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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재계 승부수] 정의선의 선택, ‘위기 관리’ 넘어 ‘산업 기준’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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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인식을 전제로 한 체질개선·의사결정 혁신 선언
AI·생태계 확장 통해 ‘기준 제시형 리더십’ 전환 속도

[편집자주] 격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2026년은 국내 대기업들에게 생존과 도약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과 트럼프 관세와 같은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한 요인들이 여전히 상존하는 가운데 AI(인공지능) 기반의 혁신이 가속화하고 있다. 산업계 구조조적 변화 시기에 맞춰 기업들도 생존 전략을 새로 짜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4대 그룹 총수 및 핵심 경영진의 2026년 신년사를 토대로 각 그룹이 설정한 올해의 경영 기조와 전략적 승부수를 짚어 본다. 신년사에 담긴 메시지를 중심으로 산업 환경 인식, 전략 변화의 방향, 실행 과제를 분석해 재계의 2026년 경영 지형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2026년 신년사는 위기를 대하는 태도와 경영 해법에서 전년도보다 한층 더 구체적이고 공격적이다. 2025년 신년사가 ‘불확실성 속에서 낙관과 비관을 경계하며 기본기와 혁신 DNA를 다지자’는 메시지였다면 2026년 신년사는 이미 현실화된 위기를 전제로 ‘어떻게 바꾸고, 누구와 손잡아 돌파할 것인가’를 명확히 제시한 선언에 가깝다.

◇ 정의선 회장의 위기 인식, 추상에서 현실로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우려하던 위기 요인들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온 한 해”라고 단언하며 무역전쟁 심화·수익성 악화·지정학 리스크·경쟁사의 빠른 글로벌 침투 등 구체적인 위험 요소를 열거했다. 가능성과 대비의 영역에 있던 위기 인식이 가설이 아닌 전제 조건으로 바뀐 것이다. 앞서 정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피해갈 수 없는 도전”, “퍼펙트 스톰”이라는 표현을 쓰며 다가올 불확실성을 경고한 바 있다.

두 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내부 역량 강화지만 접근 방식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2025년이 유연한 조직문화와 기본기를 강조했다면, 2026년은 이를 한 단계 더 밀어붙여 ‘고객 관점의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체질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제품 기획·개발 과정의 타협 여부, 품질에 대한 정직한 자기 점검 등 매우 실무적이고 자기비판적인 질문을 던진 점이 특징이다.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효율 개선이 아닌 고객 신뢰를 지탱하는 근본 체력 재정비로 해석된다.

특히 올해에는 리더십의 행동 변화까지 직접 주문했다. “모니터 앞을 벗어나 현장을 보라”, “보고에는 자기 생각과 결론이 담겨야 한다”, “형식보다 속도와 명확성” 등은 관료적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사실상의 문제 제기다. 이는 향후 그룹 전반에서 보고 체계 간소화, 권한 위임, 빠른 실행 중심 문화가 강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단순히 내부 논의와 단결의 중요성을 언급했던 전년과 달리 조직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 ‘나홀로 혁신’에서 ‘생태계 확장’으로

정 회장은 전략적 협력 범위와 대상도 명확히 했다. 공급 생태계 동반자에 대한 지원 확대, 다양한 파트너와의 과감한 협력을 통한 생태계 확장이 핵심 축으로 등장했다. 특히 AI 산업 전환을 언급하며 “내부 역량만으로는 고객 기대를 넘기 어렵다”고 인정한 대목은, 현대차그룹이 폐쇄형 혁신에서 개방형 혁신으로 더욱 본격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장 큰 변화는 AI에 대한 인식이다. 정 회장은 글로벌 선도 기업 대비 AI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냉정한 자기 평가와 함께, 현대차그룹의 강점인 제조·설계 역량을 결합한 ‘피지컬 AI’ 전략을 제시했다. 단순히 소프트웨어 기업을 추격하기보다, 제조 기반 AI에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 방향을 제시했다.

실제 정 회장은 전략적 협력의 범위와 대상을 선언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빠르게 옮겼다. 신년사 이후 직접 CES 2026 현장을 찾은 것이 대표적이다.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CES를 방문한 이번 일정은,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개방형 혁신과 생태계 확장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 웨스트 홀에서 열린 CES 2026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뉴시스

정 회장은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노태문 대표와 함께 AI 가전과 디바이스를 둘러보던 중 로봇청소기와 현대차그룹의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 ‘모베드’를 결합하는 협업 가능성을 즉석에서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관람이나 의례적 방문을 넘어, 기술 간 결합을 전제로 한 구체적 협업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바로 꺼내 든 장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내부 역량만으로는 고객 기대를 넘기 어렵다는 신년사의 인식이 실제 협업 제안으로 이어진 셈이다.

CES 현장에서의 동선 또한 정 회장의 전략적 시선을 여실히 드러낸다. 삼성전자에 이어 두산, 퀄컴, LG전자 부스를 잇달아 방문하며 수소, 로보틱스, 반도체, 전장 솔루션 등 현대차그룹의 미래 사업과 맞닿은 기술과 파트너들을 직접 점검했다. 특히 퀄컴 부스에서는 휴머노이드용 고성능 로봇 프로세서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구글 딥마인드 로보틱스 총괄과도 짧게 환담을 나눴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구글 딥마인드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직후라는 점에서, 글로벌 AI·로보틱스 생태계의 핵심 축과 보폭을 맞추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신년사에서 제시한 ‘피지컬 AI’ 전략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로봇, 반도체, 디바이스, 전장 기술을 아우르는 협업 가능성을 직접 점검한 것은 피지컬 AI를 단일 기업의 기술 축적이 아닌 생태계 결합의 산물로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결국 정 회장의 CES 방문은 ‘보여주기식 글로벌 행보’라기보다 신년사에서 강조한 개방형 협력과 생태계 확장을 실제 무대에서 시험하고 연결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평가다. 선언 이후 현장에서 곧바로 협업의 실마리를 찾고 파트너십의 방향을 점검했다는 점에서 2026년 현대차그룹 경영 전략이 말이 아닌 실행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부 체질개선, 의사결정 혁신, 생태계 확장, AI 기반 산업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며 현대차그룹을 단순한 자동차 기업이 아닌 산업 기준을 제시하는 플레이어로 재정의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며 "향후 현대차그룹의 경영 방향은 단기 실적 방어보다 중장기 경쟁력 재편과 파트너십 확대에 더 큰 무게가 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진웅 기자 woo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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