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10%->4%대 급락, ‘제로섬 전쟁’된 온라인쇼핑
6조원 쏟아 부은 ‘로켓요새’, AI‧멤버십으로 시장 장악
3370만건 보안 구멍…‘유출 쇼크’ 흔들리는 공룡 플랫폼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결정적 변곡점에 들어섰다. 지난 10년간 시장을 지배해온 키워드가 속도·확장·점유율이었다면, 2026년 생존 조건은 완전히 달라졌다. 개인정보 유출, 물류 비용 폭증, 해외 플랫폼 규제 리스크, 수익성 악화가 겹치며 ‘더 빠르게’보다 ‘더 안전하게’, ‘누가 더 많이 파느냐’보다 ‘누가 살아 남느냐’가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이커머스 패러다임 전환의 현주소를 △흔들리는 쿠팡 독주 체제 △C-커머스(중국계 이커머스)의 부상과 한계 △토종 플랫폼의 연대·차별화 전략 등으로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제로섬 경쟁’에 접어들었다.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쇼핑 거래액 증가율은 2022년 10.3% 수준에서 2024년 5.8%로 둔화했고, 지난해는 4%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기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온 시장이 기존 파이를 놓고 다투는 경쟁 국면을 맞이했다.
이 가운데 쿠팡 성장세는 ‘절대 강자’에 가깝다.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 35조원을 돌파하고 연매출 ‘50조 클럽’을 넘보며 사실상 시장을 장악했다. 로켓배송, 와우 멤버십, AI 기반 물류 최적화 등 6조원 이상 투자를 기반으로 한 ‘초격차 전략’이 실적 성장과 월간 활성 이용자(MAU) 3100만명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3370만건 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쿠팡이 쌓아온 신뢰를 흔들며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 ‘50조 클럽’ 넘보는 쿠팡 독주…투자로 쌓은 ‘로켓 장벽’
쿠팡 경쟁력은 지난 10여 년간 6조원 이상을 투입해 구축한 물류 인프라에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 따르면 쿠팡은 전국 30여 지역에 100개가 넘는 물류센터를 확보, 대한민국 인구의 70%를 ‘쿠세권’(물류센터 반경 10km 이내)에 포함시켰다. 이는 익일·당일 배송을 일상화한 로켓배송의 핵심 기반이다.
직매입 중심의 구조는 상품 품질과 배송 안정성을 높였다. 배송 지연과 품절 위험이 줄고 반품·환불 속도가 개선되면서 “일단 주문하고 아니면 바로 반품하면 된다”는 인식이 소비자 사이에 자리 잡았다. 온라인쇼핑의 고질적 약점인 교환·환불 부담이 사라지자 구매 빈도도 급증했다.
월 7890원의 ‘와우 멤버십’은 무료배송을 넘어 쿠팡플레이(OTT), 쿠팡이츠(배달 앱)와 결합한 통합 모델로 발전했다. 쇼핑·콘텐츠·배달을 하나의 생태계로 엮은 전략은 고객 이탈을 억제하고 가격 민감도를 낮췄다. 여기에 AI 기반 수요 예측, 재고 배치, 배송 경로 최적화 기술은 물류 효율 극대화와 수익성 향상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최근 실적은 이러한 전략의 결과다. 2021년 22조원 수준이던 매출은 2024년 41조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전년 대비 30% 성장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만 고정비 부담으로 영업이익은 6000억원대에 머물렀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35조원을 돌파했고, 분기 영업이익은 2000억원 중반대를 넘어서며 개선세를 이어갔다.
◇ 3370만건 유출 사고…김범석 의장 ‘책임론’ 확산
그러나 최근 3370만건 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쿠팡 성장 스토리에 큰 균열을 냈다. 속도와 효율에 치중한 시스템 설계가 보안 허점을 드러냈고, 2027년까지 계획된 ‘전 국민 100% 로켓배송’ 로드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통상 12월은 연말 특수로 매출이 증가하는 ‘대목’이지만, 쿠팡의 지난해 12월 하루 평균 결제 금액은 전월보다 5.16% 감소했다. 쿠팡은 11월 20일 개인정보위원회에 정보 유출 사태를 알렸다. 물류센터 근무자도 최근 한 달간 6000명이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대응 과정과 보상안도 논란을 키웠다. 쿠팡은 ‘유출’ 대신 ‘노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사안을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김범석 Inc. 의장은 국회 출석 요구를 연이어 거부했다. 지분 8%로 70%가 넘는 의결권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을 회피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또한 5만원 보상안은 실제 사용 금액이 5000~1만원 수준에 불과하고, 사용 기간과 사용처가 제한돼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쿠팡에 대한 영업정지, 과징금, 동일인 지정 재검토 등 강경 대응을 검토 중이다. 이번 사건은 보안 사고를 넘어 공룡 플랫폼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관리·감독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질문을 던졌다.
◇ 데이터 보호와 투명성, 이커머스의 새 패러다임 부상
흥미로운 점은 유출 논란 속에서도 지난해 12월 쿠팡 앱 신규 설치가 연중 최대치인 52만 건 이상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플랫폼 충성도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방증이자, 소비자 선택지가 제한된 독과점적 시장 구조를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쿠팡의 단기 실적 이슈가 아닌 지속가능성의 시험대로 본다.
또한 쿠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속도·편의성’보다 ‘신뢰·안전’을 우선하는 정책 기조는 이커머스 산업 전반에서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이 커질수록 기술 리스크가 곧 경영 리스크로 직결된다”며 “이제 소비자는 배송 속도뿐 아니라 데이터 보호와 지배구조 안정성, 고객 대응 역량을 기준으로 플랫폼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금숙 기자 mintb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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