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60년 석유화학, 신재생 에너지로 노선 변경
재무 부담 속 올해 ‘솔라 허브’ 완공 주목
[편집자주] 1972년 갓 오일쇼크를 넘긴 대한민국이 ‘수출 보국’의 가치 아래 울산에 세웠던 55년 차 나프타분해시설(NCC) 공장이 거대한 고철 덩어리로 변할 처지에 놓였다. 당시 최신 공법으로 설계된 파이프라인은 녹이 슬었고, 석화 산업의 중심지에는 적막함만이 가득하다. 밤낮없이 돌아가 한국 수출의 20%를 책임지며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우리 석유화학 산업이 처한 현주소다.
중국의 공세와 글로벌 환경 규제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종말’에 가까운 구조적 침체에 직면한 석화업계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업황 반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은 대규모 인력 감축과 가동 중단 등을 통한 구조조정은 물론 고부가 전환이라는 숙제를 풀며 ‘생존 투쟁’에 돌입했다. 2026년 대한민국 석화 산업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 국내 대표 석유화학 기업인 한화솔루션이 회사의 모태였던 석유화학을 과감히 덜어내고 태양광 에너지를 핵심 무기로 삼아 ‘에너지 기업’으로의 도약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솔루션의 과거와 현재, 미래 지도를 살펴보며 석유화학 산업 전환의 시험대를 조명한다.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국내 대표 석유화학 기업으로 손꼽히는 한화솔루션이 구조적 침체 속에서 고전하고 있다. 불황의 그림자가 한화솔루션에게도 드리워진 가운데 회사는 태양광 사업을 돌파구로 삼고 총력전에 나섰다. 60년간 쌓아온 독자 기술력을 앞세워 글로벌 ‘태양광’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해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한화솔루션의 뿌리는 1965년 설립된 한국화학공업(현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이다. 1966년 국내 최초로 폴리염화비닐(PVC) 생산에 성공하며 문을 열었다. 이어 PVC, LDPE 등 기초 석유화학 제품을 앞세워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기반을 만들었다. 1980년대 한화그룹(당시 한국화약) 편입 이후에는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 범용에서 스페셜티로… EVA가 만든 체질 변화
한화솔루션은 1995년 전선용 LLDPE, 1996년 신발용 고함량 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EVA) 독자 개발로 범용 화학을 넘어 고기능 소재 영역으로 보폭을 넓혔다. 이는 한화솔루션이 글로벌 소재 시장에서 ‘카피캣’이 아닌 ‘기술 리더’로 올라선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또 향후 태양광·에너지 소재 사업으로 확장되는 기술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이후 1999년 대림산업과의 여천NCC 합작, 2015년 삼성그룹과의 석유화학 부문 빅딜을 거치며 원료부터 최종 제품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수직계열화 시스템을 완성했다.
그러나 중국발 공급 과잉과 범용 제품 수익성 악화가 장기화되자 한화솔루션은 범용 석화 비중을 과감히 축소하고 태양광과 배터리 소재 등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영역으로 빠르게 선회했다.
전환점은 2010년대였다. 당시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이었던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주도로 단행된 태양광 사업 투자는 한화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2012년 독일 큐셀 인수 등을 거치며 한화솔루션은 단순 석유화학 기업에서 글로벌 에너지·소재 전문 기업으로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2020년 통합 법인 ‘한화솔루션’ 출범은 이 같은 60년 기술 축적의 결과물이자, 새로운 성장 국면의 출발점이었다.
케미칼 부문에서 특히 주목받는 제품은 태양광 패널의 핵심 접착 소재인 EVA다. EVA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한화솔루션 태양광 밸류체인의 안정성을 떠받치는 핵심 소재로 자리 잡았다.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 세척 공정에 필수적인 가성소다 역시 국내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수익원으로 부상했다.
◇ 솔라 허브의 명암…석화 부진·이자 부담 ‘이중고’
사업을 다각화한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23년 3조2000억원을 투입해 미국 조지아주에 북미 최대 태양광 통합 생산 단지 ‘솔라 허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모듈을 생산하는 달튼 공장은 증설을 마치고 같은 해 10월 가동을 시작해 모듈을 생산하고 있다. 셀, 모듈, 웨이퍼를 생산하는 카스터빌 공장의 경우 모듈 생산은 지난 2024년 5월에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나, 나머지 셀과 웨이퍼는 올해 가동과 생산을 목표로 현재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화솔루션은 솔라 허브의 풀가동 시점을 올해로 잡았다. 완공 시 연간 8.4GW 규모의 생산 체계를 갖추게 될 전망이다.
아울러 지난해 여천 NCC 공동 주주인 DL케미칼과 석유화학 사업재편계획안 자료를 정부에 제출했다. 재편안에는 여천NCC 1공장(90만톤)·2공장(91만5000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123만톤) 가운데 하나를 추가로 폐쇄하는 방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외형 성장 이면의 재무 지표는 부담스럽다. 케미칼 부문은 2023년 4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8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1285억원에 달한다.
대규모 설비 투자와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겹치며 한화솔루션은 2024년 3분기 이미 순차입금 10조원 시대에 진입한 데 이어 지난해 3분기에는 총 차입금이 14조4000억원까지 불어났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자본 확충과 비지배지분 증가 등의 영향으로 193%에서 189%로 소폭 낮아졌지만, 절대적인 차입금 규모는 오히려 1조8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솔라 허브 완공을 앞둔 막바지 투자 자금이 집중 투입된 결과다. 수치상 부채비율은 안정된 듯 보이지만, 이자 부담을 동반한 ‘빚의 체급’은 한 단계 더 커졌다.
올해 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에너지·소재 부문은 글로벌 정책 변화와 석유화학 구조 개편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케미칼 부문이 범용 제품에 안주하지 말고, 태양광과 그린 수소 등 신사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라는 엄중한 주문이다.
◇ ‘기술 초격차’와 ‘사업 합리화’로 질적 성장 중점
이에 한화솔루션 성장 전략의 무게중심을 양적 확대에서 질적 성장으로 옮겼다.
핵심은 차세대 태양광 기술이다. 올해 페로브스카이트 기반 ‘탠덤 셀(Tandem Cell)’ 상용화의 원년으로, 중국의 저가 실리콘 패널 공세를 기술로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단순 가격 경쟁이 아닌 효율·성능 중심의 ‘기술 초격차’ 전략이다.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다이어트도 진행 중이다. 2023년 갤러리아 부문 인적분할 이후 비핵심 자산 매각과 투자 우선순위 재조정을 통해 현금 흐름 중심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전략투자법인 한화퓨처프루프(HFP) 지분 50%를 신설 법인 한화디펜스앤에너지(HDE)에 1조1407억원에 매각했다.
㈜한화가 지난 14일 인적분할을 계기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은 2025~2030년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CAGR)을 10~15%로 제시했다. 2024년 연결 기준 매출액 12조4000억원을 감안하면, 2030년 예상 매출액은 21조9000억원에서 28조7000억원에 달한다. 중간값인 25조원을 기준으로 보면 매출을 두 배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 대규모 친환경 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화솔루션은 미국 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가 태양광 모듈 수요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석유화학 시장 불황 속에서 미국 태양광 사업 확대는 자연스러운 전략”이라면서도 “다만 시장 침체로 인해 국내 고용과 투자가 해외로 이동하면서 국내 잠재성장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도 함께 안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원 기자 s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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