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취임 후 현대차 매출 117조→186조…5년 새 외형보다 체질이 먼저 달라져
미국 공장·로봇·수소·소프트웨어까지…정의선의 현대차 ‘포스트 완성차’ 향해
10대 그룹 유일 순환출자 구조, 지배구조 개편은 과제…통상 리스크 관리 시험대
[편집자주] 한국 재계의 세대교체가 본격화하고 있다. 1970~1980년대생 총수와 전문경영인들이 그룹 전면에 서며 산업 지형도 빠르게 바뀌는 중이다. 이들은 전통 제조업의 체질 개선부터 미래 사업 발굴, 글로벌 확장, 지배구조 재편까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새 시대의 경영’을 실험하고 있다. 마이데일리는 재계의 7080 리더들을 통해 한국 기업의 다음 10년을 이끌 인물과 전략을 짚어본다.
[마이데일리 = 윤진웅·심지원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7080 재계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이다. 2020년 10월 회장 취임 이 후 그는 현대차그룹의 DNA를 완성차 제조 기업에서 ‘하이테크 모빌리티 기업’으로 빠르게 전환시켰다. 완성차는 물론 전동화, 로보틱스, 수소 에너지 등 첨단 기술을 한데 묶는 정 회장의 이같은 승부수는 현대차를 글로벌 '톱3'를 넘어 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다.
먼저 숫자부터 달라졌다. 회장 취임 뒤 첫 온전한 실적으로 볼 수 있는 2021년 현대차 매출은 117조6106억원, 영업이익은 6조6789억원이었다. 이후 2022년 매출 142조5275억원·영업이익 9조8198억원, 2023년 매출 162조6636억원·영업이익 15조1269억원, 2024년 매출 175조2312억원·영업이익 14조2396억원, 2025년 매출 186조2545억원·영업이익 11조4679억원을 기록했다. 관세와 통상 불확실성 영향으로 비록 2025년 이익은 꺾였지만, 매출은 사상 최대 행진을 이어가며 흔들림없는 펀더멘털을 입증했다. 회장 취임 후 5년 사이 현대차 매출이 약 68조원 늘어난 셈이다.
판매량도 꾸준했다. 현대차의 연간 글로벌 판매는 2021년 389만726대, 2022년 394만2925대, 2023년 421만6898대, 2025년 410만8605대로 집계됐다. 판매 대수보다 더 주목할 부분은 질적 변화다. SUV와 제네시스,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고부가가치 차종 중심으로 개선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실례로 2023년 69만5382대를 기록했던 전동화 판매 대수는 2025년 96만1812대로 늘었다. 2년만에 38.3%나 불어난 것. 정의선 체제의 현대차가 “얼마나 많이 파느냐”보다 “무엇을 팔아 얼마나 남기느냐”에 무게를 옮겼다는 뜻이다.
◇ 자동차를 넘어 기술기업으로
정의선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현대차를 완성차 제조사가 아니라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그 상징이 2025년 공개한 소프트웨어 브랜드 ‘플레오스(Pleos)’다. 현대차그룹은 플레오스를 차량 운영체제와 인포테인먼트, 클라우드 기반 이동 생태계를 묶는 브랜드로 소개했고,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를 2026년 2분기부터 적용해 2030년까지 2000만대 이상 차량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변화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2023년 현대차는 매출 162조7000억원, 영업이익 15조12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판매 증가, 제품 믹스 개선, 우호적 환율 효과가 어우러진 덕이다. 정 회장이 실적과 미래 전략을 따로 가져간 것이 아니라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과정 자체를 기술 전환과 연결해 왔다는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현대차 스스로도 최근 주주 서한에서 자신들을 자동차 제조사에서 하이테크 모빌리티 기업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를 달리는 컴퓨터로 만드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전환을 통해 제조사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과거 현대차가 엔진, 생산 효율, 품질 경쟁력을 앞세웠다면, 정의선 체제의 현대차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전동화, 연결성을 동시에 경쟁력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 미국·인도·중동…생산지도가 바뀐다
생산 지도의 대대적 수정도 정의선 체제의 또 다른 특징으로 꼽힌다. 가장 선명한 축은 미국이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조지아주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공식을 열었고, 2025년 3월 준공식을 치렀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25년 부터 2028년까지 미국 현지에 2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90억달러는 미국 내 연간 생산능력 120만대 체제 구축에 투입한다. HMGMA의 생산능력도 당초 30만대에서 50만대로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눈여겨 볼 점은 차량 생산 확대뿐 아니라 부품·물류·철강·미래산업까지 함께 묶인 투자라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정의선 체제에서 단순 판매 시장이 아니라 공급망과 기술 투자, 현지 생산의 핵심축으로 격상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대차그룹이 HMGMA 준공 당시 이를 미국 경제 성장과 제조 혁신의 기지로 규정했다는 점이 이를 증한다.
