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 줄고 자기부담률 올라…보험료 낮춰도 구세대 전환 난항
실손 적자 매년 2조원 육박…“보험사 적극 판매 나서기 어려워”
[마이데일리 = 정수미 기자] 5세대 실손의료보험이 이달 초 출시됐지만 보험업계와 법인보험대리점(GA) 현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보험료는 낮아졌지만 비급여 보장이 줄고 자기부담률이 높아 기존 1·2세대 가입자를 설득하기 쉽지 않은 데다, 실손보험의 만성 적자와 역선택 우려가 여전해 적극적인 판매로 이어지지 못하는 분위기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은 지난 6일부터 5세대 실손보험 판매를 시작했다.
5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의료비를 중증과 비중증으로 나누고, 비중증 비급여 보장을 대폭 축소한 것이 핵심이다.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 등 과잉진료 논란이 컸던 일부 비급여 항목은 보장 범위가 줄거나 제외됐다. 비중증 비급여 치료 보장 한도도 기존 5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아졌다.
대신 보험료는 낮아졌다. 5세대 실손보험은 4세대 실손보다 약 30% 저렴하고, 1·2세대 실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오는 11월부터 기존 1~4세대 실손 가입자가 5세대로 전환할 경우 3년간 보험료를 50% 할인하는 계약전환 할인 제도도 시행할 예정이다. 기존 1·2세대 실손을 유지하되 도수치료·체외충격파·MRI·MRA 등 일부 비급여 보장을 제외하고 보험료를 낮추는 선택형 할인특약도 함께 도입된다.
◇보험료 낮췄지만 보장도 축소…전환 유인 제한적
보험료 인하에도 기존 가입자의 전환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세대 실손은 보험료가 비싸지만 자기부담금이 적고 보장 범위가 넓다. 초기 실손 가입자의 경우 자기부담금이 5000원에서 1만원 수준에 그치거나 사실상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반면 5세대 실손은 자기부담률이 중증은 최대 30%, 비중증은 50%까지 높아진다. 입원·통원 보장 한도도 중증은 연간 5000만원, 비중증은 연간 1000만원으로 제한된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보험료가 낮아졌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실손을 포기하기 어렵다. 보험료가 크게 오른 가입자나 병원 이용이 거의 없는 가입자는 전환을 검토할 수 있지만, 병원 이용이 잦거나 향후 노후 의료비 보장을 기대하는 가입자일수록 기존 1·2세대 실손을 유지하려는 유인이 크다.
높은 보험료를 감수하고도 구세대 실손을 유지해 온 이유가 넓은 보장에 있는 만큼, 보장을 줄이는 전환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손 적자 여전…보험사도 적극 판매 신중
보험사들도 적극적인 판매 확대에는 신중하다. 실손보험은 국민 약 40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지만, 보험업계에서는 대표적인 적자 상품으로 꼽힌다.
실손보험 적자 규모는 2022년 1조5301억원, 2023년 1조9747억원, 2024년 1조622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1조87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등 매년 2조원에 가까운 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세대 상품도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1세대 실손 위험손해율은 113.2%, 2세대는 112.6%였다. 3세대는 138.8%, 4세대는 147.9%로 오히려 후속 세대의 손해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보장을 줄이고 자기부담률을 높였음에도 손해율이 잡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5세대 실손 역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상품이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사들이 우려하는 것은 역선택이다. 병원 이용이 적은 우량 가입자는 보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5세대로 이동할 수 있지만, 도수치료나 체외충격파 등 비급여 치료 이용이 많은 가입자는 기존 1·2세대 실손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구세대 실손의 손해율은 더 악화할 수 있고, 5세대 실손도 낮은 보험료 구조 탓에 보험금 청구가 늘면 손해율이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GA 판매도 제한적…낮은 수수료에 인수 장벽까지
GA 채널에서 5세대 실손 판매가 제한적인 것도 보험사들의 수익성 부담과 맞닿아 있다. 삼성생명은 5세대 실손보험을 GA 채널에서 판매하지 않고 전속 설계사 중심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농협생명도 GA 채널에서 기존 실손 가입자의 5세대 전환 판매를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실손보험이 이미 대표적인 적자 상품인 만큼, GA 채널을 통해 단독 실손 판매를 적극적으로 늘릴 유인이 크지 않다. 보험료가 낮고 손해율 부담이 큰 상품을 외부 채널로 확대할 경우 수익성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GA 입장에서도 실손보험은 판매 유인이 크지 않은 상품으로 분류된다. 보험료 자체가 낮아 설계사에게 돌아가는 수수료가 크지 않고, 5세대 실손은 보장 구조와 자기부담률, 비급여 제한 등을 설명해야 해 상담 부담도 적지 않다.
다만 GA가 실손보험을 무조건 꺼리는 것은 아니다. 실손보험은 수수료가 크지 않더라도 고객과 접점을 만들고 이후 다른 보장성 상품 상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GA를 통한 단독 실손 판매에 대해 인수 단계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GA 설계사가 단독 실손 가입을 중개하더라도 보험사가 인수 단계에서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 현장에서는 고객에게 보험사 다이렉트 채널을 안내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5세대 실손보험의 성패는 기존 1·2세대 가입자를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금융당국은 보험료 부담 완화와 비급여 과잉진료 억제를 기대하고 있지만, 보험사와 GA 현장에서는 손해율·판매 유인 부족이라는 현실적 부담을 동시에 보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5세대 실손은 보험료 부담을 낮춘다는 장점은 있지만 기존 1·2세대 가입자 입장에서는 보장 축소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병원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 가입자는 전환을 검토할 수 있겠지만, 비급여 치료 이용이 많은 가입자까지 움직이게 하려면 단순 보험료 할인보다 더 실질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수미 기자 sumipotato@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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