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단독개발 시대’ 저물다…K-제약바이오, 협업으로 신약개발 속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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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결합·공동임상·기술연합 확산…ADC 신약 중심 생태계 재편

삼성바이오에피스 연구진. /삼성바이오에피스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제약바이오업계가 신약개발 방식에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28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과거 단일 기업이 신약개발의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상용화까지 단독으로 진행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최근엔 여러 기업이 함께 기술·자본·플랫폼을 결합한 공동개발형 R&D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항체-약물 접합체(ADC)와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바이오의약품은 복잡한 기술 조합이 필수다. ADC는 특히 항체와 페이로드(세포독성 약물), 링커를 정밀하게 결합해야 하며 항체공학, 화학합성, 약물동태학 등 복수의 고난도 전문 기술이 동시에 요구된다. 이로 인해 단일기업이 전 과정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ADC나 mRNA 백신처럼 기술 융합이 필수적인 분야에선 협업이 사실상 생존 조건이 됐다”며 “각자의 핵심 기술을 결합해 경쟁력을 높이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는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개방형 R&D(Open Innovation)’로 방향을 틀었다. 화이자는 약 430억달러(약 56조원) 규모에 ADC 전문기업 씨젠(Seagen)을 인수했고, 다이이찌산쿄는 아스트라제네카와 공동개발한 표적치료제 ‘엔허투’로 블록버스터급 성과를 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모델이 본격화되고 있다.

‘앱클릭’ 등 항체 접합 기술을 보유한 앱티스는 제이투에이치바이오텍과 페이로드 설계 플랫폼을 결합해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며, 일동제약그룹의 아이디언스와도 이중 페이로드 ADC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또 롯데바이오로직스와는 앱클릭 기술과 롯데의 시러큐스 생산시설 내 컨쥬게이션 서비스를 연계해 ‘차세대 ADC 툴박스’ 구축을 위한 협력 체계를 마련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중 항체·이중 페이로드 플랫폼을 가진 중국 프론트라인바이오파마와 협력해 글로벌 수준의 ADC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자체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를 기반으로 차세대 이중표적 ADC 연구를 추진 중이다. 또 이중항체 기술의 글로벌 임상 가속화를 위해 자회사 네옥바이오를 설립하고, 미국 임상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는 정밀 접합 기술 ‘컨쥬올’을 기반으로 글로벌 제약사들과 다수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ADC 플랫폼 경쟁을 선도하고 있다.

지놈앤컴퍼니도 항체 발굴 플랫폼 ‘지노클’을 활용해 신규 타깃 항체를 개발하고, 지난해 디바이오팜에 CD239 타깃 ADC 항체를 기술이전해 디바이오팜의 '멀티링크' 링커와 결합해 개발 중이다.

3세대 링커 접합 기술 '앱클릭'. /앱티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협업 필요성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신·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글로벌 기술 협력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우리 기업들도 외부 플랫폼과의 연계를 통해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전략에 눈을 돌리게 됐다는 것이다.

또 과거 기술이전을 통한 일회성 수익 모델에서 벗어나, 개발 초기부터 파트너사와 공동으로 임상과 상용화를 추진하는 구조로 변화한 점도 공동개발 확산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 같은 변화의 근본적 요인에는 비용 부담과 리스크 분산, 개발 속도 경쟁이 자리한다.

신약 개발에는 평균 10년 이상, 수천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단일기업이 모든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공동개발은 비용을 분담하고, 성공 시 수익을 나누는 구조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또 외부 플랫폼을 도입하면 임상 진입까지 1~2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중기부 등 정부도 컨소시엄형 R&D를 확대하며 공동개발 확산을 뒷받침하고 있다. 벤처투자 시장 역시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업계는 이번 변화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바이오 산업의 필연적 진화 과정으로 보고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기술을 팔던 시대에서 함께 개발하는 시대로 전환됐다”며 “기술 주도권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 중심의 연합형 R&D가 앞으로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호빈 기자 hble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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