다른 한 축은 인도와 중동이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중장기 사업 계획에서 2030년까지 26개 차종 운영과 현지 투자 확대 계획을 제시했다. 중동에서는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손잡고 첫 현지 생산거점 건설에 들어갔다. 현대차와 PIF의 합작법인 HMMME는 2026년 4분기부터 연간 5만대 규모로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함께 생산할 예정이다. 미국이 대규모 양산과 공급망 재편의 축이라면, 인도와 중동은 신흥시장 주도권을 노린 전초기지다.
◇ 수소·로봇·SDV, 정의선의 다음 승부수
미래 먹거리 선점에서도 정 회장의 결단력은 돋보였다. 로봇이 그 상징이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마무리했다. 당시 거래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 기업가치는 11억달러로 평가됐다. 그룹은 인수 완료 당시부터 로봇 부품 제조, 스마트 물류, 미래 모빌리티를 잇는 로봇 밸류체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인수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 CES에서 인간 중심 AI 로보틱스 전략을 공개하며 2028년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생산공정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공장을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미래형 생산기지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정의선 체제에서 로봇은 신사업이 아니라 제조 혁신과 미래 산업 확장의 연결점이 됐다.
수소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2024년 CES와 H2 MEET에서 수소 브랜드 ‘HTWO’를 앞세워 생산·저장·운송·활용을 묶는 수소 생태계 전략을 재차 강조했다. 전기차가 승용 시장의 대세가 돼도 물류·상용차·산업 에너지까지 고려하면 수소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게 그룹의 판단이었다. 여기에 플레오스를 앞세운 SDV 전환까지 더해지며 현대차는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소프트웨어·에너지·로봇이 얽힌 산업 플랫폼 기업으로 변해갔다.
◇ 7080 리더십의 상징이 된 이유
정 회장이 7080 재계 리더십의 상징으로 먼저 거론되는 이유는 단순히 젊어서가 아니다. 취임 뒤 5년 동안 그는 현대차의 실적을 키우는 동시에 사업의 결을 완전히 바꿨다. 매출은 117조원대에서 186조원대로 확대됐고 생산기지는 미국과 인도, 중동으로 넓어졌다. 동시에 로봇과 수소, SDV를 그룹 전략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정의선 체제는 “현대차=자동차 회사”라는 익숙한 공식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했다. 미국에선 공장과 공급망을 다시 짰고, 공장 안에는 로봇을 들였다. 차량에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깔기 시작했고 수소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생태계도 구축했다. 미래차를 준비하면서도 하이브리드와 수익성, 생산 유연성을 동시에 챙기는 전략을 통해 미래와 현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정 회장만의 차별화된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남은 숙제와 불편한 논란
정 회장 취임 후 현대차가 비약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가장 큰 숙제는 2018년 이후 멈춰선 지배구조 개편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핵심 고리는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2.36%를 보유하고, 현대차가 기아 지분 35.17%를, 기아가 다시 현대모비스 지분 18.1%를 보유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구조다. 여기에 현대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고리까지 남아 있다.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의 핵심은 정 회장이 그룹 실질 정점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다. 시장에서는 기아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끊어내고, ‘정 회장 등 대주주일가→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구조를 단순화하는 방안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이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 지분 20%를 활용해 지분 스왑이나 매각을 통해 ‘실탄’을 마련하는 방안도 함께 언급된다. DS투자증권은 현대모비스를 6대4 비율로 분할한 뒤 정 회장이 기아와 현대제철이 들고 있는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데 약 4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정몽구 명예회장 보유 지분의 상속·증여까지 감안하면 총 7조~8조원 규모의 현금 수요가 필요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통상 리스크 관리 역량 역시 시험대에 올랐다. 현대차가 정 회장 취임 후 사상 최대 매출을 이어가고 있지만 수익성에는 노란불이 켜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차 영업이익은 11조4679억원으로 전년보다 19.5% 줄었다. 관세를 포함한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 영향이다. 올해 1분기에는 이 흐름이 더 뚜렷해졌다. 1분기 매출은 45조939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2조515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0.8% 감소했다. 현대차는 미국 관세 영향이 분기 실적에 직접 반영됐다고 밝혔다. 미래차 전환과 글로벌 생산 재편이 장기적으로는 정의선식 승부수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변동성과 통상 리스크를 함께 안아야 하는 구조라는 점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이밖에 정 회장 장남의 경영 수업이 본격화한 만큼 향후 차세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리스크 관리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윤진웅 기자 , 심지원 기자 woo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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