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스페이스X의 CEO 일론 머스크가 세계 최초로 ‘조만장자(Trillionaire)’ 반열에 올랐다. 지난 12일 스페이스X의 주가가 나스닥 시장에서 주당 150달러를 기록하면서 머스크의 총자산 규모는 1조 500억 달러(한화 약 1594조 원)에 달하게 되었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꺼내 들었다. 머스크는 미국 텍사스주 스페이스X 본사 스타베이스에서 "스페이스X가 여러분을 달과 화성, 궁극적으로는 그 너머까지 데려다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스페이스X의 목표는 SF에서 허구를 빼고, 모두에게 짜릿하고 영감을 주는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누구나 자유롭게 우주를 횡단하는 그의 SF적 꿈이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머스크는 SF를 통해 미래를 꿈꿨다.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그는 왜소한 체격 탓에 학교에서 심각한 따돌림을 당했다. 패거리들은 머스크의 머리를 뒤에서 걷어찼고, 머스크는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들은 의식을 잃을 때까지 그의 얼굴과 몸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동네 불량배들과 학교 일진들에게 '인간 사냥(Human hunt)'을 당하듯 숲과 거리에서 쫓겨 다녔고, 잡힐 때마다 구타가 이어졌다. 머스크는 한 인터뷰에서 "학교 패거리들이 나를 잡으려고 사방에서 쫓아왔고, 집으로 돌아가도 가정환경이 불행했기 때문에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멈추지 않는 지옥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의 유일한 탈출구는 책이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특히 SF 소설에 깊이 심취했다. 그가 가장 좋아한 책 중 하나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었다. 1967년 휴고상 최우수 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달 식민지가 지구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을 그린 정치 SF 소설이다. 하인라인은 달을 단순히 지구의 종속물이 아닌, 자립적인 인간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묘사했다. 머스크는 인류를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는데, 바로 이 소설에서 그 사상적 뿌리를 얻었다. '지구만이 인류의 유일한 거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행성에 자립 가능한 문명을 만들어야 한다, 우주 개척은 생존 전략이다' 등 머스크 비전의 핵심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작품 속 달 식민지 주민들은 스스로를 조직해 혁명을 일으키는데, 중심 인물인 버나도 드 라 파스 교수는 자신을 '합리적 아나키스트'라 부르며 강력한 국가 권력보다 자율적인 개인과 공동체를 강조한다. 이는 관료주의에 대한 불신, 기존 산업 구조를 깨려는 시도, 그리고 기술 기업가가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머스크의 행보와 궤를 같이한다. 머스크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마이크'에도 매료됐다. 마이크는 스스로 학습하고, 농담을 이해하며, 인간과 유대를 맺고 정치적 행위자로까지 성장하는 존재다.
이 설정은 오늘날 머스크의 AI 행보와도 연결된다. 머스크가 설립한 xAI의 챗봇 이름 '그록(Grok)' 역시 하인라인의 또 다른 명작 <낯선 땅 이방인>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하인라인의 SF 소설은 머스크에게 화성 식민화라는 비전, 기술자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AI와 인간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제공했다. 1966년 출간 당시에는 거친 '공상'에 불과했던 달·AI·우주 식민지는 오늘날 머스크가 실제로 추진하는 거대한 기술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역시 일론 머스크의 사고방식과 우주관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작품이다. 머스크는 이 책을 단순한 오락용 SF가 아니라 “인간이 우주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 철학적 작품”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소설에서는 초거대 컴퓨터 ‘깊은 생각(Deep Thought)’이 우주의 모든 문제에 대한 궁극의 답을 계산해 내지만, 그 답은 황당하게도 ‘42’라는 숫자다. 이유는 답을 찾기 전에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질문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이 통찰을 기업 경영과 공학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예를 들면, 그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로켓을 만들까?” 대신 “왜 로켓은 그렇게 비싸야 하는가?”로 질문을 바꾸어 던졌다. “어떻게 하면 자동차를 개선할까?”라는 질문은 “자동차 산업의 기본 가정 자체가 맞는가?”라고 뒤틀어 물었다. 이러한 전복적 사고방식이 바로 스페이스X의 재사용 로켓 개발과 테슬라의 전기차 혁신으로 연결되었다. 이 책은 인간을 우주의 중심이 아닌 광대한 우주 속의 지극히 작은 존재로 묘사하는데, 머스크가 화성 이주와 다행성 문명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우주적 상상력이 자리 잡고 있다.
책 속의 가장 유명한 문구인 “Don’t Panic(당황하지 마라)” 역시 머스크가 가장 사랑하는 표현이다. 2018년 2월, 스페이스X의 대형 로켓 ‘팰컨 헤비’ 시험 발사 당시 머스크는 본인의 체리 레드 테슬라 로드스터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운전석에는 우주복을 입은 마네킹 ‘스타맨(Starman)’이 앉아 있었고, 차량 대시보드 스크린에는 “Don’t Panic”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우주로 나아가는 인류에게 던지는 그만의 유쾌한 메시지였다. 머스크는 향후 인류를 화성으로 실어 나를 거대한 우주선 ‘스타쉽(Starship)’의 첫 번째 유인선 이름을 ‘하트 오브 골드’로 짓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 역시 소설 속 주인공들이 타고 우주를 누비는, ‘무한 불가능 확률 추진기’를 탑재한 최첨단 우주선의 이름이다.
