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선 K-석화 ③] 롯데케미칼, ‘범용의 늪’에서 환골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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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단위’ 빅딜로 영토 확장…롯데 성장세 견인
에틸렌 공급 과잉 직면…재무 건전성 ‘빨간불’
적자 탈출·포트폴리오 교체, ‘투 트랙’ 동시 전개

[편집자주] 1972년 갓 오일쇼크를 넘긴 대한민국이 ‘수출 보국’의 가치 아래 울산에 세웠던 55년 차 나프타분해시설(NCC) 공장이 거대한 고철 덩어리로 변할 처지에 놓였다. 당시 최신 공법으로 설계된 파이프라인은 녹이 슬었고, 석화 산업의 중심지에는 적막함만이 가득하다. 밤낮없이 돌아가 한국 수출의 20%를 책임지며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우리 석유화학 산업이 처한 현주소다.

중국의 공세와 글로벌 환경 규제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종말’에 가까운 구조적 침체에 직면한 석화업계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업황 반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은 대규모 인력 감축과 가동 중단 등을 통한 구조조정은 물론 고부가 전환이라는 숙제를 풀며 ‘생존 투쟁’에 돌입했다. 2026년 대한민국 석화 산업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 석유화학 산업의 대들보였던 롯데케미칼이 중국의 자급률 상승로 인한 범용 제품 역풍을 맞고 있다. 한때 롯데그룹의 ‘캐시카우’였던 롯데케미칼이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하기까지의 과정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를 짚어보며 석유화학 산업 전환의 시험대를 조명한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대한민국 석유화학의 상징이었던 롯데케미칼이 오는 3월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가장 고통스러운 ‘새 판 짜기’에 돌입했다. 롯데케미칼은 그동안 조 단위 빅딜로 ‘에틸렌 제국’이란 명성을 얻었지만 중국의 자급화라는 거센 파도 속에 ‘에너지 소재’라는 새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전신은 1976년 세워진 ‘호남석유화학’으로, 여수석유화학과 일본 미쓰이석유화학이 5대 5로 지분을 투자해 설립됐다. 이후 1979년 롯데그룹으로 편입된 후 KP케미칼 등을 인수하며 규모를 키웠고, 2012년 사명을 롯데케미칼로 변경하며 지금의 회사가 탄생했다.

◇ 공격적인 M&A로 몸집 불리기…국내 대표 석화 기업 ‘우뚝’

롯데케미칼 성장의 첫 번째 변곡점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2003년 현대석유화학(현 대산공장)을 LG화학과 공동 인수한 뒤 2단지를 독자 운영하며 기초 유분 생산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이어 2004년 KP케미칼을 인수하며 섬유 원료인 TPA와 PET 분야까지 영토를 확장, 명실상부한 국내 석유화학 ‘빅3’ 체제를 굳혔다.

2010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뚝심으로 진행된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 인수는 롯데케미칼을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신의 한 수’였다. 약 1조5000억원을 투입한 빅딜로 동남아시아 시장 거점을 확보했고, 7년 만에 기업 가치를 2.5배 이상 키우며 말레이시아 증시에 상장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롯데케미칼은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삼성SDI 케미칼 부문 등 삼성의 석유화학 부문을 일제히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약 3조원 규모를 투자한 롯데케미칼은 에틸렌 등 기초 제품에 치우쳤던 사업 구조를 ABS, PC 등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제품과 정밀화학 분야로 확장했다.

2019년 미국 루이지애나에 완공한 에탄크래커(ECC) 역시 나프타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셰일가스 기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꼽힌다.

롯데케미칼 대산 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 범용 제품의 저주, 재무적 과제 해결 ‘시급’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광폭 행보를 통해 구축한 ‘세계 7위권의 에틸렌 생산 능력’이 현재는 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중국이 자급률을 100%까지 끌어올리며 범용 제품 시장이 고사 직전에 몰렸기 때문이다. 한때 효자였던 LC타이탄은 적자의 늪에 빠졌고, 전체 매출의 약 68%를 차지하는 기초화학 부문은 글로벌 공급 과잉의 직격탄을 맞으며 롯데그룹 전체의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숙제는 재무 안정성이다. 롯데케미칼은 대규모 투자와 업황 부진이 겹치며 신용등급이 지난해 6월 ‘AA’에서 ‘AA-’로 하향 조정되는 아픔을 겪었다. 등급 하락 시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는 만큼 현재 롯데케미칼에 재무 건전성 확보는 사업 구조 개편만큼이나 급박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롯데케미칼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부채비율은 75.7%로 전년 대비 소폭(0.3%포인트) 상승했다. 실질적 재무 부담을 나타내는 순차입금 비율은 38.7%로, 전년 대비(44.8%) 6.1%포인트 하락했지만 여전히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3분기 누적 금융비용만 5600억원을 상회하며, 영업손실(5096억)보다 더 큰 이자 부담이 재무 구조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롯데케미칼은 지난 2022년 이후 올해 3분기까지 8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 상태를 지속 중이다. 지난 2024년 연결 기준 8941억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냈으며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도 5096억원을 기록했다.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LCI) 석유화학단지 전경. /롯데케미칼

