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마이데일리 = 김희수 기자] 두 사람의 위치를 맞바꿨을 뿐인데, 팀이 4연승을 달렸다.
IBK기업은행은 여오현 감독대행 체제를 꾸린 뒤 선수들의 다재다능함을 적극 활용한 전술적 유연성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알리사 킨켈라(등록명 킨켈라)와 빅토리아 댄착(등록명 빅토리아)의 위치를 맞바꾼 사례가 있다. 비록 킨켈라의 기량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으면서 의도한 효과를 완전히 보지는 못했지만, 여 대행 체제 초반에 팀이 빠르게 재정비를 마친 데에는 이 전술의 효과가 분명히 컸다.
그리고 최근 여 대행은 또 한 번의 전술적 변화를 감행했다. 미들블로커 이주아와 최정민의 위치를 맞바꿨다. 단순히 두 선수의 자리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변화일까 싶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는 다양한 것들이 얽혀 있는 변화다.
먼저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기존 위치를 살펴보면, 이주아가 아포짓 킨켈라와 한 칸 떨어져서 로테이션을 도는 자리에 들어가고 최정민이 킨켈라와 붙어서 로테이션을 도는 자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 대행은 3라운드 정관장전부터 최정민과 이주아의 위치를 바꿨다. 최정민이 킨켈라와 떨어진 자리로, 이주아가 킨켈라와 붙는 자리로 갔다. 공교롭게도 이 선택을 한 뒤 IBK기업은행은 4연승을 질주 중이다.
바뀐 자리에 대해 우선 한 가지 먼저 짚어야 할 포인트는 여자배구에서 주로 이동공격에 강점이 있는 미들블로커는 아포짓과 한 칸 떨어진 자리, 즉 세터와 붙어 있는 자리에 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로 오른쪽 공격을 도맡는 아포짓과 주요 이동공격수를 한 칸 떨어뜨려 놓는 이유는 미들블로커의 오른쪽 이동공격과 아포짓의 라이트 퀵오픈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 아포짓이 후위로 갔을 때 이동공격이 좋은 미들블로커가 대신 오른쪽 공격의 부재를 최대한 해소하기 위함이다. 한 칸이라도 자리가 떨어져 있어야 두 선수가 동시에 후위로 가면서 오른쪽 공격이 아예 사라져 상대 블로커들이 왼쪽과 중앙에만 진을 치는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페퍼저축은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동공격이 좋은 시마무라 하루요(등록명 시마무라)는 세터와 붙는 자리로 나서고, 이동공격이 없는 하혜진이 세터와 떨어진 자리로 들어간다. 현대건설도 마찬가지다. 이동공격 옵션이 있는 김희진은 세터와 붙어 돌아가고, 이동공격이 없는 양효진은 세터와 떨어져 있다.
IBK기업은행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최정민과 이주아가 모두 이동공격을 구사하지만 이동공격의 비중과 위력은 이주아 쪽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 그런데도 여 대행은 이주아를 팀의 아포짓 킨켈라와 붙여놓고 최정민을 떨어뜨려 놓는 판단을 했다. 킨켈라가 백어택을 하지 않는 ‘반쪽 아포짓’이기 때문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킨켈라는 오른쪽 공격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아포짓 자리에 들어가지만, 그의 라이트 백어택은 사실상 없는 옵션이다. IBK기업은행의 라이트 백어택은 오히려 아웃사이드 히터로 나서고 있는 빅토리아가 오른쪽 공격을 하는 자리에서 구사하는 옵션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연승 기간 동안 킨켈라의 후위공격 득점은 단 1점이었고, 빅토리아의 후위공격 득점이 21점이었다.
즉 기존의 의도대로 라이트 백어택과 이동공격이 상호 보완되는 오더를 짜려면 IBK기업은행은 아포짓인 킨켈라와 이동공격수가 아니라 빅토리아와 이동공격수를 떨어뜨려 놓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리고 지금 미들블로커들끼리 자리를 맞바꾼 오더에서 이주아와 빅토리아는 떨어져 있다. 4연승 시작 전 이주아가 두 경기에서 공격 성공률 33.33%-30%를 기록했다가 연승 시작 후 세 경기 연속으로 공격 성공률 50%를 돌파한 것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최정민의 경우 이동공격의 위력은 이주아보다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세터의 위치가 어디든 시간차성 오픈 공격을 잘 때린다는 유니크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미들블로커지만 날개 공격수처럼 어려운 볼들을 뚫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지금 세터와 붙어 돌기 때문에 전위에 공격수가 두 명뿐인 어려운 자리에 서더라도 다양한 옵션으로 그 자리에서 사이드 아웃을 돌려줄 수 있다. 실제로 최정민의 공격 점유율은 연승 시작 전 두 경기(11.59%-14.41%)에 비해 연승 시작 후에 증가했다(21.15%-15.71%). 어려운 자리를 돌리는 상황에서의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직전 현대건설전은 두 선수가 각자의 자리에서 어려움을 겪었기에 연승이 끊길 뻔했다. 킨켈라의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최정민이 하이 볼에 대한 부담감을 너무 많이 짊어지면서 흔들렸고, 이주아의 공격도 평소보다 무뎠다. 다행히 이 상황은 빅토리아의 역대급 캐리와 고의정의 깜짝 활약으로 넘길 수 있었던 IBK기업은행이다.
여 대행은 “이주아는 원래 전위에 공격수가 세 명인 자리일 때 잘했다. 익숙한 자리로 돌려보낸 셈이다. 또 최정민은 공격수가 전위에 두 명인 자리일 때 다양한 공격 옵션을 살려갈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스위치의 의도를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앞선 내용들에 여 대행의 의도까지 더해지면서, 두 선수의 위치를 바꿨을 뿐인데 4연승을 질주하는 마법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과연 MB 스위치의 마법 같은 효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가 궁금해진다.
김희수 기자 volonta@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