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30원 시대] “내보내고 쌓고 또 내보내고”…금융지주 ‘자본확충·배당’ 아슬한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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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1530원 돌파 RWA 급증…BIS 비율 하락 압력 확대
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발행 잇따라…자본확충 총력전
감액배당·자사주 소각 경쟁…주주환원·건전성 균형 시험대

원달러 환율 1년 추이. 그래프는 우상향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인베스팅닷컴

[마이데일리 = 최주연 기자]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530원대를 기록하면서 금융지주들의 자본 전략도 복잡해지고 있다.

고환율로 외화자산이 불어나면서 위험가중자산(RWA)이 증가해 자본비율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지만, 금융지주들은 한편으로 감액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앞세운 주주환원 확대 경쟁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을 쌓아야 하는 상황에서 동시에 자본을 주주에게 돌려줘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금융지주들이 자본확충과 주주환원 사이에서 어느 수준의 균형을 선택할지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환율 1530원, 금융지주 자본비율 흔든다

4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30원에 개장한 뒤 장중 1530.8원까지 오르며 지난 3월 31일(1536.9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환율은 지난달 15일부터 14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유지하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1거래일 연속 기록을 넘어섰다.

이날 오전 금융당국의 구두개입성 발언 영향으로 한때 1524원선까지 내려서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반등하며 1530원 안팎에서 등락을 이어갔다. 하나은행 고시 기준 환율은 오후 1시 35분 현재 1528.60원을 기록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총자본비율은 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내용 정리=최주연 기자, AI 생성 이미지

고환율은 수입물가 상승과 기업 부담 확대뿐 아니라 금융회사 건전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은행들이 보유한 외화대출과 해외 투자자산은 환율 상승에 따라 원화 환산 규모가 커지는데, 문제는 자산 증가와 함께 RWA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총자본비율은 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값인 만큼 환율 상승으로 RWA가 증가하면 자본 규모가 동일하더라도 자본비율은 하락하게 된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BIS 총자본비율은 지난해 말 15.83%에서 올해 3월 말 15.64%로 0.19%포인트 하락했다. 금융권에서는 결산배당 영향과 함께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자산 증가가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여기에 기업대출 연체율 상승과 경기 둔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금융사들의 건전성 관리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 신종자본증권 발행 러시…자본 방어 나선 금융권

금융권이 최근 잇따라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한은행은 10년 만기 후순위채 2000억원 발행을 추진하고 있으며 수요에 따라 최대 2500억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남은행은 1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선다.

하나금융지주는 최근 35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으며 농협금융지주도 최대 4000억원 규모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KB금융지주 역시 하반기 발행 가능성이 거론된다.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돼 BIS 비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과거에는 성장 재원 확보 목적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고환율과 경기 둔화 가능성에 대비한 선제적 자본 방어 성격이 강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위험가중자산이 늘고 대손비용 부담도 확대될 수 있어 금융회사들이 자본 여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 채권은 보통주자본(CET1)으로 인정되지 않아 최근 시장이 주목하는 CET1 비율 개선에는 직접적인 효과가 없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고환율과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조정 등에 따른 RWA 증가 압력이 자본비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주주환원 여력을 제약할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CET1 비율이 낮은 금융지주의 경우 RWA 증가세가 커질 경우 주주환원과 자본비율 목표 달성을 위해 추가 이익 창출이 필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분기 콘콜로 본 4대 금융 환율 상승 영향 /내용 정리=최주연 기자, AI 생성 이미지

실제 주요 금융지주들은 지난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환율 상승이 CET1 비율을 직접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KB금융은 환율 영향으로 CET1 비율이 약 19bp 하락했다고 밝혔으며, 하나금융 역시 1분기 환율 상승으로 CET1 비율이 약 25bp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 그런데 배당은 더 늘린다

흥미로운 점은 금융지주들이 자본을 쌓는 동시에 주주환원 경쟁도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KB·신한·하나·우리금융은 모두 자본준비금 감액을 통한 배당 체계를 도입했다.

감액배당은 자본준비금을 활용해 배당 재원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배당소득세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주주 친화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구조적으로는 금융회사 내부 자본을 외부로 이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자본비율에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감액배당 등을 통해 확보된 배당 가능 재원은 신한금융 약 9조9000억원, KB금융 약 7조5000억원, 하나금융 약 7조4000억원, 우리금융 약 6조3000억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우리금융은 배당성향을 35% 수준까지 끌어올렸고, 주요 금융지주들도 자사주 매입·소각과 연계한 주주환원 확대 방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결국 금융지주들은 자본을 쌓기 위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면서도 확보한 이익과 자본 일부를 다시 주주에게 돌려주는 상반된 전략을 동시에 펼치고 있는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최근의 주주환원 경쟁이 단순한 배당 확대를 넘어 CET1 비율과 RWA 관리 역량을 겨루는 '자본관리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주주환원 시대의 역설…결국 관건은 균형

현재까지는 자본 여력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다. 4대 금융지주의 총자본비율은 대부분 15~16% 수준으로 규제 기준인 11.5%를 크게 웃돌고 있으며 보통주자본(CET1) 비율 역시 1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환율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외화자산 증가에 따른 RWA 확대가 지속될 수 있다. 여기에 생산적 금융 확대 과정에서 중소기업 부실 위험이 커지거나 경기 둔화로 충당금 적립 부담이 늘어날 경우 자본비율 하락 압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반면 시장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요구하고 있어 금융지주들은 고환율이 밀어 올리는 RWA와 주주환원이 끌어내리는 자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금융지주들의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핵심 지표가 단순 순이익에서 CET1 비율과 주주환원율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고환율은 더 이상 외환시장의 변수가 아니라 금융지주 자본정책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이익창출 확대가 뒷받침되지 않은 무리한 주주환원 확대는 그룹 전반의 펀더멘털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제는 단순한 규모 경쟁이 아닌 자본력, 재무안정성, 계열자금관리와의 균형에 집중할 때"라고 진단했다.

지금은 충분한 자본 여력으로 배당 확대와 건전성 관리가 동시에 가능하지만, 환율 상승과 경기 둔화가 장기화될 경우 금융지주들은 더 많은 자본을 쌓을 것인지, 더 많은 자본을 주주에게 돌려줄 것인지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될 수 있다. 환율 1530원 시대를 맞아 금융지주들의 경쟁 역시 단순한 배당 확대 경쟁에서 벗어나 RWA 증가를 관리하면서도 주주환원 정책을 지속할 수 있는 자본관리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주연 기자 prot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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