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96] 성탄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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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다시 교회 문을 두드린 건 신앙과 거리가 먼 불순한 목적이었다.

소위 모태신앙으로 어릴 적부터 기독교 문화에서 자랐다. 하지만 교회는 늘 적응하기 어려웠다. 교회 안에서 따뜻함보다는 가식이나 위선을 느꼈고, 성경과 찬송에는 감동이 있는 만큼 반감도 컸다.

여기에는 집안 잔치처럼 보이는 성탄 행사도 한몫했다. 세상은 여전히 고통과 가난과 불의로 가득한데 교회 건물 안에서 우리끼리 즐기는 이 축제가 온당하지 않았다.

교회는 무얼 하는 곳인가 고민이 깊어지던 어느 날 교회에 작별을 고했다.

교회와 거리를 두며 지내다가 여행 중에 한 교회 유치부 예배에 참석했다. 거기엔 갓난쟁이와 좀 더 큰 아이와 엄마, 아빠가 어우러지고 기저귀 가방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예배 중에도 자리를 이탈해 돌아다니다 간식을 먹고, 그 와중에도 인형극을 겸한 설교에 간간이 집중했다. 또 찬송에 맞춰 율동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곳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

아이는 내게 평온히 안겨 이 모든 걸 가만히 관찰하다가 스르르 잠들었다.

아이가 사람을 자주 접하고 여러 경험을 쌓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작년 한 해 동안 틈틈이 여러 교회를 다녔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 활기 넘치면서도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분위기, 아이가 혹여 분노발작을 일으키면 재빨리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마침내 지난 여름 한곳에 정착했다.

발달 치료사는 아이가 다른 사람을 따라 율동하는 게 아주 좋은 활동이 되리라고 말했다. 신체 조절 활동일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관심이자 모방이자 공동 활동 경험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쉽게 적응하진 않았다. 매주 분노발작이 있고 설교 시간엔 누워 있거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교회에서 밥을 먹는 일이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다 외우더니 집에서 스스로 어린이 찬송을 부르며 율동 일부분을 따라 했다.

한 달 전부터 유치부도 성탄절을 준비했다. 매주 성탄절 찬송 율동을 익히고 그중 두 곡을 성탄 전야 행사 때 모든 교인 앞에서 발표하기로 했다.

아이는 찬송과 율동을 좋아하지만 유치부 예배실이 아닌, 성인 예배실에는 들어가길 거부했다. 더군다나 성탄 전야 행사 때는 모든 교인이 시끌벅적하게 한 예배실에 모인다. 모든 불을 끄고 단상에만 조명을 비출 텐데, 아이는 그런 환경을 가장 무서워한다.

전도사님 제안으로 성탄 전야 행사 전날, 우리 아이만 예배실에서 리허설을 했다. 전야의 전야인 셈이다. 아이는 사람이 없고 불이 환히 밝혀진 성인 예배실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가 나아간 그 걸음으로도 충분했다. 행사 당일 사람 가득한 예배실에 들어가 단상에 서 있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분노발작이 일어나면 얼른 데리고 나올 궁리도 했다.

아이는 역시 불안한 듯 안아달라고 요구했다. 내게 안긴 채 어둡고 사람 가득한 예배실에 들어가서 얼렁뚱땅 단상에 서긴 했는데 긴장한 표정으로 자기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있었다. 터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태.

그러나 찬송 전주가 시작되자 아이가 아주 희미하게 웃더니, 곧 손을 모으거나 박수를 치거나 발을 구르는 동작을 어설프게 따라했다.

여기저기 귀엽다는 말과 함께 함박웃음 소리가 들렸다. 율동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웃음이 아니라 오열이 터졌다. 눈물을 닦고 웃어 보아도 자꾸 울음으로 일그러지는 내 모습을 아이가 오해할까 봐 걱정하며.

율동 두 곡을 마치고 아이들은 선생님 손짓에 맞춰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외쳤다. 아이는 가운데 서서 얼어버린 채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찾았다. 아이를 안고 예배실 밖으로 빠져 나왔다.

성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왜 여전히 고통으로 신음하는가, 무엇이 예수의 가르침인가, 나를 끝없는 의구심의 늪으로 잡아끌던 성탄 행사. 마음이 가난한 내가 교회 안에 있었다. 아이가 내게 전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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