며 “건강검진에서 안압이 정상으로 측정됐다는 이유만으로 녹내장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녹내장으로 인한 시야 손상은 중심부보다 주변부에서 먼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중심 시력은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되고, 한쪽 눈의 시야가 손상돼도 반대쪽 눈이 이를 보완한다. 일상생활에서 뚜렷한 불편을 느꼈을 때는 이미 질환이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는 이유다.
질환이 진행되면 계단이나 문턱을 헛디디거나 옆에서 다가오는 사람과 물체를 뒤늦게 발견할 수 있다. 운전할 때 옆 차선의 차량이나 보행자를 인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말기에는 주변 시야가 크게 사라지고 중심부만 보이는 이른바 ‘터널 시야’가 나타날 수 있다. 한번 손상된 시신경은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만성 녹내장은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하지만, 갑작스럽게 증상이 나타나는 유형도 있다.
급성 폐쇄각녹내장은 방수가 빠져나가는 통로인 전방각이 갑자기 좁아지면서 안압이 급격히 상승하는 질환이다. 심한 눈 통증과 충혈, 시야 흐림, 시력 저하가 나타날 수 있으며 두통과 메스꺼움, 구토가 동반되기도 한다.
눈 증상과 함께 머리나 소화기 증상이 나타나다 보니 신경계질환이나 소화기질환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급성 폐쇄각녹내장은 신속한 치료가 필요한 안과적 응급질환이다. 갑작스러운 눈 통증과 시력 저하, 두통, 구토가 함께 나타나면 지체하지 말고 안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
녹내장 치료의 목적은 이미 손상된 시신경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안압을 낮춰 추가적인 시신경 손상을 막고 질환의 진행 속도를 늦춰 남아 있는 시야를 지키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치료에는 안압을 낮추는 안약을 우선 사용한다. 녹내장의 종류와 진행 정도, 안압 조절 상태에 따라 레이저 치료나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특별한 불편이 없거나 안압이 정상으로 측정되더라도 처방받은 안약을 환자 임의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
박 교수는 “녹내장은 조기에 발견해 적절히 치료하면 시신경 손상과 시야 결손의 진행을 늦추고 남아 있는 시야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40세 이상이거나 안압이 높은 경우, 녹내장 가족력, 고도근시, 당뇨병 등의 위험 요인이 있다면 증상이 없어도 정기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호빈 기자 hble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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