<히치하이커>가 머스크에게 우주를 바라보는 철학적 시야를 주었다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하 SF <파운데이션>은 “인류 문명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제공했다. 소설 속 천재 수학자 해리 셀던은 은하 제국의 멸망과 이에 따른 3만 년 동안의 암흑기를 예견한다. 그는 인류의 지식과 문명을 보존해 암흑기를 1천 년으로 단축하고자 은하계 끝에 지식의 방주인 '파운데이션'을 세운다. 머스크는 이 설정을 현실 세계에 그대로 투영했다. 전쟁, 기후 변화, 혹은 AI의 위협 등으로 지구 문명이 언제든 몰락할 수 있으므로, 화성에 인류 문명의 '백업(Backup)'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그의 논리는 <파운데이션>의 핵심 플롯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아시모프의 소설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문명이 순순히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명은 주기적으로 순환하며, 지금은 우리가 지구 바깥으로 생명과 문명을 확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머스크는 화성 이주가 단순히 멋진 탐험이 아니라, 인류라는 종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보험이라고 주장한다. 스페이스X를 설립하고 재사용 로켓을 개발해 우주 이동 비용을 혁신적으로 낮추려는 그의 모든 집념은 소설 속 해리 셀던이 인류의 파멸을 막기 위해 타임라인을 계산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실행해 나간 행보의 '현실판'인 셈이다. 머스크 역시 아시모프처럼 기술 발전과 인류의 미래를 극도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당장 눈앞의 분기별 이익보다 "수백 년, 수천 년 뒤의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업을 전개하는 특유의 사고방식은 아시모프가 보여준 초장기적 관점(Longtermism)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결과다. <파운데이션>은 일론 머스크에게 "문명은 영원하지 않으며, 이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지금 당장 취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심어준 마음의 나침반이다. 그가 우주로 향하는 이유는 어쩌면 현실에 자신만의 '파운데이션'을 건설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론 머스크는 이러한 SF 소설들과 더불어 J.R.R. 톨킨의 판타지 대작 <반지의 제왕>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아왔다. <파운데이션>이 미래 예측과 인류 문명 보존이라는 '이성적·시스템적' 비전을 주었다면, <반지의 제왕>은 그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업을 밀어붙이게 만든 '정서적·철학적' 사명감을 심어주었다. 그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읽은 책들, 특히 <반지의 제왕>과 <파운데이션> 시리즈에 나오는 영웅들은 항상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프로도나 아라곤 같은 평범하거나 결함 있는 인물들이 거대한 악에 맞서 세상의 파멸을 막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어린 머스크에게 강렬한 각인을 남겼다.
머스크가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은 종종 <반지의 제왕> 속 '반지 원정대'의 여정에 비유된다. 초창기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파산 직전의 위기를 수없이 겪었고, 주변 모두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며 불가능하다고 비웃었다. 마치 강력한 사우론의 군대에 맞서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가는 호빗들의 무모한 여정 같았다. 머스크는 승리 확률이 극히 낮아 보이더라도 "그것이 옳은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는 특유의 고집을 부리는데, 이는 톨킨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며 보여준 '도덕적 의무와 끈기'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머스크가 철저한 기술 만능주의자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반지의 제왕>이 가진 반(反)기술적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반지의 제왕>은 정말 멋진 책이지만, 이상하게도 톨킨은 다소 반기술적인 경향이 있다. 영웅들은 옛 방식을 고수하는 반면, 악당들은 산업화되고 기술 집약적인 전쟁 기계를 만들어낸다"라고 언급했다. 머스크는 기술 자체를 맹신하기보다, 기술이 잘못 통제되었을 때 사우론의 '절대반지'처럼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절대 권력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그가 AI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안전장치'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철학적 균형 감각이 존재한다.
어린 시절 잔혹한 왕따를 당했던 소년은 SF와 판타지 소설을 자양분 삼아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고 우주로 뻗어나가는 꿈을 키웠다. 남아공에서 괴롭힘당할 때 그 누구도 구해주지 않았던 상처를 가진 소년이 이제는 "아무도 구하지 못할 위기(멸망)에서 인류를 구하겠다"며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과거 학교 복도에서 무력하게 쫓기던 소년은 이제 인류를 이끌고 지구라는 요람을 넘어 화성(Mars)이라는 새로운 '파운데이션'을 건설하려는 우주적 개척자가 되었다. 어린 시절 그를 구원했던 소설 속 문장들은 이제 그가 우주로 쏘아 올린 스타쉽(Starship)의 거대한 불꽃이 되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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