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 경쟁 대신 ‘방카’ 택한 교보생명…CSM·자본 여력은 과제
지주사 전환·AX 드라이브 본격화…장남 신중하 상무 3세 경영 시험대
[마이데일리 = 정수미 기자] 교보생명의 2026년 경영 코드는 ‘소비자 보호’와 ‘보수적 확장’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 겸 이사회 의장은 보험업 전반의 성장 둔화와 영업 경쟁 과열을 진단하며 무리한 외형 확대 대신 질적 성장과 체력 관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19일 교보생명에 따르면 신 의장은 신년사를 통해 “보험의 완전 가입부터 완전 유지, 정당한 보험금 지급까지 이어지는 금융소비자 보호야말로 생명보험 정신의 적극적인 실천”이라며 “불완전판매와 승환계약 등 불건전한 영업 행위와는 결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기조는 내부 제도와 조직 문화에도 반영되고 있다. 교보생명은 최근 ‘금융소비자보호 행동강령 제정·선포식’을 열고, 임직원의 소비자보호 실천 기준을 공식화했다.
신 의장은 보험업을 둘러싼 구조적 위기 인식을 분명히 했다. 올해 국내 보험산업에 대해 수입보험료 성장률 둔화와 함께 수익성 악화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교보생명 보험손익은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교보생명 보험손익은 4215억원으로, 전년 동기(5572억원) 대비 24% 감소했다. 업계 전반의 판매 경쟁 심화와 손해율·해지율 상승, 보험금 지급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신 의장은 특히 신년사에서 일부 보험사와 법인보험대리점(GA)이 설계사 확보 경쟁에 나서며 시장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고객 보장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우수 재무설계사(FP)를 확대해 전속 대면 채널 중심의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 GA 대신 방카…‘속도는 늦지만 덜 흔들리는’ 선택
신 의장의 문제의식은 교보생명이 선택한 영업 전략에 반영돼 있다. 업계 전반이 GA 중심의 공격적 영업에 나선 것과 달리, 교보생명은 자사 상품만 판매하는 전속 설계사와 은행 창구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방카슈랑스(금융기관 보험대리점) 중심의 채널 구조에 힘을 쏟고 있다.
여러 보험사 상품을 판매하는 GA 채널은 장기 보장성보험 판매에 유리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체제에서 핵심 수익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을 빠르게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주요 생보사들은 자회사형 GA를 설립하거나 외부 GA와의 제휴를 확대하며 경쟁에 나서고 있다.
반면 교보생명은 방카슈랑스를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전속 설계사 중심으로 영업 질서를 관리하는 전략을 택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교보생명의 방카 초회 수입보험료는 3조2960억원으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전체 대면 채널 초회보험료를 웃도는 규모다.
상품 포트폴리오 역시 방카 채널 특성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교보생명의 개인보험 일반계정 초회보험료 가운데 저축성보험 비중은 97%(3조5034억원)에 달한다. 은행 창구를 중심으로 한 방카 채널에서 연금·저축성 상품 선호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평가다.
◇ 문제는 ‘보험계약마진’…보험료는 들어오지만 이익은 쌓이지 않는다
다만 방카 중심 전략은 중장기 수익성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저축성보험은 만기 시 납입 보험료에 이자를 더해 고객에게 돌려줘야 하는 구조로, 회계상 부채로 인식된다. 반면 보장성보험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별도의 환급 의무가 없어 만기 시 환급되는 금액이 적거나 없다. 저축성보험이 보험료 유입 규모는 크지만 핵심 수익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 축적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교보생명의 보험계약마진은 대형 생보사 가운데 낮은 편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교보생명의 CSM은 6조3885억원으로, 삼성생명(14조470억원), 한화생명(9조590억원), 신한라이프(7조5258억원)와 격차를 보였다.
교보생명의 선택이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GA 중심의 공격적 영업에 나선 보험사들이 보험금·사업비 예실차 악화로 수익성 압박을 받은 것과 달리, 교보생명은 비용과 예실차(보험사가 예상한 보험금·사업비와 실제 발생한 지출의 차이)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해왔다.
지난 3분기 기준 교보생명의 사업비율은 16%대로, 업계 평균(약 21%)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사업비율은 수입보험료 대비 설계사 수수료와 마케팅비 등 사업비 지출 비중을 의미한다.
지급여력(K-ICS) 비율 역시 규제 기준을 웃돌고 있다. 다만 하락세는 빠르다. 교보생명의 K-ICS 비율은 2023년 3분기 276.6%에서 2024년 3분기 222.3%, 지난해 3분기에는 205.2%까지 낮아졌다. 외형 확장보다는 체력 관리에 초점을 맞췄지만, 금리 변동성과 회계·자본 규제 환경 변화에 따른 부담은 누적되고 있다.
◇ AI 전면에 세운 교보생명…3세 경영 지주사 전환 ‘경영 시험’
신창재 의장이 전면에 내세운 AX(인공지능 전환)는 단순한 디지털 전략을 넘어 향후 경영 구도의 윤곽을 가늠할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그룹 차원의 AX 컨트롤타워를 교보생명 장남인 신중하 상무가 맡고 있다는 점에서다.
신 상무는 최근 정기인사에서 전사 AX 지원담당 겸 그룹 경영전략담당으로 선임됐다. 신 상무는 1981년생으로,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 서울지점에서 2년여간 근무했다. 2015년부터는 교보생명 계열사인 KCA손해사정에서 보험 실무를 시작해 교보생명 디지털전환·데이터 전략 조직을 두루 섭렵했으며, 현재는 디지털 금융과 AI를 활용한 그룹 차원의 성장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교보생명이 추진 중인 지주사 전환과도 맞물려 읽힌다. 교보생명은 최근 일본 SBI홀딩스로부터 지분 20% 이상 투자에 대한 금융당국 승인을 받으며 SBI저축은행 인수와 동시에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한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 의장과 특수관계인·특수목적법인(SPC) 지분, SBI홀딩스 지분을 합하면 우호 지분은 과반을 넘는다. 지주사 전환을 위해 필요한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내부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신 상무는 현재 교보생명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다만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신 의장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을 현물출자할 경우, 지배구조 단순화와 함께 향후 지분 이전의 유연성은 커진다.
특히 올해가 지주회사 전환 시 주식 현물출자에 따른 과세를 이연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 적용의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신 상무의 AX 추진 성과가 지주사 전환 이후 경영 구도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교보생명은 2023년부터 지주사 전환 계획을 밝혔으나, 당시 2대 주주였던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분쟁으로 위기를 맞았으나 SBI홀딩스가 어피니티의 보유 지분을 인수하는 등 핵심 역할을 하면서 풋옵션 분쟁도 종결됐다.
이후 교보생명과 SBI홀딩스는 우리금융 인수 추진, 제3인터넷은행 설립 논의, 디지털 금융 협력 등 주요 사업에 파트너십을 구축했으며, 교보생명은 SBI저축은행 지분 50%+1주를 올해 10월까지 단계적으로 약 9000억원에 인수할 예정이다.
정수미 기자 sumipotato@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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