◇ 지분 매각·NCC 공장 통합…규모 줄이기 ‘속도’

이에 롯데케미칼은 지난해부터 무거워진 사업 구조를 줄이며 재무 부담 완화에 나섰다.

미국 LCLA 및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LCI) 지분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했고,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 회사 LUSR를 청산하고 비핵심 사업인 파키스탄 PTA 자회사 LCPL 및 대구 수처리 분리막 사업 매각과 일본 화학기업 레조낙 지분을 처분했다. 이를 통해 약 1조7000억원의 현금 유동성을 확보했다.

아울러 지난해 말 정부 에틸렌 감축 재편안에 따라 국내 나프타분해시설(NCC) 공장에 대한 통합 및 구조조정안을 HD현대케미칼과 공동으로 제출했다. 롯데케미칼은 대산공장을 물적 분할하고, 해당 분할회사가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하는 구조로 추진 중이다. 또 롯데케미칼은 여수산단에서도 한화솔루션, DL케미칼, 여천NCC와 중복 설비를 통합·조정하는 사업재편안을 추가 제출했다.

올해 경영 환경도 녹록지 않다. 롯데케미칼은 체질 개선과 재무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영준 총괄대표의 올해 신년사에도 이같은 엄중한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 총괄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사업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현금 흐름 중시의 엄중한 경영을 지속 유지할 것”이라며 “보유한 사업들을 항시 재점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고 유망한 사업은 적극적으로 자원을 집중 투입, 확장하며 경쟁력이 열세한 사업, 차별화가 어려운 사업 등은 올해도 과감하게 합리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영준 롯데화학군 총괄대표. /롯데케미칼

◇ ‘탈(脫) 석유’와 에너지 소재로의 변신에 올인

이 총괄대표가 신년사에서 ‘사업의 상시 재점검’과 ‘과감한 합리화’를 언급한 대목은 한때 그룹의 주 수익원이었던 기초화학 부문이라도 경쟁력이 없다면 언제든 매각하거나 가동을 멈출 수 있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이는 롯데케미칼이 올해 경영 키워드로 내세운 범용 사업 정리와 맥을 같이 한다.

대신 에너지·소재사업으로의 재도약을 위해 가장 먼저 스페셜티 소재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전남 율촌에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 공장을 설립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일부라인의 상업생산을 개시한 게 이 일환이다. 현재 일부 생산이 진행 중이며, 올 하반기 전체 라인이 들어서면 연간 50만톤 규모의 국내 최대 단일 컴파운드 생산 공장으로 준공될 예정이다.

전자소재 사업에는 지난 2023년 2조7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있다. 비록 현재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인해 실적 기여도는 완만하지만, 올해부터는 인공지능(AI)용 고부가 회로박 등 차세대 소재 공급을 통해 본격적인 턴어라운드를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 익산 공장의 전지박 라인 2만톤을 모두 회로박 전용 라인으로 전환할 계획이며,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밸류체인 조기 안착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울산에서는 합작사인 ‘롯데SK에너루트’를 통해 지난해 6월부터 20MW규모의 첫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내년까지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4기를 순차적으로 운영해 누적 80MW 규모의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도 ‘롯데에어리퀴드 에너하이’를 통해 국내 최대규모인 450bar 고압 수소출하센터를 준공하고 지난해 11월부터 상업 가동에 들어갔다.

또 2028년까지 기능성 컴파운드, 반도체 공정소재, 그린소재 등 고부가 제품 비중을 60% 이상으로 끌어올려 ‘범용 석화사’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겠다는 구상이다.

김병준 한국폴리텍대 석유화학공정과 교수는 “석화 시장이 어려운 상태에서 롯데케미칼은 과감하게 범용 제품을 줄여나가고, 에틸렌 양 자체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며 “당장 돈을 벌진 못하더라도 산업이 필요로 하는 스페셜티를 만들어야 하며, 설비와 공정을 최적화하고 공정 내 탄소 기술을 고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원 기자 s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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