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부실채권 감소에도 NPL 5년 만에 최고치 기록
중소기업·개인사업자 부실 확대…신용대출 11년 만에 최고
[마이데일리 = 최주연 기자] 국내 은행권의 부실채권(NPL) 비율이 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통상 부실채권비율 상승은 경기 둔화나 차주의 상환 능력 악화를 의미하는 신호로 해석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소 다르다. 새롭게 발생한 부실 규모는 줄어든 반면 상·매각 감소 등으로 부실채권 정리 속도가 둔화되면서 정작 장부에 남아 있는 부실채권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은 0.60%로 지난해 말보다 0.03%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2021년 3월 말(0.6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부실채권 규모 역시 지난해 말 16조6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17조7000억원으로 1조1000억원 증가했다.
겉으로만 보면 은행권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부 지표를 들여다보면 이번 부실채권비율 상승은 신규 부실 확대보다 부실채권 정리 속도 둔화의 영향이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 신규 부실 줄었는데 NPL 상승…건전성 지표의 역설
실제 올해 1분기 중 새롭게 발생한 부실채권 규모는 5조5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4000억원 감소했다. 기업여신 신규 부실은 4조1000억원으로 3000억원 줄었고, 가계여신 신규 부실도 1조3000억원으로 1000억원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부실채권 정리 규모는 4조4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1조3000억원 줄었다. 상·매각 규모 감소와 함께 부실채권 회수 및 정상화 규모도 줄어들면서 장부에 남아 있는 부실채권이 증가했다.
결국 이번 부실채권비율 상승은 차주들의 부실이 갑작스럽게 늘어났다기보다 부실채권 잔액이 누적된 결과에 가깝다. 신규 부실 발생 규모는 감소했지만 여전히 분기 기준 5조원대 중반의 부실이 새롭게 발생하는 데다 정리 규모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전체 부실채권 규모는 오히려 커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던 부실채권비율이 올해 들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도 이러한 구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이번 통계의 핵심은 신규 부실 증가보다 부실채권 정리 속도가 더뎌졌다는 데 있다.
◇ 반도체 훈풍 밖 중소기업…신용대출도 11년 만에 최고
부실채권 세부 구성에서는 최근 한국 경제의 온도 차도 드러났다. 기업여신 부실채권비율은 0.74%로 전 분기 말보다 0.04%포인트 상승했다. 대기업여신은 0.50%로 0.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지만 중소기업여신은 0.85%로 0.02%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중소법인 부실채권비율은 1.03%, 개인사업자는 0.66%로 각각 0.03%포인트, 0.09%포인트 높아졌다. 중소법인 부실채권비율이 1%를 넘어선 것은 그만큼 중소기업 부문의 건전성 압력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회복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은행 건전성 지표에서는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부문의 부담이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다. 수출 대기업과 내수 중소기업 간 체감경기 격차가 금융권 건전성 지표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가계 부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가계여신 부실채권비율은 0.32%로 전 분기 말보다 0.01%포인트 상승했다. 주택담보대출 부실채권비율은 0.22%로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지만 기타 신용대출은 0.66%로 상승했다.
특히 기타 신용대출 부실채권비율은 2015년 3월 말(0.7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신용대출은 경기와 소득 여건 변화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반영되는 영역이다. 금융권에서는 가계 건전성 부담이 주택담보대출보다 신용대출 부문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은행권의 손실흡수능력이 급격히 약화된 단계는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3월 말 기준 대손충당금 잔액은 26조7000억원으로 전 분기 말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부실채권 증가 영향으로 대손충당금적립률은 160.3%에서 150.4%로 9.9%포인트 하락했다. 현재로서는 충분한 완충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향후 연체율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추가 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번 통계는 은행권 건전성이 단순히 악화되고 있다기보다 부실의 양상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규 부실은 줄었지만 부실채권 정리는 더뎌지고 있고, 중소기업과 신용대출 부문에서는 부담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부실채권 정리 속도와 내수 경기 회복 여부가 은행권 건전성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최주연 기자 prot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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