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97] 인생은 초콜릿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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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인생이 초콜릿 상자와 같다던데, 내가 받은 초콜릿은 참으로 쓰다.

아이가 한껏 성을 내다가 제가 고집하는 길로 걸어간다. 내 삶의 일정 비율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아이의 강박이나 분노발작이 차지하고 있다.

아이 뒤를 지친 마음으로 따르며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내가 왜 널 낳았을까.’

테드 창의 SF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에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먼 후일을 알면서도 출산을 선택하는 주인공 루이즈 뱅크스가 나온다.

어느 날 지구 궤도에 외계인 ‘헵타포드’가 출현해 인류와 소통을 시도한다. 미군은 언어학자 루이즈와 물리학자 이안 셸을 팀으로 파견하는데 루이즈는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언어를 해독한다. 이 언어는 시간 순서를 무시한 과거, 현재, 미래 사건을 한번에 아우르는 동시적 구조로, 루이즈는 이를 연구하며 그들 언어 체계에 담긴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경험한다.

연구 중에 루이즈는 딸 해나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회상한다. 소설은 현재(외계인 접촉)와 과거(딸과의 삶)를 교차 편집하며 진행되는데, 소설 마지막에 다다르며 독자는 깨닫는다. 그는 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을 향해 '네 인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루이즈는 자신이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자문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딸의 죽음을 알면서도 그저 아이를 갖기로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왜 날 낳았어?”

내 삶과 아이의 삶을 생각해 본다. 원망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에 여전히 대답할 수 없는데. 이 고통을 다 알았다 하더라도, 더 큰 고통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선택했을까.

당연하게도 "그렇다."

삶이 내 뜻과는 다르게 나를 이렇게 이끌었는데, 아이 역시 그러할텐데, 진정으로 아이는 초콜릿 상자와도 같은 선물이다.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으며, 이 모든 고통과 환희를 함께 하고 싶다.

내 더딘 깨달음의 기록은, 이미 누군가 앞서 깨달은 것의 반복에 지나지 않겠다. <포레스트 검프>와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나는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댓글처럼 나의 기록을 남긴다.

초콜릿 상자같은 선물로 온 아이.

나는 그 선물을 택했고 택할 것이다. 때로 너무 쓴 초콜릿을 먹어서 몸서리친 날도 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에서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꽤 자주 생각한다.

※ 연재 마칩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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